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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간에서 표현되는 매달 재부(財富) 수지 

글/ 의함(意涵)

【정견망】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발전은 표면공간에서 그 표현방식과 운행되는 도식이 있고 다른 공간에서도 그 표현방식과 운행궤적이 있다. 돈을 가져다 쓰는 것을 말하자면 사람이 돈을 쓰는 방면에 대략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이다. 돈을 손에 잔뜩 들고 뿌리는 느낌이다.

또 하나는 돈을 쓰는데 절제와 계획이 있는 사람이다.

또 하나는 돈을 쓰지 않은 사람인데 힘껏 돈을 모으지만 매우 인색한 사람이다.

그러면 이런 것은 다른 공간에 어떻게 표현되는가?

한번 무의식중에 다른 공간의 장면을 보았다.

당시 나는 어떤 동수와 평소 절약하지 않고 돈을 물 쓰듯 하는 어느 어른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다른 공간의 장면을 보게 되었다. 바로 컨베이어벨트 같은 장치가 있어서 밀봉한 작은 단지를 운반해왔다. 그 어른은 입구를 뜯더니 동전을 한 움큼 집어 눈처럼 뿌렸는데 단번에 돈을 다 써버린 후 다시 한줌 집어서는 또 다 썼다. 그 사람은 이렇게 돈을 써도 해갈되지 않은 것처럼 단지를 들어 깨부수었고 동전이 온 바닥에 흩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손으로 동전을 주웠고 돈은 금방 없어졌다. 그는 이후 보름간 쓸 돈이 없었다. 그는 웃으며 손을 가족의 돈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본 것을 동수에게 말하자 자기도 모르게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 어른은 확실히 이렇게 돈을 썼는데 절약하거나 계획이 없었다.

곧 나는 또 하나의 영상을 보았다. 그 컨베이어벨트는 또 작은 단지를 보내왔다. 하나의 손이 입구를 열더니 다른 한 손이 그 속에서 크고 작은 두 덩어리 금을 꺼내고는 조심스럽게 입구를 봉했다. 이 사람은 돈을 절제하며 쓰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 집 재부의 내원과 돈을 쓰는 방식이었다.

생사(生死)에는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들 모두 말한다. 한 개인의 재부(財富)의 내원은 정말 특정한 방식이 있는 것으로, 돈이 오는 방식과 쓰는 방식 모두 다른 공간에서 그것의 표현이 있다. 그 어른의 월급은 2천 위안도 안 되고 내가 아는 지인의 월수입은 거의 3만위안에 달한다. 때문에 다른 공간에서 재부의 표현방식도 다른 것이다.

[역주: 앞에 예로 든 어른은 수입이 얼마 안 되니 다른 공간에서 동전으로 나타났고 수입이 많은 지인은 금덩어리로 표현되었다는 의미.]

얼마 후 내가 다른 한 동수가 함께 있을 때 이 동수 재부의 내원방식을 보았다. 바로 가끔씩 약간의 은자가 한 덩이씩 한 덩이씩 동수에게 날아왔다.

나는 동수에게 말했다.

“어떤 동수는 당신이 돈이 없어서 어떻게 생활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하던데 사실 당신은 돈이 있네요. 큰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돈이 부족하진 않아요.”

동수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 아들이 늘 300~400위안씩 보내주거든요.”

이 동수는 생활에 매우 절약하며 입고 먹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생활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돈을 모을 수 있다.

속인 중에 “돈이 있으면 요긴한 곳에 써야 한다.” “버는데 도리(道)가 있고 쓰는데 법도(度)가 있다.”는 말이 있다.

