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紫穹)
【정견망】
【원문】
달마는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넜고
난파는 입에 머금은 술로 불을 껐다.
오맹은 강물을 갈라 길을 만들었고
마고는 쌀을 뿌려 구슬을 만들었다.
도인과 태식은 도사들의 수지(修持)이고
비석(飛錫)과 괘석(掛錫)은 승려들의 행동이다.
승려의 인사예절을 화남(和南)이라 하고
도사의 인사예절을 계수(稽首)라 한다.
達摩一葦渡江,欒巴噀酒滅火。
吳猛畫江成路;麻姑擲米成珠。
導引胎息,道士之修持;
飛錫掛錫,僧人之行止。
僧家拜禮曰和南,道家拜禮曰稽首。
【주석】
(1) 달마(達摩): 달마는 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창시인으로 원래 천축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이다. 전설에 따르면 달마가 금릉(金陵)에 와서 양무제(梁武帝)를 만났을 때 대화가 통하지 않자 강북으로 건너가려 했는데 타고 갈 배가 없었다. 이에 갈대 하나를 이용해 장강(長江)을 건넜다.
(2) 난파(欒巴): 난파는 후한(後漢) 시기 위군(魏郡) 내황(內黃 지금의 하남성 내황 서북쪽) 사람이다. 또는 촉군(蜀郡 지금의 사천 성도) 사람이라고도 한다. 자는 서원(書元)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도술(道術)에 통달했는데 한 환제(桓帝)가 술을 하사했다. 난파가 뜻밖에 술을 마시지 않고 서남쪽을 향해 술을 뿜었다. 어떤 사람이 황제에 대한 불경이라고 하자 황제가 불러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성도에 화재가 나서 술을 뿜어 불을 껐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람을 파견해 확인해보니 성도에 정말 화재가 발생했었다고 보고했다.
(3) 오맹(吳猛): 진대(晉代)의 도사로 자는 세운(世雲)이다. 삼국시대 후기에서 양진(兩晉)시대 사이의 유명한 도사이자 중국 전통 24효자 중 하나로 “모기에게 피를 물린” 주인공이다. 오맹이 여덟 살 때 밤만 되면 모기가 자기 몸을 맘대로 물어뜯게 했다. 이렇게 자신의 피를 모기에게 배불리 먹으면 부모님을 물지 않을 거라 여긴 순수한 효심은 정말로 감동적이다. 그는 성장한 후 수련의 길에 들어섰고 신인(神人)의 전수를 받아 세간에서 도술을 크게 펼쳤으며 수많은 신적(神跡)을 보여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부채를 이용해 강에 길을 그리고는 스스로 걸어갔다고 하는데 이 길은 나중에 저절로 사라졌다.
(4) 마고(麻姑): 중국에서 아주 유명한 고대의 여자 신선이다. 그녀는 일찍이 신선 왕원(王遠)의 요청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채경(蔡京)의 집에서 같이 머물며 왕원에게 “그대를 다시 만나니 이미 동해 바다가 3번이나 뽕나무밭으로 변했다”고 했다. 여기서 ‘창해상전(滄海桑田)’이란 전고가 유래되었다. 후세에 늘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왕원 및 채경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쌀을 뿌리자 진주(珍珠)로 변했다고 한다.
(5) 비석괘석(飛錫掛錫): 불가 용어. 석(錫)은 승려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말하는데 위에 고리가 달려 있다. 승려들이 휴대하는 물품이다. 승려들이 먼 길을 떠날 때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비석(飛錫)’이라 하며 숙박할 때는 땅에 내려놓지 않고 늘 걸어두어야 했기에 ‘괘석(掛錫)’이라고 했다.
(6) 도인(導引): 고대 수도자들이 하던 일종의 연공(練功) 양생법(養生法)이다.
(7) 태식(胎息): 고대 연공에서 호흡법의 일종이자 또한 양생법의 하나다. 태아가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처럼 입과 코를 사용하지 않고 호흡한다.
(8) 화남(和南): 원래 산스크리트 어를 음역(音譯)한 것으로 승려가 두 손을 마주하고 합장하는 예절을 말한다.
