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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境)의 아름다움: 천상인가 인간세상인가?

글/ 섬섬(纖纖)

【정견망】

시사(詩詞)는 본래 천상의 언어다.

과거 소동파의 “천상궁궐에서 오늘 저녁은 어느 해인지 모르겠노라(知天上宮闕,今昔是何年)”는 구절은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신선세계로 날아오르게 하면서 또 사람을 미혹시킨다. 즉, 소동파가 노래한 곳이 대체 천상(天上)인가 아니면 인간(人間)인가? 소동파란 이 대학사(大學士)는 과연 사람인가 아니면 신선인가?

사실 필자가 가장 말하고 싶은 시는 하지장의 《회향우서(回鄉偶書)》다.

어려서 고향 떠나 늙어 돌아오니
사투리는 그대로건만 귀밑머리 다 빠졌네.
아이들은 나를 몰라
손님은 어디서 오셨냐고 웃으며 묻네.

少小離家老大回
鄉音無改鬢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많은 이들이 낭랑하게 읊조릴 수 있는 유명한 이 시에서 시인이 쓴 곳은 대체 천상인가 아니면 인간세상인가?

겉으로만 보면 하지장은 어려서 고향을 떠나 경성(京城 장안)에서 벼슬을 살다 고향에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고향의 말투는 그대로지만 자신은 이미 귀밑머리가 다 빠졌다. 아이들이 그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어디서 오신 손님인지 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여기에는 또 다른 연고가 있다.

하지장은 노년기에 은거한 신선을 만나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고자 했다. 귀향하는 명확한 이유는 바로 도를 닦아 신선이 되려는 것으로 단순히 늙어서 귀향하는 게 아니었다. 당시 황제(당나라 현종)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했고 또 실천했으니 옛 사람들이 수도인(修道人)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에 담긴 다른 깊은 뜻은 무엇일까? 하지장이 집을 떠난 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은 천상의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음을 가리킨 것이고 지금 귀밑머리가 다 빠져서야 집에 돌아올 줄 알았음은 자신이 천상의 손님이 아니라 천궁(天宮) 자체가 바로 자신의 집이란 뜻이다.

이와 유사한 시가 또 있는데 바로 두보의 《절구2수(絕句二首)》다.

강물이 푸르니 새는 더욱 희고
산은 푸르러 꽃은 타는 듯 붉네
올 봄도 이렇게 지나가나니
고향에 돌아갈 날 그 언제이런가?

江碧鳥逾白
山青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

이 시에서 마지막 구절 “올 봄도 이렇게 지나가나니 고향에 돌아갈 날 그 언제이런가?” 역시 천상인지 인간세상인지 헷갈리게 한다. 고위 돌아갈 시기란 천상으로 돌아갈 날인지 아니면 경성으로 돌아갈 날인가?

이백의 시 중에서 《경정산에 홀로 앉아(獨坐敬亭山)》도 마치 신선이 인간세상에서 고독과 적막을 느껴 무료한 김에 경정산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뭇 새들 모두 높이 날아가고
외로운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가네
서로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오직 경정산 뿐이로다.

眾鳥高飛盡
孤雲獨去閒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뭇새들 날아가고 외로운 구름만 한가로이 떠가니 마음속이 높고 아득해 인간 세상에 할 말이 없다. 오로지 경정산 생각뿐이다. 이때 시인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경정산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신선의 동천(洞天)이다. 이백은 경정산 산신(山神)이 서로 마주하며 싫증나지 않는다는 경지는 대체 어떤 마음의 경지일까?

최근 TV 연속사극을 보는데 마지막 장면에 이욱(李煜)의 사(詞)를 노래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표현한 뜻은 뜻밖에도 천상인간이 마찬가지로 아름답다는 내용이었다.

시사(詩詞)란 본래 사람과 신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조용히 고쟁(古箏) 반주에 맞춰 한 수의 시사(詩詞)를 듣다보면 또 다른 천상인간으로 사람을 인도해간다. 시경(詩境)의 아름다움에서 천상과 인간을 구별하기란 어렵다.

 

원문위치: zhengjian.org/node/269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