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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결론: 은자와 인연이 없었던 시인

장원지(張元之)

【정견망】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다고.

이 산에 계심은 분명한데,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른다네.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이 작품은 당조 시인 가도(賈島)의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함(尋隱者不遇)》이란 시다.

이 작품은 간결하고 세련되지만 의경(意境)이 아주 깊다. 아주 유명한 심선시(尋仙詩 신선을 찾아가는 시)의 하나다. 사실 이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면 애초 이번 방문이 실패로 돌아가도록 정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다고.”

이 구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방문했을 때 공교롭게도 은자가 약초를 깨러 나갔다고 여긴다. 사실은 그 은자가 일부러 시인을 피한 것임을 모른다.

또한 “이 산에 계심은 분명한데,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른다네.”라는 결론부에서 은자는 “이 산 속” “구름 깊은” 곳에 숨었다. 기왕에 은자라면 어찌 또 시인이 만날 수 있겠는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심산(深山)에 가서 은자를 만나려는 이유는 단지 상대방의 고견을 들어보고 돌아와서 자신의 감수를 써내려 하거나 심지어 무슨 명작을 써내어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진정한 은자는 모두 수도인(修道人)으로 신통(神通)이 있기에 당신이 찾아오는 목적이 무엇인지 안다.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진법(真法)을 찾으러 왔는가 아니면 뭔가를 좀 배워 밖에 나가 자신의 공명(功名)과 이록(利祿)을 얻으려고 하는지 그 은자는 척 보기만 해도 다 안다. 남은 당신더러 진정한 대도(大道)를 가르치려 하는데 당신더러 명리를 위해 사용하게 할 수 있는가? 분명히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시인이 정말로 진법을 찾으려 했다면 그럼 심산에 머물러야 했다. 하루에 안 되면 이틀, 이틀에 안 되면 사흘을 머물며 꾸준히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시인은 한 번 시도해보고 가망이 없다고 곧 떠나버렸다. 수도(修道)라도 좋고 그 어떤 일이든 다 좋은데 모두 항심(恒心 꾸준히 견지하는 마음)을 지녀야 하며 견정(堅定)한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물론 시인은 사람이고 또한 오늘날 대법을 위해 일종의 문화를 개창했다. 이렇게 본다면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그는 아마 이런 방식으로 일생을 보내며 한차례 연기로 한 가지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바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한 갈래 길과 한 가지 교훈을 남기려는 것인데 대체로 이러하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보기에 이렇지 않으며 그 속의 오묘함을 분명히 알 수 있으니 바로 항심의 역할이다.

진심으로 도를 닦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데, 다른 그 어떤 목적도 모두 진도(真道)・진법(真法)을 스쳐지나갈 뿐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77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