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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송사(宋詞): 상기계정일모(常記溪亭日暮)

글/ 섬섬(纖纖)

【정견망】

사(詞)는 장단구(長短句)로도 불린다. 당대(唐代)에 이미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지만 송조(宋朝)에 들어와 최고봉에 도달한 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좋은 사는 송조에 출현했기 때문에 흔히 송사(宋詞)로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남당(南唐)의 황제였던 이욱(李煜)의 사를 좋아하지만 사실 이욱의 사는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 이욱 본인이 망국의 군주이기에 지나치게 깊이 가라앉는다.

이외에 당나라 때 나온 대부분의 사는 모두 시(詩)의 구속을 벗어나지 못해 늘 좀 이상하거나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명조(明朝) 이후의 사는 또 소설의 운치가 섞여 들어가 순정(純正)하지 못하다.

송사는 남북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북송(北宋)의 사는 생활이 안정되어 활달한 느낌이 드는 반면 남송의 사는 빼앗긴 강산을 회복하기 위해 비분강개한 애국적 내용이 많고 또 일부는 감상적이다. 이청조는 북송과 남송의 교체기에 살아 양쪽의 특징을 모두 지녔다. 때문에 전후로 사의 의경(意境)에 큰 차이가 나지만 다행인 것을 양쪽에 모두 뛰어났다.

여기서 감상할 《여몽령(如夢令)・상기계정일모(常記溪亭日暮)》는 거의 전무후무할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다. 시사(詩詞)는 모두 의경(意境)을 중시하는데 이청조의 이 사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늘 생각나는 해질 무렵 냇가 정자
깊이 취해 돌아갈 길을 잃었네
흥이 다한 후 늦게 배에 오르니
연꽃 깊은 곳에 길을 잘못 들었네
다퉈 노를 젓고 다퉈 노를 저으니
갈매기와 백로 한 무리가 놀라 날아올랐다네

常記溪亭日暮
沉醉不知歸路
興盡晚回舟
誤入藕花深處
爭渡,爭渡,
驚起一灘鷗鷺

첫 시작인 상기(常記)는 늘 생각난다는 뜻으로 글자는 간단하지만 깊은 뜻을 품고 있다. 이 사는 이청조가 소녀시절(약 13~4세 무렵)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여자는 나이가 들면 오빠를 따라 이렇게 밖으로 놀러 다니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녀가 어느 정도 성장해 과거처럼 더 이상 마음껏 놀 수 없는 상황에서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영원한 추억으로 삼은 것이다.

‘계정일모’(溪亭日暮)란 계정의 황혼을 가리킨다. 계정(溪亭)은 일반적으로 개울가에 있는 작은 정자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좀 다르다. 왜냐하면 뒤에 ‘흥이 다한 후 늦게 배에 오르니(興盡晚回舟)’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야한다면 갈 때도 배를 타고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자는 개울가에 있는 작은 정자가 아니다. 이청조의 집은 산동 제남(濟南)의 대명호(大明湖) 부근에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녀가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정자라면 당연히 호수 중심에 위치한 작은 섬에 있는 정자였을 것이다. 한밤중에 배를 타고 호수 중심에 갔으니 정말로 아주 대담한 것이고 또 술에 꽤 취해 있었을 것이다.

‘흥진만회주 오입우화심처(興盡晚回舟,誤入藕花深處)’에서 우화(藕花)는 바로 연꽃(荷花)이다. 그런데 이청조가 일반적인 연꽃을 가리키는 하화(荷花) 대신 우화(藕花)라고 쓴 이유는 첫째는 압운(押韻)을 맞추기 위해서고 둘째는 독특한 내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하화는 진흙 속에서 자라나지만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는 초탈함 때문에 인간세상에서 성결한 꽃이 되었다. 그러므러 이 작품에서 우화를 하화로 바꾸면 전체적으로 운치가 좀 사라짐을 발견하게 된다.

‘쟁도쟁도(爭渡,爭渡) 경기일탄구로(驚起一灘鷗鷺)’

여기서 쟁도는 진짜로 노젓기를 다툰다는 뜻이 아니다. 함께 동행한 사람들은 분명 같은 집의 형제나 자매일 것이니 사실 이들이 다툴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그냥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를 젓는 일종의 놀이의 뜻으로 봐야 한다.

흔히들 송사의 유파를 논할 때 이청조는 완약파(婉約派)의 대표인물로 꼽히고 반면 육유(陸游)나 소동파 등은 호방파(豪放派)에 속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작품만 놓고 보자면 이런 구분이 그리 타당하지 않다.

이 사의 의경(意境)은 10대 소녀 이청조가 해질 무렵 형제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중앙에 있는 작은 섬에 놀러가 만취한 것이다. 돌아올 때 길을 잘못 들어 우화(藕花) 무리로 들어가니 한 무리 갈매기와 백로가 놀라서 날아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깜작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흥분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를 저으며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삼았다. 때문에 이 사는 얼핏 보면 완약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안에 상당한 호기(豪氣)가 담겨 있다.

삶이란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를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고 또 가장 따스할 것이다. 우리가 접촉하는 대부분의 사는 비분강개를 가득 품은 애국적인 내용이거나, 비장하고 슬픔이 가득한 처량한 내용이거나, 남녀 간의 애정에 깊이 빠진 사랑을 노래한 것들이다. 하지만 오직 이 작품만은 세속에서 초탈한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 역시 내가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원인이다.

이청조의 사는 자연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마치 손닿는 대로 쓴 것처럼 자연스럽고 깔끔하면서도 정제되어 있다. 어떤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구상이 광활하다. 때문에 인간세상의 일체 행복과 일상생활이 그녀의 사 속에서 모두 다채롭게 표현된다.

이청조의 사는 빼어나게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며 소탈하면서도 호기(豪氣) 있는 독특한 풍격이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70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