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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가 오늘날 주는 교훈: 사람은 근본을 잊지 말아야

글/ 순진(純真)

【정견망】

《봉신연의》에서 무성왕 황비호(黃飛虎)의 아들 ‘벽령공(炳靈公)’ 황천화(黃天化)는 사부인 청허도덕진군(清虛道德真君)의 명을 받아 산을 내려와 강자아가 봉신하고 주왕을 토벌하는 것을 도우려 했다. 이때 마침 강자아는 사대천왕(四大天王)인 마씨(魔氏) 4형제에게 포위되어 곤경에 처해 있었다. 상생상극의 이치에 따르자면 황천화는 바로 사대천왕의 극성(剋聖)이니 당연히 이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황천화는 첫 전투에서 마예청(魔禮青)과 싸우다 불과 20합 만에 마예청의 백옥금강탁(白玉金剛鐲)에 맞아 어이 없이 죽고 말았다. 다행히 나중에 사부의 도움으로 겨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여기서 황천화가 죽은 원인을 살펴보자. 그의 사부인 청허도덕진군은 이렇게 말한다.

“짐승 같은 놈! 하산해서 훈채(葷菜)를 먹은 게 첫 번째 죄고 근본을 잊어버리고 옷을 갈아입은 것이 두 번째 죄다. 만약 강자아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네 녀석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41회 문태사 주나라를 정벌하다]

여기서 할 수 있다시피 수도인(修道人)은 원래 소식(素食)을 해야 하는데 황천화는 하산한 후 부친을 만나자마자 기쁜 나머지 일반 속인들처럼 훈채를 먹었다. 이는 도가의 청규(淸規)를 어긴 것이다. 또 수도인은 마땅히 도복(道服)을 입어야 하는데 하산하자마자 곧장 왕자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를 묘사한 소설의 한 대목을 보자.

“(황천화는) 드디어 두 쪽으로 상투를 틀고 왕자의 의상을 입은 후 속발관(束發冠)을 쓰고 황금 머리띠를 둘렀으며, 붉은 도포에 황금 갑옷을 입고 옥대를 찼다.”

이튿날 이런 차림으로 강자아를 만나자 강자아가 놀라서 그에게 말했다.

“황천화 자제는 원래 도문(道門)인데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옷을 바꿨는가? 내 비록 재상의 자리에 있지만 감히 곤륜의 덕을 잊지 못하네. 자네는 어제 하산하더니 오늘 옷을 바꿔 입는구먼. 아무래도 명주 띠를 하는 게 낫겠네.”

[제40회 사천왕 병령공을 만나다]

머리와 옷을 바꿔 입는 것을 무슨 큰일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여기서 우리는 수도인이 사도(師道)에 대해 존경하는 정도를 엿볼 수 있다.

흔히들 “초심을 잃지 않아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不忘初心,方得始終)”고들 한다.

1999년 7월 20일 이전 중국에서는 약 1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했고 또 심신에 이익을 얻은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이후 파룬궁이 무고하게 탄압을 당한 이후 많은 이들이 수련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반면으로 돌아섰다.

내가 알던 어느 경찰은 99년 이전에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많은 수익을 얻었다고 말했으나 99년 이후 나라에서 수련하지 말라고 했으니 하지 않는다면서 심지어 국안국(國安局) 요원이 되어 전문적으로 수련인들에 대한 박해를 돕고 있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분명 이런 경찰을 미워할 텐데 시류에 따라 은혜와 의리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비참한 것으로 자고로 수련이란 엄숙한 일이며 불도신(佛道神) 역시 자비와 위엄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 ‘근본을 잊으면’ 보응을 당하기 마련인데 이는 황천화 이야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실 대법 속에서 수익을 얻은 사람들은 수련자와 보통 사람들 중에 매우 많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명예와 이익이 손해 볼까 두려워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비방과 무함을 당할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역시 근본을 망각한 표현의 하나다.

부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난세에 양지(良知)를 지키고 은혜에 감사할 줄 알며 근본을 잊지 않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