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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경림》 통독: 석도귀신(釋道鬼神) (7)

자궁(紫穹)

【정견망】

【원문】

유가에서는 세(世)라 하고 불가에서는 겁(劫)이라 하며
도가에서는 진(塵)이라 하니 세속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이른다.

유가에서는 정일(精一)이라 하고 불가에서는 삼매(三昧)라 하며
도가에서는 정일(貞一)이라 하는데 모두 깊은 뜻이 무궁하다.

달마는 죽은 후 신발 한 짝을 들고 서쪽으로 돌아갔고
왕교(王喬)는 조정에 올 때 나막신을 한 쌍의 오리로 변화시켜 날아 내려왔다.

儒家謂之世,釋家謂之劫,
道家謂之塵,言俗緣之未脫。

儒雲精一,釋雲三昧,
道雲貞一,知奧義之無窮。

達摩死後,手攜只履西歸;
王喬朝君,舄化雙鳧下降。

【주석】

(1) 세(世), 겁(劫), 진(塵): 《능엄경(楞嚴經)》에 따르면 30년을 일세(一世)라 하고 5백년을 일겁(一劫)이라 하며 천년을 일진(一塵)이라 한다. 사실 꼭 이런 것은 아니고 수도자의 경계(境界)에 따라 볼 수 있는 우주의 진상(真相)이 서로 다르다.

(2) 세속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인간세상의 인사(人事) 관계를 벗어나지 못해 도를 얻고 신선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3) 정일(精一) :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 《서경》〈대우모〉에 나오는 “유정유일(惟精惟一)”에서 유래한다.

(4) 삼매(三昧):산스크리트 어를 음역한 단어로 불교에서 일체 잡념을 배제해 심신이 평온하고 조용해진 것을 말한다.

(5) 정일(貞一):전일(專一)또는 수일(守一)의 뜻으로 도가에서 말하는 본성을 지켜 저절로 무위한 것(保持本性,自然無爲)이다.

(6) 달마 죽은 후: 보리달마가 소림사에서 원적한 후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 매장했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북위(北魏)의 사자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다녀오다가 총령에서 달마가 한 손에 짚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를 달마가 서천으로 돌아갔다고 한 것이다.

(7) 왕교(王喬): 한조(漢朝) 사람으로 일찍이 현령을 지낸 바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자신의 신발을 오리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8) 석(舄):신발을 말한다. 고대에 제왕이나 대신들이 신던 나무로 만든 존귀한 신발.

(9) 부(鳧): 물오리의 일종.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모습이 오리를 닮았다. 흔히 몇 백 마리씩 무리를 지어 사는데 하늘을 날 수 있다.

【평가】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는 세상은 대개 일생일세(一生一世)다. 이는 유가의 개념으로 불경에서 어떻게 정의하든 상관없이, 유가는 인간세간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속인이 어떻게 정확하게 이 한 생(生)을 살아가는가를 중시한다.

때문에 공자가 후세에 전한 것은 어떻게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도리였다. 그는 사람의 육안(肉眼)범태(凡胎)로는 신불(神佛)과 요괴(妖怪)를 구별할 방법이 없기에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마귀에게 통제당하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기왕에 신(神)을 수련하라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이나 귀신에 대한 일을 깊이 말하지 않았다.

사람더러 덕을 지킬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오직 일생에 덕을 중히 여기기만 하면 저절로 신불(神佛)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 마귀가 접근하지 못하며, 사람이 추구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단지 사람더러 인의(仁義)를 중시하라고 했고 인륜도덕을 규범 지었다.

어떻게 임금이 되고 어떻게 신하가 되며 어떻게 부모가 되고 어떻게 자녀가 되며 어떻게 친구나 사우(師友)가 되는가? 매 계층에서 어떻게 인의를 실천할 것인가? 그가 말한 것은 바로 이런 구체적인 규범들이다. 시종 이런 도리를 지키고 실천할 수 있다면 곧 사람 중의 층차 역시 인간세상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덕행(德行)을 지킬 수 있다.

때문에 공자는 “인(仁)이란 사람이다”라고 해석했다. 인(仁)이란 사람 층차의 선성(善性)에 속한다. 그러므로 흔히 인애(仁愛)가 함께 표현되는데, 사람의 정감을 벗어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아주 부드럽고 온화하다. 반면 의(義)는 강하고 바른 일면에 치중한다. 정(情)의 측면[인의(仁義)는 공자가 사람 속에서 도가(道家)의 도리를 총결한 것으로 인(仁)은 부드럽고 의(義)는 강해서 음양의 도를 합한 것이다.]을 말하지 않는다.

때문에 인륜이 가정에 반영되면 아버지는 의롭고(義) 어머니는 자애로운(慈)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요구 내지는 표준이 나온다. 당신이 그 근본적인 의도를 알든 모르든 오직 서로 다른 신분계층의 사람이 엄격하게 이런 규범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그럼 덕을 잃지 않으며, 사람 속의 복 역시 자연히 주어질 것이다. 때문에 공자는 늘 이런 구체적인 인륜도덕을 총괄해서 말했으며 이를 통해 사람이 수익을 얻게 했다. 하지만 윤회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는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불가(佛家)와 도가(道家) 특히 고대의 불도(佛道) 종교는 주로 수련계의 각도에 서서 말했다. 말한 것은 수행(修行)의 도리로 사람이 되는 도리가 아니었다. 최종 목적도 각자 부동한 불(佛) 또는 도(道)의 수련방법을 따라 신(神)으로 성취되기에 도달해야 하는데, 당연히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신불(神佛)의 층차로 승화해 신이 머무는 천계(天界)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것만이 진정으로 세속을 벗어난 것이다.

