글/ 당련(唐蓮)
【정견망】
왕유(王維): 《적우망천장작(積雨網川莊作)》–장마 진 망천장에서 짓다
장마철 빈 숲 사이로 느릿느릿 연기 피어오르고
명아주 찌고 기장밥 지어 동쪽 밭으로 내어가네.
아득한 논에는 백로가 날고
그윽한 여름 숲엔 노란 꾀꼬리 지저귀네.
산속에서 조용히 정좌하며 아침 무궁화 꽃 바라보다
솔숲 아래 소식 재계하며 아욱을 따네.
시골 늙은이는 사람들과 다투길 멈췄음에도
갈매기는 어찌하여 다시 의심하는가?
積雨空林煙火遲,
蒸藜炊黍餉東菑。
漠漠水田飛白鷺,
陰陰夏木囀黃鸝。
山中習靜觀朝槿,
松下清齋折露葵。
野老與人爭席罷,
海鷗何事更相疑!
【주해】
적우(積雨): 오랫동안 내리는 비. 장마
망천장(輞川莊): 망천에 있는 왕유의 별장.
공림(空林): 나무가 드문드문 희박한 숲. 빈숲
연화지(煙火遲): 장마철에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 장작에 불이 잘 붙지 않아서 연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는 모습.
여(藜): 명아주나물. 여기서는 일반적인 채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서(黍): 원래 기장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밥을 가리킨다.
향(餉): 음식을 보내다.
동치(東菑): 치란 경작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묵은 밭을 뜻한다. 여기서는 동쪽 농토에서 일하는 농부를 의미.
막막(漠漠): 아득하다. 여기서는 논이 넓게 펼쳐 있는 모양.
음음(陰陰): 그윽하다. 숲이 빽빽이 우거져 어두운 모양.
하목(夏木): 여름철 가지와 입이 무성한 나무.
전(囀): 새가 즐겁게 지저귀는 소리.
조근(朝槿): 근(槿)은 무궁화나무인데 여름과 가을 사이에 꽃이 피는데 아침에 펴서 저녁에 진다. 그래서 아침에 무궁화 꽃을 본다고 표현한 것으로 고인들은 흔히 무궁화로 짧은 인생을 비유했다.
청재(清齋): 소식하며 재계하는 것.
노규(露葵): 녹색 아욱으로 채소의 일종.
마지막 두 구절에서 시골 늙은이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쟁석파(爭席罷)는 타인과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는 뜻으로 남과 명예나 이익을 위해 다투지 않는다는 뜻.
해구(海鷗): 갈매기.
마지막 두 구절의 의미는 나는 이제 시골 늙은이로 매사에 남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세상과 다투지 않건만 갈매기(아첨하는 소인을 가리킴)는 어찌하여 아직도 나를 의심하고 시기하는가?
【간단한 분석】
이 시는 장마철 망천산장에서 비가 잠시 멈춘 광경을 묘사한 것으로 왕유의 산수전원시 중에서도 명작으로 손꼽힌다.
처음 두 구절에서 밥 짓는 연기가 느릿느릿 피어오르는 것은 오랫동안 비가 내려 공기가 습윤해진 특징을 잘 표현했다.
3, 4구는 원래 이가우(李嘉佑) 시에 나오는 구절인데 ‘막막(漠漠)’과 ‘음음(陰陰)’이란 두 의태어를 첨가해 명 구절로 만들었다. 이 두 개의 첩어는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비온 후의 풍광을 묘사한다. 막막은 오랫동안 비가 내린 논 상공의 몽롱하고 아득한 모습을 아주 적절히 표현했다. 음음은 비를 한껏 머금은 무성한 여름 나무의 습윤한 느낌을 잘 표현했다.
여기에 흰 백로가 날아오르고 누런 꾀꼬리가 우짖는 등의 풍경을 배치해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어울리며 큰 것 속에 작은 것이 있고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 오랫동안 비가 내린 후 들판의 광활하고 깨끗하면서도 그윽한 풍경을 잘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시어의 사용이 적절하고 선명해서 시 속의 경치가 마치 한 폭의 깨끗하고 우아한 수묵화(水墨畵)처럼 보인다. 왕유 시의 특성인 “시 속에 그림이 있는” 특징을 잘 드러낸다.
때문에 예전 사람들은 그의 시에 대해 “왕우승(王右丞 왕유)의 논과 백로 여름나무와 노란 꾀꼬리 시는 바로 그림이다.”(《철망산호(鐵網珊瑚)》)라고 했다.
5, 6 구는 시인이 산속에서 한가하게 은거하는 생활과 심성 수양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마지막 두 구절은 시인이 은거한 후에도 여전히 간사한 소인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 안타까운 상황을 표현했다. 확실히 당시에 “시인을 질투하는 자”가 있었음을 뜻한다.
이 시는 전체적인 형상이 선명하면서도 참신하고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묘사하는 가운데 무궁무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56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