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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의 상징적 의미: 진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진짜 요괴

글/ 순진(純真)

【정견망】

《봉신연의》 제6회 ‘무도한 주왕 포락형을 만들다’에서 사천대(司天臺)를 관장하는 태사 두원선(杜元銑)이 천상을 관찰하다 궁궐 내에 요사한 것이 뒤에서 나쁜 짓을 저질러 조정의 기강을 망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 천자를 모신 원로(元老)로서 군왕이 미혹되어 사직이 황폐해지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두원선은 특별히 상소를 올려 주왕(紂王)에게 간언하고 진정으로 자신이 맡은 직책을 다하는 모범을 보이고자 했다.

하지만 소달기는 본래 구미호가 부체한 몸인데, 얼마 전 운중자(雲中子)의 목검에 눌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번에 또 두원선이 비슷한 내용의 상소를 올리자 그를 더욱 미워하고 두려워했다. 이에 주왕을 미혹시켜 두원선이 요사한 것을 내세운 것은 구실에 불과하며 사실은 붕당을 결성해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남의 말만 믿고 사단을 일으키려 한다고 모함했다. 결국 무도하고 어리석은 임금은 요언으로 백성들을 현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직책을 다하고 충성스런 노신 두원선을 죽이게 하고 그의 목을 효수해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했다.

이 이야기에서 아마 어떤 사람은 두원선의 희생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데 왜냐하면 그가 때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요사한 것이 조정의 기강을 혼란시키고 간신이 권력을 장악한 상황 하에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밝은 지혜가 아닌가? 반대로 죽음을 무릅쓰고 직언하는 것은 너무 우매한 게 아닌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원선의 맡은 직책은 사천감으로 천상을 관찰해 길흉을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이를 알면서도 무시하고 임금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이는 관리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태사로서 자신이 관찰하고 추측한 상황을 임금에게 알린 것은 단순히 직책을 다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고 군주에게 충성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왜 당당한 일국의 군주가 진상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까? 왜냐하면 달기가 이렇게 진실을 말하는 충량한 선비들을 해치려 했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은 바로 달기가 진정한 요사(妖邪)이기 때문이다. 이런 충신들이 진상을 말하면 자신의 추악한 몰골이 폭로될까 두려워 일부러 상대방을 무고한 것이다. 청렴한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청렴하고 정직하고 당당한 사람은 중상모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몸이 바르면 그림자가 기울어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身正不怕影斜)”는 것이다.

진상(眞相)은 언젠가는 수면위로 드러날 날이 있게 마련이다. 반대로 진정으로 요사한 것일수록 진상을 더욱 두려워하며 자신의 진실한 면모가 폭로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한다. 때문에 늘 적당한 구실을 찾아 거짓과 폭력으로 진상을 말하려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진상을 은폐하려 든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언론의 자유라고는 거의 없는 오늘날의 중국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선량한 파룬궁 수련인들은 세인들에게 자신들이 박해받은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무정하게 공격을 받고 있다. 이지적으로 보자면 공민(公民)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말해주는 것으로 사회와 나라에 아주 좋은 유리한 일이 아닌가? 왜 “정치를 한다”는 누명을 씌워 탄압하는가? 이는 두원선이 충심으로 주왕에게 간언했다가 도리어 “요사스런 말로 민중을 현혹하고 민심을 어지럽힌다”며 모함당한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진정으로 요사한 것이야말로 남들이 진상을 아는 것을 두려워한다. 당시 주왕은 요사한 것의 조종을 받아 진실을 말하는 충신들을 죽였기 때문에 사직과 강산이 끊어지는 악보를 당했다. 지금 사람들이 이 일을 거울로 삼아 더 이상 과거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4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