【평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분명 고승(高僧)이 신통(神通)을 운용하고 도사나 신선이 도술(道術)을 운용해 사람들에게 펼쳐 보인 각종 신적(神跡)이다. 그야말로 “팔선이 바다를 건너며 각기 신통을 드러낸다(八仙過海 各顯神通)”고 할만하다.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역사적으로 유명한 많은 수행자들이 남긴 이런 신적이야기를 보게 되면 반드시 신불(神佛)을 믿을 것이다. 설사 오늘날의 사람들이라도 일단 이런 역사 이야기를 접촉하기만 하면 훨씬 친밀함을 느끼고 또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것처럼 느껴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에 알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활연히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아 이야말로 우리 중화민족의 진정한 문화로구나, 신선(神仙)의 대자재(大自在)한 경계(境界)는 사람들에게 신을 동경하게 만든다. 고인(古人)은 몇 천 년간 신을 믿고 덕을 중시해왔으며 수행하고 도를 얻는 문화를 남겨왔다. 진실로 현묘하다.”
일화 1: 갈대를 타고 장강을 건너 9년 면벽한 달마
보리달마는 남천축(南天竺)의 바라문(婆羅門) 출신이다. 그는 신통력과 지혜가 매우 밝아서 듣는 것은 모두 환히 깨달았으며 대승에 뜻을 두고 마음을 허적(虛寂)에 일치시켰으며 미묘함을 통달하고 드나드는 숨을 세는 관법을 꿰뚫어 선정(禪定)에 뛰어났다.
양무제(梁武帝) 보통(普通) 원년(520년) 광주에 도착했다. 무제가 사신을 파견해 수도인 금릉(金陵 지금의 남경)으로 불렀다.
무제가 직접 만나 물었다.
“짐이 즉위한 후 천 개의 절을 짓고 천개의 탑을 쌓고 2만여 스님들을 공양했는데 그 공덕(功德)의 크기는 얼마나 됩니까?”
달마가 대답했다.
“무슨 공덕이랄 게 없습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다고 합니까?”
“이는 누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공덕이 있겠지만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진짜 공덕입니까?”
“청정한 지혜로 오묘하고 원만하여 본체가 본래 공적(空寂 텅 비어 고요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공덕은 세속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성스러운 교리 가운데 첫째 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달마가 대답했다.
“텅 비어 성스러울 게 없습니다.(廓然無聖)”
무제는 이 속에 담긴 현기(玄機)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달마는 양나라를 떠나 갈대를 타고 장강(長江)을 건너 북위(北魏)로 들어갔다. 그가 낙양에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수행했으며 벽을 마주하고 9년을 가부좌했다.
공을 이루고 원적(圓寂)한 후 웅이산에 장사지냈다. 그가 면벽했던 석벽에 신기하게 그의 형상이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사찰에 모시고 있다.
나중에 동위(東魏)의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2년 만에 서역에서 낙양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총령(蔥嶺 파미르고원)을 지날 때 달마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손에는 짚신 한 짝만 들고 승복을 걸치고 맨발로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송운이 달마에게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자 달마가 서천으로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대의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성으로 돌아가시면 나를 봤다고 말하지 마세요. 잘못하면 화를 당할 겁니다.”라고 했다.
송운은 달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경성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명제가 이미 붕어하고 효정제(孝靜帝)가 즉위한 사실을 알았다. 송운이 새 황제에게 도중에 총령에서 달마를 만난 일을 언급했다.
효정제는 처음에 달마가 죽은 것을 알기에 화를 내며 송운을 꾸짖었다. 그러나 송운이 끝까지 달마를 만났노라고 하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달마의 관을 열게 했다. 열어보니 과연 짚신 한짝만 남아 있었다.
사실 도를 닦고 부처수련을 하는 목적은 신이 되려는 것이니 당연히 사람보다 표준이 높고 마음을 닦고 덕을 중시하는 것이 진리이다. 만약 명리에 연연하고 욕망과 집착을 하나라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많은 사찰을 세워도 여전히 도를 이루거나 신이 될 수 없다. 기껏해야 부처를 공경하는 좋은 일을 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돈을 기부해서 성불할 수 없겠는가? 사람마음의 욕망을 제거해야만 공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사람 층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천기는 똑똑히 말할 수 없기에 달마는 양무제가 깨닫지 못한 것을 보고 그냥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화 2: 요괴를 없애고 불을 끈 태수 난파
난파(欒巴)는 사천 성도(成都)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도(道)를 좋아해 속세의 일을 배우지 않았다. 당시 파릉(巴陵) 태수가 직접 난파를 찾아와 공조(功曹 역주: 진한시기 지방 태수나 현령을 보좌하는 직책)가 될 것을 청하면서 스승이나 벗처럼 예우했다.
난파가 공조로 있을 때 한번은 태수가 말했다.
“듣자 하니 공조께선 도(道)가 있다던데 그 기묘함을 한번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난파가 “예”라고 대답했다
곧장 가부좌를 하더니 벽속으로 들어갔는데 마치 구름처럼 연기로 피어올랐다. 잠시 후 아무도 난파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벽 밖의 사람들은 벽에서 호랑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다. 호랑이는 곧장 공조의 관사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따라가서 보니 호랑이는 바로 난파가 변화한 것이었다.