돈을 펑펑 쓰는 사람에게 있어, 자신의 습관을 바꿀 수 있는가 여부는 사실 자신의 돈쓰는 습관을 참을 수 있는가? 돈을 쓰려는 사유를 억제할 수 있는가? 인이 박힌 신경을 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사실 명백히 말하면, 바로 돈을 쓰려는 자신의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사실 무슨 일을 해도 다 법도(度)가 있어야 한다.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은 다 좋지 않다. 그럼 암암리에 표현되어 나온 그것은 반드시 그런데 고칠 수 없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한 사람의 자신의 결점을 고치려는 소원이 있고 자기를 규범을 지어 고치기로 결심하면 다른 공간의 운행하는 것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며 필경은 “상은 마음에서 생긴다(相由心生)”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자 나는 갑자기 나의 부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버지는 돈을 벌 생각만 하고 쓰려고 하지 않는 분이다. 돈을 쓸 때도 한 푼을 쪼개 두 푼으로 나누어 쓰지 못함을 한스러워 한다.

아버지는 1958년 대약진을 겪었고 1959년 대기근이 일어났을 때 하마터면 굶어 죽을뻔한 위기를 겪으셨다. 다음 이야기는 아버지가 내게 말해주신 것이다.

어느 봄 생산대에서 콩을 심을 때 아버지는 굶주린 나머지 씨앗을 보자마자 눈앞이 번쩍였고 콩을 심을 때 그는 몇 구덩이를 빼고 한 구덩이에 한줌의 콩을 놓았다. 저녁에 일을 끝내고 물을 한배 가득 채운 부친은 해가 질 무렵 밭에 가서 십여 개의 콩을 파내 마을로 가져왔다. 하지만 거의 집에 닿을 무렵 촌장에게 들켰다. 촌장은 음험한 사람이라 뭐 하러 갔느냐고 물었고 부친은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 했다. 수중에 든 콩을 빼앗겼고 촌장은 사람을 시켜 그를 외양간에 매달고 채찍으로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마지막에 컴컴한 집에 갇혀 사흘간 굶겨 그 속에서 죽는 줄 알았다. 다행히 할머니가 울며불며 사정해서 겨우 풀려났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당시 마을에서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는데 처음에는 시신을 밖으로 들고 나갔으나 나중에는 아예 밧줄로 묶어 소로 끌어냈다고 한다.

마을을 지키는 민병(民兵)이 있어서 주민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당시 14살이었던 부친은 살기 위해 몰래 도망갔고 산해관을 넘어 동쪽으로 갔다. 관을 지나는 기차에서 여승무원은 특히 매정하여 표가 없는 사람을 잡아서 구둣발로 짓밟고 수용소에 집어넣었다. 먹을 것이 없어 냉수를 마시며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자야 했다. 잡히면 회송되었지만 부친은 다시 탈출했고 또 기차에 올라탔다.

당시 12살 먹은 안휘성 출신의 소년과 함께 했다. 전에 수용소에서 부친이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돌아와 보니 자기가 천신만고 끝에 모은 돈이 없어졌다. 그는 안휘 소년이 훔친 것이라 생각했다. 소년은 자기가 훔친 것이 아니고 아마 어느 어른이 훔쳤을 것이라고 하며 그는 적극적으로 부친을 돕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상의하여 그 어른이 화장실에 갔다 돌아와 누우려는 순간 둘이 덤벼들어 그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고 물건을 수색했다. 결과 그 돈이 그 사람이 훔친 것을 찾아 소년은 혐의를 벗었고 부친의 눈에 믿을 만한 동생으로 되어 둘이 서로 의지했다.

철령(鐵嶺)을 지나서는 좀 나아졌으며 수용소에서는 옥수수 죽을 제공했고 깨어있을 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얼빈에 온 후 하얼빈에서 몇 달을 구걸하며 사셨다. 하얼빈에 러시아인 거리가 있었는데 러시아인들은 착해서 구걸하면 빵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식사시간에 맞춰서 가면 집주인이 유랑하는 아이들을 집안으로 들여서 한 끼 풍성하게 먹게 해주었다. 빵, 소시지, 고깃국이 있었다. 떠날 때면 안주인이 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다.

하지만 중국인이라면 그렇게 잘해주지 않았다. 어떤 현지인은 문을 열고는 험악한 소리로 욕을 했고 어떤 이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은 옥수수 빵을 주면서 “위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했으니 내가 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라고 했다.