신계(神界)에서 사람을 보면 자연히 인간세상 윤회의 고통을 본다. 생생세세(生生世世) 사람이 되거나 동물 또는 식물 등으로 전생(轉生)한다. 설령 사람으로 전생하더라도 또 인간 세상에 미혹되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다 무수한 죄업을 지으면 다음 세(世)에 거지가 되거나 또는 평생 가난하고 병들어 재난이 끊이지 않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생을 겪을 수 있다. 그야말로 겁난(劫難)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신불(神佛)이 사람을 보면 사람이 인간세간에 미혹된 것이 어찌 일생(一生)에 그치겠는가? 생생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불가에서 속세를 겁(劫)이라 한 것은 실로 적절한 표현이다. 물론 이외에도 또 서로 다른 경계(境界)의 보다 깊은 이해가 있다.

한편 도가(道家)에서 천년을 진세(塵世)라 한 것은 이해하기가 더욱 쉽다. 천상(天上)에 상대해서 말하자면 인간세상은 자연히 먼지(塵土)와 같다. 저속할 뿐만 아니라 또 험악함이 가득한데 사람마음이 명예와 이익을 다투다 추락해 천년간 윤회하면서 끊임없이 죄를 지어 해탈할 수 없다. 마치 붉은 누각의 꿈과 마찬가지로 부귀해 보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마치 연기나 구름처럼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그가 지은 죄업(罪業)만은 다음 세(世)에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취한 듯이 살고 꿈꾸는 듯이 죽는다. 그 어찌 위험하지 않은가. 도도한 붉은 먼지(紅塵)가 사람을 깊이 묻고 집어삼키니 사람이 세간에 미혹되는 위험을 형용한 것이다.

불도(佛道) 양가는 모두 사람에게 윤회의 고통이 있는 것을 보며, 보다 길고 보다 높은 시각에 서서 인간세상의 고난을 형용하고 사람들더러 하루 빨리 도를 닦고 신체(神體 신의 몸)를 닦아내 삼계를 벗어나고 천상으로 돌아가야만 비로소 윤회의 위험과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일깨워준다. 물론 이 역시 비교적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수련의 진기(真機)를 얻지 못하면 설사 출가해서 일체 인륜과 인사(人事) 및 가정과 세속의 생활을 끊는다 해도 역시 신체(神體)를 수련해내지 못하며 사람 층차를 벗어날 수 없다. 닦아내지 못하면 사후에 여전히 세간에서 윤회해야 하는데 무슨 출진(出塵)과 탈속(脫俗)을 말하겠는가? 근본적으로 해낼 수 없다.

하지만 오늘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천 년에 얻기 어렵고 만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수련의 진기를 이미 사람에게 갈파해주었다. 위험한 것은 사람들이 무신론을 선양하는 공산마귀가 전 세계에 퍼뜨린 거짓말에 기만당하고 미혹되어 자신들이 천년 윤회 속에서 고생스레 찾고 기다려왔던 대법수련을 보고도 눈앞에서 잃고 진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 하늘로 돌아갈 도(道)를 얻을 기연(機緣)을 잃는 것이다.

때문에 대법제자(大法弟子 파룬궁 수련자)들이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붉은 마귀로부터 벗어나 파룬따파를 존중하라고 권하는 이유는 오직 사람을 구해 겁난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왕교가 황궁에서 신적을 펼친 이야기

팔선(八仙)이 바다를 건너며 각기 신통(神通)을 펼치는 것은 고인들이 모두 직접 목격한 것으로 지금까지 널리 유전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이를 전설이라 여기지만 수도자 왕교(王喬)는 일찍이 신발을 새로 변화시켜 황궁에 타고 날아가 황제 및 사관들이 직접 목격하게 했다.

《수신기(搜神記)》나 《후한서(後漢書)》 등의 기록에 따르면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하동군 사람인 상서랑(尚書郎) 왕교(王喬)는 섭현(葉縣) 현령을 지낸 적이 있다. 왕교는 선도(仙道)를 지니고 있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섭현에서 황궁으로 가서 황제를 알현했다.

명제는 그가 도성을 자주 왕래하지만 올 때마다 타고 온 수레와 말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은밀히 태사(太史)를 시켜 감시하게 했다. 태사는 왕교가 올 때면 반드시 한 쌍의 오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온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오리가 오기를 기다려 그물을 펼쳤더니 신발 한 짝만 들어 있었다. 이 신발은 일찍이 명제 4년 상서대(尚書台) 신하들에게 상으로 하사했던 것이다.

아울러 그가 매번 천자를 알현하러 올 때 섭현 현문(縣門 현성의 문) 아래에서 북을 치지 않아도 저절로 북이 울려 그 소리가 도성에까지 들렸다.

나중에 하늘에서 옥(玉)으로 만든 관 하나가 뜰 앞에 떨어졌다. 관리들이 밀어 옮기려 했으나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왕교가 말했다.

“천제(天帝)께서 나를 부르시는 구나?”

이에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갖춰 입은 후 옥관(玉棺) 안에 들어가서 눕자 저절로 관 뚜껑이 닫혔다. 친지들이 그를 성 동쪽에 묻자 흙이 저절로 움직여 무덤을 만들었다. 백성들이 이에 그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니 섭군사(葉君祠)라 했다.

이후 이 지역을 관할하는 주목(州牧)과 태수(太守) 등이 부임할 때면 늘 먼저 왕교의 사당을 찾아가 예를 올렸다. 관리와 백성들도 그에게 기도하면 영험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이 일은 당시 황제와 각급 관리들이 직접 목격한 것으로 정사에도 기록이 있다. 왕교는 사람들더러 신(神)을 믿게 하는 사명을 완성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