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성(舒醒)
【정견망】
흔히들 “내려놓아야만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구절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선의(禪意)’만은 아니며 진실로 존재하는 진리이다. 이 진리를 수련계에서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라고 한다. 아래에서 우리 생활 속의 일부 사례를 들어 이 이치가 객관적으로 진실함을 증명해보고자 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빅 데이터의 시대로 많은 사람들이 다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스마트폰은 전에 사람들이 말하던 손바닥 위의 컴퓨터로 수많은 기능을 갖고 있고 확실히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날로 발달하면서 서서히 카메라를 대체하고 있다. 핸드폰은 카메라보다 작고 예쁘면서 휴대가 간편하고 무선으로 보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실히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이 생긴 후부터 사람들은 늘 맘대로 무엇이나 다 찍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이지만 때로는 본말이 전도되기도 한다. 가령 여행의 목적은 본래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정서를 도야하고 흉금을 넓히고 천인합일(天人合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계에 도달하는데 있다.
하지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후부터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면 충분히 머물며 자연을 감상하는 대신 핸드폰을 꺼내 사진부터 찍는다. 하지만 대자연의 그런 뛰어난 신공(神工)을 핸드폰 하나에 의지해 눈으로 본 것과 마음으로 느낀 것을 다 담을 수 있겠는가? 이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데만 마음을 쓰고 실제 경치는 놓치게 되었다. 여행하면서 기분을 전환하려던 원래 목적이 사진을 찍고 “누구누구가 이곳에 왔다감”을 증명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지금의 핸드폰이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저장용량이 커지면서 일반적으로 핸드폰 안에 1만 장 이상의 사진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든 다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데 수천 장의 사진을 저장하는 시간도 그다지 많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시 특정한 어느 한 사진을 검색하려면 수천 장 속에서 찾아야 한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검색을 통해야만 사진을 찾을 수 있다면 이는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된다. 이 사진이 유일무이하게 자신만 지닌 게 아니면 아마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속도가 자신의 핸드폰을 넘기는 속도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이 ‘사진’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까?
쇼핑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입이 늘어남에 따라 물질적인 추구 역시 갈수록 커져 점차 사치하게 된다. 수입의 다소에 따라 쇼핑 품목 역시 달라지는 것이다. 즉 전체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의 구매욕은 점점 더 커진다. 이에 사람들의 집에서 방치된 많은 물건들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서랍에 가득한 옷, 계절별로 다양한 브랜드의 신발, 다양한 꽃무늬 색상의 사발 등이다.
사람들이 이 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아마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의상이 필요하다든가, 의상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신발이 필요하다거나, 다양한 꽃무늬 색상의 사발이 있으면 구별하기 용이하다는 등등이다. 하지만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이런 물건들을 지나치게 많이 구매하고 나면 나중에 대부분 방치된다. 어떤 옷이나 신발은 아마 1년에 한 번도 입거나 신지 않고 단지 소장품으로 삼거나 또는 공간만 차지할 뿐이다. 또 사발을 많이 구매한 후 어떤 사람은 사발이 다 더러워질 때까지 쓰고 나서야 세척하는데 이렇게 되면 사람의 타성을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일상을 돌아보면 그때는 비록 물질적으로 그리 풍요롭진 않았지만 오히려 만족하기는 아주 쉬웠다. 노인들은 흔히 “등 따뜻하고 배부른 게 행복”이란 말을 한다. 고인(古人)들은 ‘부유(富裕)’를 말했는데 여기서 ‘유(裕)’자는 ‘의(衣)’와 ‘곡(谷 穀과 통함)’을 따른다. 다시 말해 바로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있으면 곧 아주 부유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옷의 기본적인 기능은 바로 보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망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옷의 색상이나 스타일을 중시하며 브랜드를 중시하게 되었고 옷은 패션의 대명사이자 신분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배후의 실질은 사람의 허영심(虛榮心)을 조장하는 것이다. 아울러 많은 의복이 방치될 때면 그것이 서랍 속이나 상점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건은 그 쓰임을 다해야만 상품가치를 체현하는 동시에 상품 자체도 존중받게 된다. 우리가 돈으로 어떤 상품을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고 해서 진정으로 그것을 소유한 것은 아니다. 물질을 많이 점유하면 할수록 도리어 일부 소중한 품질을 잃게 된다.
때문에 총명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줄이는 법과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담을 줄이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심경(心境)이 밝아지고 예지(叡智)가 생겨날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여행할 때 사진을 적게 찍는 대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과 같다. 생활 속에서 필수품이 아닌 물건을 적게 살수록 돈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상품의 사용률을 늘릴 수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한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그의 집에는 거의 아무런 가구나 가전도 없었고 단지 TV 한 대만 겨우 두었다. 가족들이 모두 핸드폰에 빠지지 않고 가구 배치도 오락실이나 공방처럼 만들어서 가족들이 정을 교류할 기회가 더 많아지게 한 것이다.
사람은 욕망이 클수록 부족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때문에 ‘욕(欲)’이란 글자의 우측에 부족하다는 뜻의 ‘흠(欠)’이 있는 것이다. 고대 중국어에서는 또 ‘욕(欲)’을 ‘욕(慾)’이라 썼는데 정(情)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풀었다.
《주무왕장명(周武王杖銘)-주나라 무왕의 지팡이에 적힌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호라, 성냄과 넘어짐에서 위태롭고 망하게 되며(於乎危亡於忿)
오호라, 기호(嗜好)와 욕심에서 길을 잃게 되며(於乎失道於嗜慾)
오호라, 부하고 귀한 데서 망각이 오는구나.(於乎相忘於富貴)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사람이 욕망을 방종하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욕망을 내려놓고 담담히 해야만 마음이 부유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소위 “잃음이 있어야 얻음이 있다”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6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