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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해독 10: 사랑의 진리

글/ 왕호천(王昊天)

【정견망】

단테는 천국에 들어가 여행하면서 직접 삼위일체를 목격한 후 이런 시를 썼다.

“여기서 고귀한 환상에 내 힘은 소진했지만
한결같이 회전하는 바퀴처럼 나의
소망과 의지는 다시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이었다.”

이것이 장편 서사시 《신곡(神曲)》의 결론이다.

이 장편 서사시에서는 여러 차례 사랑에 대해 언급한다. 가장 먼저 단테가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성녀 베아트리체가 그를 미로에서 구원해 나중에 천국에 데려왔고, 단테의 사람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었으며 또 속인 중에서 양성한 각종 관념과 어리석은 견해를 씻어주었다. 이렇게 하고 나서야 단테는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신곡》에서 말하려는 사상을 이해하자면 사랑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것인 《신곡》 해독의 줄거리 중 하나다.

과거에 사람들은 《신곡》을 평가하면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원인은 사람들이 단테가 소년시기 좋아했던 베아트리체에 익숙해서 시문 중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성녀(聖女)를 단테가 애모하는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애정의 기점에서 《신곡》을 이해하면 자연히 철저히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곡》에서 묘사한 천국은 세속에서 멀리 벗어난 곳으로 사람의 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빛, 사랑 거대한 성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테가 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사랑’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왜 이 사랑은 단순히 사람을 폭력・탐욕・음욕의 위협에서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어리석은 사상을 씻어내고 신앙에 대한 인식의 편견을 씻어내며 또한 사람더러 무엇이 진정한 신에 대한 믿음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이 사랑은 또한 사람의 죄업을 없앨 수 있고 생명이 승화해서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게 한다. 이외에도 천국 세계의 질서, 운행하는 에너지의 근원, 모든 별들 사이의 조화로운 운행은 모두 창세주(創世主)의 사랑에서 유래한다.

비록 동방과 서방 문화에서 신앙에 대한 표현 및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사상에 담긴 내포는 표현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테 시에 나오는 사랑은 바로 동방인들이 말하는 자비(慈悲)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비 자체가 체현하는 것이 바로 일종 거대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자비는 단순히 천체운행을 추동시킬 뿐만 아니라 미혹속의 세인을 일깨워줄 수 있고 사람이 신심(信心)을 지니고 빛과 영생을 동경하게 할 수 있다.

단순히 이 한 점만 보더라도, 만약 단테가 반복적으로 말한 사랑을 사람의 애정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타당하지 않다. 사람의 애정은 태양을 돌릴 힘이 없으며 세계 질서를 배치할 수도 없다. 아울러 단테가 여러 차례 언급한 사랑은 기세(氣勢)가 아주 대단해서 사람더러 한마음 한뜻으로 천국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게 만들고 생명 깊은 곳에서 이 사랑의 위대함과 인자(仁慈)함에 감사하게 한다.

독자들이 시 전체를 읽은 후에도 아마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단테는 마지막에 사랑이 태양과 별들을 추동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인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들이 이해하는 사랑이란 심령(心靈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 만약 천체(天體)를 말하자면 사람들은 곧 어안이 벙벙해서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 설령 사랑이 태양과 별들을 추동할 수 있다 한들 사람과 또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고 여길 것이다.

간단한 결론이지만 오히려 아주 중요하고 대단히 중요하다. 단테가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던 것은 천체 속에는 시시각각 늘 한 가닥 자비의 에너지가 운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천국세계의 뭇 신과 뭇별들마저 모두 이 힘에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물며 세상의 사람은 어떻겠는가? 단테는 작품 마지막에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정확하게 사색하고 생명을 선하게 대하도록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시인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 너무나 많다. 즉, 한 사람이 일생에 좋은 운을 얻고자 한다면 그럼 노력해서 이 자비의 에너지를 운행하고 그것에 동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랑이 체현된 이 방향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생활방식일 수 있고 또한 도태를 피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장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단테가 최종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사랑’의 진리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7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