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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는 옷과 먹은 밥의 오묘함

【정견망】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입을 것과 먹을 것은 가장 필요한 것으로 사람의 이 육신(肉身)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전제다. 동서고금에 입을 것과 먹을 것에는 각기 특색이 있었고, 각 조대(朝代)마다, 각 나라마다 모두 각자의 복식과 음식 습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입고 먹는 것에 대체 어떤 오묘함이 있는가?

가령 전국시기 사대부이자 애국시인인 굴원(屈原)은 높은 모자를 쓰고 넓고 소매가 큰 도포를 입고 긴 허리띠에 옥 장식을 한 정인군자(正人君子)의 모습이다. 이는 재주가 넘치고 수양이 있는 사대부의 형상이다. 사실 이런 옷은 단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자신을 일깨워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게 만들어 너무 속되지 않게 하며 신분이나 지위, 수양을 드러낸다.

또 위진(魏晉)시대 명사(名士)들은 몸에 걸친 고귀한 새 옷을 헤지고 낡은 의복으로 바꿔 입었다. 오직 단약을 복용해 도(道)를 물어 신선이 되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옷을 바꿔 입은 것이다. 헌 옷으로 바꿔 입으면 편안한데 지금 어떤 사람들이 찢어진 옷을 입는 것과는 같이 논할 수 없다.

또 태극진인(太極真人) 장삼풍(張三豐)은 더럽고 찢어진 옷을 입었고 빨래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수도인(修道人)으로서 집착을 제거하고 번잡한 것을 피하는 것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는 그 어떤 냄새도 나지 않았고 온몸에서 오히려 향기가 나왔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한족(漢族)의 전통의상인 한복(漢服)은 아주 고귀한 것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 대응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넓은 도포와 큰 소매는 사람의 흉금을 넓히고 옷에 그려진 도안(圖案)은 사람을 일깨워준다. 빈틈없이 몸을 감싸 바람이나 사기의 침입을 막아준다. 또 이런 옷을 입으면 걸음걸이도 차분해져서 매 걸음마다 하나의 발자국을 남긴다. 사람이 만약 늘 한복을 입는다면 자연히 예절에 밝고 점잖으며 자신을 단속하고 흉금이 넓은 기질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음식을 살펴보자. 서주의 주공(周公)은 자신의 수양을 더 잘하고 실수를 줄이도록 술을 경계했다. 왜냐하면 술은 사람의 본성을 어지럽힐 수 있게 때문에 도덕이 부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위진(魏晉) 명사들은 술을 방탕하게 마셨는데 늘 곤드레만드레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 이는 단지 주의식을 마비시켜 통치자와 함께 더러워지지 않고 자신의 결백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당 현종은 태자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했고 강희제는 황자(皇子)들을 교육하면서 모두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절약하도록 가르쳤으며 옷과 음식에서 안일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했다.

지금에 이르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옷을 입을 때면 브랜드, 섹시함, 괴이함을 추구한다. 이런 옷을 입으면 미감(美感)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온몸이 병들기 쉽다. 수치감이나 영예감도 없고 독립성도 없다. 음식에서도 괴이한 맛과 변태경향을 추구하는데 무엇이든 다 먹는데, 심지어 멸종위기 종까지 함부로 먹는다. 그러면서 이를 인생의 아름다운 일로 간주한다.

사실 옷과 음식(衣食)은 단지 생존의 필수품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추위를 막으며 부끄러운 부위를 가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 본질에서부터 말하자면 옷과 음식은 선념(善念)과 사랑을 전달하고 인심을 교화한다.

간단히 말해서 옷과 음식의 정도(正道)는 음식을 먹되 즐기지 않으며 입으로 탐하지 않아야 한다. 옷을 입되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어야 한다. 옷과 음식이 부족해도 역시 평소처럼 편안해야 하고 산해진미가 눈앞에 있어도 흔들리거나 놀라지 말아야 한다.

만드는 사람은 경솔하게 교묘함을 취하지 말아야 하며 소비자는 이것을 좋아하고 저것을 가리는 편애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곳곳에서 양지(良知)로 가늠하고 시시각각 하늘의 뜻에 따라 가늠한다면, 나아가면 각종 고달픈 마음씀을 관찰할 수 있고 물러나면 자기 언행의 잘못을 반성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