부친은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고 17살 때 할머니와 세 동생을 데리고 나와 동북 시골 마을에서 자리 잡았다. 원래 시골에서는 외지인을 업신여겼는데 할머니와 네 명의 아들은 모두 사나워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은 외지인이 되었다.

부친은 27세 때 주머니에 120위안을 가지고 고향에 가서 모친을 데려왔다. 모친의 차표는 외할아버지에게 빌려서 샀다. 부친은 돌아온 후 90여 위안을 할머니에게 주었다.

엄마는 올해 77세인데 갑자기 균형을 잃고 불평을 하며 자기가 젊었을 때 억울한 일을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잠을 잘 못 주무시는데 젊을 때 일이 억울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모친은 내가 보는 앞에서 부친에게 항의했다.

“내가 당신에게 끌려온 후 어머니는 문 밖을 못나가셨어. 마을 사람들이 다들 ‘돈을 얼마나 받았기에 딸을 먼 타향으로 보내느냐, 돌아오지도 못할 텐데.’라고 했어.”

모친은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부친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부친이 예의를 따지지 않고 의리와 이익 중에서 이익을 우선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11살 때 어머니와 강소(江蘇)의 고향에 간 적이 있었다. 돌아온 후 나는 부친 마을의 어느 장애인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땅에 앉아서 손으로 짚고 움직였으며 몸에는 악취가 났다. 부친이 그 말을 듣고는 “그래도 싸지”라고 했다. 내가 오빠와 함께 아버지한테 너무 동정심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부친은 우리에게 그 장애인은 촌장이었는데 어떻게 촌민을 학대했는지 말해주었다. 하늘이 눈이 있어서 나쁜 사람이 악보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40세 때 설이 지난 후 친정에 갔다. 부친은 일찍 일어나 내게 당신이 하얼빈에서 유랑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것은 내가 유일하게 부친에게 들은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부친은 딸인 나를 보고는 말했다.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복이 있니. 먹을 거 입을 거 걱정거리가 없지 않느냐.”

부친은 낭비를 미워한다. 어떤 사람이 음식을 가려먹으면 곧 이렇게 말한다.

“저것들을 58년도로 보내 굶겨봐야 정신을 차릴 거야.”

부친은 돈을 모으는데 노력해서 딸을 학교에 보내 운명을 바꾸게 했다. 딸들은 모두 잘 되어 부모에게 선물을 해주었다. 부친의 절약 근검 습관은 이미 깊이 뿌리내렸다.

엄마는 내게 “네 아버지의 절약은 나도 견딜 수 없단다. 네가 사온 과일을 아버지가 먹으려 하지 않기에 내가 좀 먹어보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무가 달고 시원하니 나더러 사과를 먹고 자신은 무를 먹겠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부친은 몇 년 전 양을 길렀다. 내가 고향에 돌아가 과일을 먹을 때 부친은 껍질을 가져다 양에게 주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설날에 모친이 말했다.

“우리 집 큰 양이 죽었단다. 새끼를 배고 있었는데, 애석하지. 네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났다.”

부친은 또 과일 껍질을 가져갈 때 나는 갑자기 생각나서 부친에게 말했다.

“과일 껍질은 그냥 버리세요. 껍질에 농약이 묻어 있어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바나나 껍질에도 농약을 뿌린대요. 양이 아마 농약 때문에 죽었을 거예요.”

나는 마찬가지로 부친의 재부 내원을 보았다. 컨베이어벨트가 한 단지의 돈을 운반해왔는데 그것은 소작지 수입이었다. 부친은 열지 않았다. 이따금 은자가 비에 날려 왔는데 금도 날려 왔다. 그것은 자녀들이 보내준 돈이다. 부친은 새나가지 않도록 모았다. 여름이면 늘 동전 꾸러미가 컨베이어벨트에 운반되어 왔는데 그것은 부친이 채소를 팔아 번 돈이었다.

부친은 손자나 외손자에게도 물건을 사주기 아까워한다. 모친이 몰래 내게 말했다.

“네 올케가 큰 조카더러 아버지를 ‘수전노’라고 하더라.”

부친은 속으로 불평하면서 내게 말했다.

“내가 돈을 모은 것은 다 너희들에게 남겨주기 위해서야.”

