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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가 오늘날 주는 교훈: 친정(親情)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글/ 순진(純真)

【정견망】

어른들은 흔히 ‘자식은 모두 빚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듣곤 한다. 대체적인 의미는 사람의 자녀는 전생에 자신과 아주 큰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다음 생에 이 인연을 끊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경우는 빚을 받으러 왔고 어떤 경우는 빚을 갚으러 왔다. 이 도리는 《봉신연의》 속에 아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나타(哪吒)는 본래 영주자(靈珠子)의 화신인데 이정(李靖)의 집안에서 태어나 천상의 변화에 따라 살계(殺戒)를 맺는다. 하지만 나타는 장난이 심한데다 또 뛰어난 법력을 지녔기 때문에 이정 슬하에서 적지 않은 재앙을 일으킨다. 나중에 나타가 용왕의 셋째 태자를 죽인 일 때문에 이정과의 부자 관계는 철저히 악화되었다. 결국 나타는 부친의 뼈를 깎아내고 모친의 살을 발라내는 것으로 이정 부부가 자신을 낳고 길러준 은혜를 청산한 것으로 친다.

하지만 나중에 이정은 나타가 자신의 사당에 있는 신상에 붙어 혼백(魂魄)을 기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타는 백성들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그의 신상을 훼손하고 사당을 불태워버렸다. 결국 나타의 혼은 의지할 곳이 없어 떠돌게 되었다. 이정의 이런 행동은 나타를 완전히 격노하게 했다. 때문에 나타가 나중에 태을진인에 의해 연화신(蓮花身)으로 부활한 후 최초로 하려고 한 일이 바로 이정을 찾아가 원수를 갚는 것이었다.

[역주: 나타는 원래 사당에서 3년간 백성들의 제사를 받으면 다시 완전힌 사람 몸을 얻어 환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6개월 만에 이정의 파괴를 받아 사람 몸을 얻을 기회를 상실하고 어쩔 수 없이 연꽃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

이정은 나타의 적수가 되지 못해 여러 차례 위기를 겪다가 나중에 운 좋게 연등도인(燃燈道人)의 구도를 받는다. 연등도인은 또 이정에게 전문적으로 나타를 제압할 수 있는 영롱보탑(玲瓏寶塔)을 전수해 주었다. 이 때문에 나타도 더 이상 함부로 하지 못하고 이정과 표면적으로나마 부자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정은 늘 자신의 보탑을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탁탑이천왕(托塔李天王 탑을 든 이 씨 천왕이란 의미)’이란 명호로 불리게 된다. 《서유기》에도 이정과 나타가 등장하는데 어느 날 이정이 깜빡하고 보탑을 몸에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를 만나자 몹시 두려워한다. 바로 나타가 예전의 원한을 잊지 않고 복수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보자면 인간세상에서 그 어떤 관계나 감정이든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여기에는 당연히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포함된다. 기왕에 모두 인연으로 온 것이라면 마땅히 인연에 따라 떠나기 마련이니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로선 자녀를 자신의 전부로 여기고 평생을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면서 자기 인생의 가치마저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아마 결말 역시 헛수고가 될 것이다. 흔히들 자식에게는 자식의 복이 있다고들 말하는데 자식을 너무 사랑하거나 자식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려 하면 오히려 그 반대로 될 수 있다.

아울러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사람이란 모두 역사의 장하(長河) 속에서 생생세세 윤회하면서 무수한 자녀가 있는데 금생의 자녀가 어쩌면 전생의 원수일지 모른다. 서로가 맺은 인연을 해결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풀고 나면 곧 각자 자신의 길을 가게 마련이며 서로 간섭하지 못한다. 이렇게 지속될 수 없는 관계와 불안정한 감정을 위해 자기 인생의 의미마저 소홀히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은 자신은 자녀를 위해 산다고 여기는 그런 사람들, 즉 자녀를 이상으로 여기고 사업으로 여기며 생명처럼 여기는 부모들에게 하는 말이다.

또한 전통 가족제도의 영향 하에 자녀를 자신의 작품으로 여겨 설계하고 만드는 부모가 있다. 이들은 늘 자녀의 인생을 안배하고 조종하려 하면서 자녀의 일생을 자신이 완벽하게 다 규정하려 하고 크고 작은 일에서 늘 일률적으로 도맡으려 한다.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말하지 않지만 최후에는 종종 다 ‘쓸모없는 근심’이 되고 만다. 사람에게 기왕 운명이 있다면 그럼 매 사람의 일생은 모두 고급생명에 의해 잘 배치된 것인데 어디 부모의 뜻에 따라 배치할 수 있겠는가? 아울러 만약 부모가 지나치게 강하게 자녀를 핍박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만든다면 그럼 자녀의 감정을 저촉할 뿐만 아니라 암암리에 업(業)을 짓게 된다. 그럼 다음 생에 다시 갚아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자녀가 된 것이 기왕에 빚 때문에 왔다면 그럼 마땅히 선념(善念)과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다그쳐 빚을 갚아야 한다. 빚을 져서 보답하러 왔다면 바로 고분고분하게 부모를 잘 봉양해 다그쳐 빚을 갚아야 한다. 반대로 빚을 받으러 왔다 해도 너무 교만하거나 사치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너무 많이 받아서 오히려 다시 빚을 진 사람으로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부모는 자녀에 대한 간섭을 내려놓고 자녀를 존중해야 하며 자녀는 부모에게 감사하고 효도해야 하는데 현재 인간세상 속에서 일종의 균형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