나중에 난파는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중(郎中)이 되었고 다시 예장태수(豫章太守)가 되었다.
여산(廬山) 사당에 신(神)이 있었는데 장막 안에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실 때면 공중에 잔만 들려 있었다. 사람들이 가서 그에게 빌면 강과 호수에 각기 다른 방향의 바람을 불게 해 반대 방향으로 가는 두 배가 서로 만나게 할 수 있었다.
난파가 예장군에 태수로 부임하면서 여산 사당에 가니 그 ‘신’이 곧 사라졌다.
난파가 말했다.
“사당의 귀신(鬼)이 천관(天官)인양 속이고 백성들에게 재앙을 입힌 지 오래되었으니 마땅히 죄를 다스려야 한다. 이 일을 공조에 회부해 내가 직접 가서 잡을 것이다. 만약 제때 징벌하지 않으면 이 귀신이 이후 천하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제사 밥을 얻어먹고 양민을 시름케 할 것이다.”
이에 산천(山川)의 사직(社稷)에게 귀신의 행방에 대해 묻자 이 귀신이 제군(齊郡)에 가서 서생으로 변신해 오경(五經)을 잘 말해 태수가 딸을 아내로 삼았음을 알았다. 난파는 곧 제군태수에게 표문을 올려 귀신을 잡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귀신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난파가 제군태수에게 말했다.
“당신 사위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늙은 귀신이 사당의 신으로 가장하다가 지금 이곳으로 도망쳐 왔기에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태수가 아무리 불러도 귀신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난파가 말했다.
“나오게 하는 건 싶습니다.”
그리고는 태수에게 붓과 벼루 책상을 준비하게 하고는 부적을 만들었다. 부적을 다 만든 후 길게 휘파람을 불자 공중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 가져갔다. 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부적이 귀신이 숨어 있는 내원(內院)에 이르자 서생이 부인에게 울면서 말했다.
“가면 반드시 죽을 것이오.”
잠시 후 서생이 부적을 가지고 태수부 마당에 왔다. 그러나 난파가 있는 것을 보고는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난파가 꾸짖으며 말했다.
“늙은 귀신아! 어찌하여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이 말이 끝나자마자 서생은 살쾡이로 변했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난파는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허공에서 칼이 내려와 살쾡이의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또 태수의 딸이 딸을 하나 낳았는데 이 아이도 살쾡이로 변하자 역시 죽여 버렸다.
난파는 예장군수로 복직했다.
예장에는 귀신이 많았는데 특히 독각귀(獨脚鬼 다리가 하나 달린 귀신)가 많아서 도처에서 백성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난파가 온 후로는 더 이상 이런 우환이 없어졌고 요사한 것들이 일시에 소멸되었다.
나중에 난파는 조정에서 상서랑(尚書郎)으로 불려갔다. 정월 초하루 큰 모임에서 난파가 좀 늦게 도착했는데 얼굴에 술기운이 좀 있었다. 황제가 어주(御酒)를 하사하자 난파는 마시지 않고 술을 서남쪽으로 내뿜었다.
이에 담당 관원이 “난파가 불경하다”고 아뢰었다. 황제가 그를 불러다 물어보니 난파가 대답했다.
“신의 고향에서는 신이 귀신을 잘 다스렸기 때문에 제가 살아 있음에도 사당을 세웠습니다. 오늘 아침 원로들이 제 사당에 와서 공양하기에 신이 빠져 나올 수 없어서 술을 좀 마셨습니다. 그래서 얼굴에 취기가 좀 있었던 것입니다. 또 방금 성도(成都)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입안에 있던 술을 뿜어 비로 변하게 해서 구했습니다. 어찌 감히 불경할 리가 있겠습니까! 조사해보시고 만약 거짓이 있으면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이에 황제가 파발마를 띠워 성도에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성도에서 올라온 상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월 초하루 밥을 먹고 나서 불이 났는데 순식간에 큰 비가 세 번이나 내리더니 동북쪽부터 불이 꺼졌습니다. 비를 맞은 사람들은 모두 비에서 술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이 일은 황제와 신하들의 모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조작할 수 없고 더욱이 임금을 속일 수는 없으니 진실한 것이라 책에 기록되었고 널리 전해졌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큰 비바람이 불더니 천지가 어두워져 마주 앉은 사람조차 볼 수 없었다. 난파가 간 곳이 없어졌다. 난파는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 원만해서 신선이 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1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