우리 시어머니는 부친에게 “사돈어른, 제가 농담 하나 해겠습니다. 사돈이 이렇게 사시다 돌아가시면 자신에게도 미안하실 거예요. 저승에 가시면 저승사자에게 뇌물을 꼭 주셔야 해요. 모두들 염라왕은 편하지만 저승사자는 까다롭다고 하거든요. 그러니 이 돈은 아끼지 마세요.”라고 했다.

한 사람의 일생 표현은 자기의 경험과 관련이 있어서 형성된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 부친은 돈 모으길 좋아하고 또 “쓰라린 과거 회상”을 좋아하신다. 또 우리를 세뇌시키셨다. 내가 어릴 때 가장 싫었던 것이 부친이 섣달 그믐 저녁을 먹을 때면 늘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며 설날이 되어도 조금만 먹으며 이렇게 말하셨다.

“전에는 이것도 없었어. 전에는 이러저러했단다.”

우리는 하도 들어서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반감이 생겼다. 내 생각에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후 무정하게 한 세대의 사람들을 짓밟아 그들이 배고픔과 추위, 투쟁 등을 거치게 했고 때문에 이들의 사상을 왜곡시킨 것이다.

사실 사람이 습관에 통제되는 것은 가련한 것이다. 내가 부친에게 먹을 것을 사다드리고 보따리를 주렁주렁 들고 집에 가면 부친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부친이 몰래 내게 말한다.

“얘야, 물건 사오지 말고 돈을 주거라. 내가 모으면 나중에 다 너희들 거란다.”

나는 “아버지가 안 드시면 어머니가 드실 거예요. 어머니는 오랫동안 고생하셨잖아요. 명절에 제가 돈을 드리지 않았어요? 오빠도 돈을 적지 않게 드렸을 텐데요? 2천 위안인가 5천 위안 드렸잖아요.”

부친이 이 말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빠에게 이 일을 말하자 오빠가 웃으며 말했다.

“노인네가 돈 모으는데 재미를 붙이셨군, 올해 통장을 하나 찾으셨는데 아버지가 깜빡하고 잊어버리셨더군. 거기에 1만 위안도 넘게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났더구나.”

금년에 부친은 또 나에게 물건 말고 돈을 달라고 하셨다. 나는 문득 부친의 신체 표면에 미시적인 한 층의 생명 형상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비루한 생명인데 매우 가혹하게 생겼고 얼굴 색깔은 오래된 구리 색이며 눈의 형상은 바로 동전의 형상이었다. 눈초리는 온통 계산으로 가득 찼고 그 속에는 구석은 탐욕으로 가득했고 머리카락은 한 가닥 한 가닥 동전꾸러미 묶는 줄로 묶여 있었다. 그 위에는 동전에 꿰어져 있어서 돈 모으는 귀신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 사람 습성의 배후에는 사실 그것을 형성하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바로 돈 모으길 좋아하는구나. 나는 동전구멍으로 인생을 본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인들이 하는 어떤 말은 결코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가령 구두쇠니, 꾀돌이니, 아편쟁이, 술귀신, 노름귀신, 색마 등등이라고 하는 말이 실제로 우리 육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공간에 정말 그런 생명이 존재해서 그 사람을 주재하며 진정한 자아가 나오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자신을 고치려면 정말 힘들다. 우리는 세상에서 형형색색의 사람들과 왕래하는데, 관계가 멀거나 가까운 사람이 있으며 인정이 두텁거나 없는 사람이 있다. 왕래하는 가운데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이치와 표준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한다. 자기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속으로 넘기지 못하며 불평한다.

사실 우리는 바로 관념과 겨루고 있는 것이다. 명백히 말하면 아직도 우리의 흉금을 활짝 열지 못하고 활달하지 못하며 지혜가 부족한 것이다. 때문에 표현이 평화롭지 못하다. 인생이요, 관념이요, 도리요, 이런 것들을 정말 투철히 볼 수 있다면 곧 용량이 커지고 담담하게 포용할 수 있게 되는데 어떤 일은 아마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9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