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우(林雨)
【정견망】
남송(南宋) 말기의 재상 문천상(文天祥)은 일찍이 원나라 군대에 잡혀 감옥에서 삼년을 있었지만 끝내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야기이절夜起二絕〉이란 이 시는 그가 피살되기 전에 지은 것이다. 전문 28자다.
삼년 독립하여 이미 승려가 되었으니
누구와 더불어 갈등을 말할까
밤마다 옆방에서 죄수가 부처를 부르는데
삼생인과가 외로운 등불과 함께 하누나
三年獨立已成僧
欲與何人說葛藤
夜夜隔牆囚叫佛
三生因果伴孤燈
“삼년 독립하여 이미 승려가 되었으니 누구와 더불어 갈등을 말할까”
첫 두 구절은 시인이 자칭 승려가 되었고 송나라 신하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때 문천상의 심태가 이미 달라졌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3년이란 그가 원나라에 체포된 기간을 말한다. ‘승려가 되었다’는 것은 시인이 붙잡힌 후 3년이란 시간을 거쳐 천천히 승려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문천상은 이 3년간 천천히 수련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갈등(葛藤)’이란 인간세상의 시시비비를 말한다. 여기서 만약 큰일이라면 마땅히 원나라 군이 송나라를 침입한 일일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일부 생활 중의 일일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시인이 누구와 함께 자신의 심사(心事)를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감옥 안에는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역시 일종의 필연이다.
“밤마다 옆방에서 죄수가 부처를 부르는데 삼생인과가 외로운 등불과 함께 하누나”라는 뒤의 두 구절에서는 누가 시인을 수련의 길로 이끌었는지 모르겠지만 “죄수가 부처를 부른다”는 말은 부처수련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삼생인과(三生因果)’가 아주 중요하다. 문천상은 옥중에서 이미 자신의 전생 인과를 알았다는 말이다. 작은 데서 말하자면 자신이 금생에 감옥에 수감된 원인이 이전에 한 일 때문에 조성된 것이고 큰 점에서 말하자면 아마 송조(宋朝)가 멸망한 일의 인과관계일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문천상은 감옥 안에서 개오(開悟)해 자신의 전생을 알았다. 나중에 문천상이 당당하게 죽음을 마주한 것에는 이런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외로운 등불과 함께”란 자신이 외로운 등불 아래 개오한 것이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개오한 것과 유사한 점을 말한 것이다.
문천상은 일찍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겠다는 심태를 품고 원나라에 맞서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와 모든 것이 변했다. 문천상은 인생의 진리란 바로 수련임을 분명히 알았다. 명리란 눈앞에 지나가는 연기와 같아서 사람이 일단 진리(真理 수련)를 알게 되면 곧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문천상은 이 일체를 간파하고 비로소 담담하게 죽음을 대했던 것이다. 물론 “삼생인과” 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문천상도 자기의 죽음이 전생의 잘못과 죄과를 상환하는 것임을 알았고 일종 필연임을 알았다. 때문에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한 생명으로 말하자면 자살이란 생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으로 신(神)에 대한 모독이다. 소위 생사를 내려놓음은 바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역시 문천상이 왜 삼년간 옥중에 있으면서 자살하지 않았고 또 원나라 황제가 그를 죽음으로 핍박했을 때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원인이다. 이 모든 것은 문천상이 수련의 길을 걸은 것에 기인한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해낸 사람은 동서고금에 정말로 많지 않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시인의 경계(境界)를 학습하는 가치일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2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