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예전엔 자식을 덕으로 가르쳤지만 지금은 돈으로 가르쳐

글/ 천래(天來)

【정견망】

덕(德)과 돈의 관계에 대해 고인(古人)들은 아주 뚜렷이 알았다. 덕이 있어야만 돈과 부귀가 있고 고관이 되며 두터운 복록이 있을 수 있고 덕이 있어야지만 자손이 번창하고 가업을 계승해 번영을 지속할 수 있다. 때문에 고인들은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며 덕을 쌓음을 중시했다.

청나라 도광(道光) 연간에 임칙서(林則徐)는 조정의 부름을 받아 흠차대신(欽差大臣)이 되었다. 광주로 가서 아편확산을 막아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뇌물을 바쳤다. 만약 임칙서가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다면 은자 수백만 냥은 손쉽게 벌었을 것이며 가족들 역시 의식주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칙서는 나라와 백성을 근심하는 애국지사라 백성들에 대한 아편의 해악이 큼을 알았기에 여러 상인들의 뇌물을 거절하고 호문(虎門)에서 2만 상자의 아편을 불태웠다.

이듬해 영국군이 청나라 조정을 무력으로 위협하자 조정은 화해를 위해 임칙서를 희생양으로 삼아 파면 조치하고 먼 변방으로 유배 보냈다. 임칙서는 5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임칙서는 이렇게 청렴하게 살았는데 그의 후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임칙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집안에는 쌓아둔 재산이 없었다. 하지만 임씨 가문은 이 때문에 쇠락하지 않았다. 그의 자손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과거로 성공했고 손자와 증손자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진사나 거인이 되었다. 중화민국 시기에도 임씨 가문은 여전히 벼슬하는 이가 끊이지 않았고 당시 최고법원(역주: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 법원장 임상(林翔)이 바로 임칙서의 후손인데 이 사람 역시 도덕이 매우 높았다.

관리가 청렴하고 뇌물을 거절하는 것은 덕을 쌓는 좋은 일이다. 때문에 임칙서의 후손들에게 이렇게 큰 복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청나라 때 증국번(曾國藩)은 상군(湘軍)을 이끌었으며 지위와 권세가 대단했는데 당시 재정(財政)의 대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그는 군중의 재물을 단 한 푼도 집안에 가져오지 않았다. 재정의 대권을 장악했음에도 조그마한 이익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재물을 모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손들이 재물 모으기를 희망하지 않았으며 후손들이 사치의 풍조에 물들까 염려했다. 그러면 큰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증국번의 영향을 받아 증 씨 가문의 후손들은 자력갱생하며 향상을 추구했음에도 많은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어떤 사람이 통계를 냈는데 증 씨 가문은 증국번에서 시작해 약 200년 간 8대에 이르도록 단 하나의 방탕한 자손이 없었다. 또 자손들 중 약 200여 명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명망을 지닌 인재가 240여 명에 달했다.

그러면 불의한 재물을 취한 사람의 결말은 어떤가?

역시 청나라의 일이다. 광동에 부유한 상인 세 가문이 있었다. 그들은 각각 오(伍)씨, 반(潘)씨와 공(孔)씨였다.

이 세 가문은 아편전쟁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기회를 이용해 크게 돈을 벌었으며 수천만 냥의 은자를 모았다. 이 세 가문의 재산을 합하면 거의 나라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보물로 치장한 마차를 타며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당시 유명한 글씨 그림의 화첩에는 대다수 오 씨, 반 씨 혹은 공 씨의 도장이 찍혀 있었으니 이런 진귀한 그림은 이 세 집안의 수장되었던 것임을 말한다. 그러나 몇 십 년 후 이 세 가문의 자손 중에 성공한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으며 예외 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때 상해에 진(陳)씨 성의 부자 상인이 있었는데 땅에 토지투자의 대왕이라 불렸다. 진 씨의 재산은 은 4천만 냥에 달했고 그의 두 아들이 각자 2천만 냥씩 나눠가졌다. 당시 중국에 유명한 골동품은 거의 절반이 진가에 있었으니 그 사치한 정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7년이 지나 상해의 지가가 갑자기 곤두박질쳤고 투기에 실패하면서 파산에 이르렀다. 그 집의 진귀한 골동품, 집 등 부동산 거의 모든 재산은 은행에 몰수되거나 팔아야 했다.

《예기(禮記) 대학(大學)》에 이런 말이 있다.

“부적절하게 들어온 재물은 또한 부적절하게 나간다(貨悖而入者 亦悖而出)”

즉 도의에 어긋나거나 부정당한 수단으로 얻은 재물은 마찬가지로 좋지 않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잃게 된다는 뜻이다.

고대 명문의 후예들은 덕행과 품성을 중시했고 깊은 도덕 내함을 지녔기 때문에 조상 대대로 쌓은 덕이 후대 여러 대에 걸쳐 복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오늘날 당문화 관념 하의 중국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사람들은 정반대로 사람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근본인 덕을 포기했다. 고인이 “더러운 흙”으로 여기던 돈을 강조하며 돈이 있으면 행복한 생활을 하고 높은 지위가 있을 수 있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각종 기능을 가르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아들에게 많은 돈을 남기고 관리는 탐오한 돈으로 자손들에게 집을 사준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것을 자녀에게 좋다고 여기면서 오히려 근본적인 도덕 교육은 소홀히 한다. 이들이 과연 재물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미혹에 빠져 있지만 오직 하늘의 명을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이때에 비로소 ‘운명을 하늘에 맡김’(聽天由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6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