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호천(王昊天)
【정견망】
단테는 천국에 들어가 신앙을 위해 순교한 성도(聖徒)들과 대화를 나눌 때 여러 차례 ‘신부’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가령 《천국편》 제27곡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피와 리누스, 클레투스의 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양육된 것은
황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주: 리누스와 클레투스는 베드로의 뒤를 이은 사도로 기독교 탄압 당시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다]
제32곡에서는 또 이렇게 노래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창과 못으로 얻은
아름다운 신부의 모든 험난한 시절을
죽기 전에 보았던 자가 앉아 있고”
그렇다면 여기서 단테가 말하는 신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곡》 전편은 신(神)에 대한 찬미와 송가(頌歌)임을 감안하면 신부란 바로 신에 대한 정결(貞潔)한 서약이자 신앙 수호에 대한 견정한 의지를 뜻한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신부는 흔히 ‘신인(新人 역주: 우리나라에서도 신부를 새색시 새댁이라 부르는 것처럼 중국어에서 신인은 막 결혼한 신랑 신부를 가리킨다)’으로 불린다.
즉, 신앙을 굳게 지키기 위해 도(道)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성도(聖徒)들은 비록 인간세상에서 표면적인 육신을 잃었지만 천국세계 속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신부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신앙에 대하 시인의 엄숙한 태도를 더 적절하게 표현하는데 절대 함부로 하면 안 되고 충성하고 순결해야 한다.
이 작품에서 단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神)에 대한 진정한 신앙이 마땅히 지녀야 할 근본태도다. 다시 말해 바른 신앙(正信)을 믿는 신도가 신앙을 수호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쉽지 않은 일인지 분명히 해준다.
가령, 금전이익의 유혹에 직면해 평생 청성(淸醒)해야 하며, 순수한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때로는 피의 대가를 치를 수 있어야 하며, 때로는 또 예수처럼 창이나 못 등 날카로운 무기에 고통 받거나 상처받을 수도 있다. 단순히 정신적으로 거대한 압력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상처 역시 아주 극렬할 수 있다. 때문에 오직 확고한 성도(聖徒)만이 정결과 지조를 행동으로 지켜낼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이런 거대한 고통과 마난(魔難)을 뛰어넘을 수 있다.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어떻게 발전했든, 동방과 서방의 문화차이가 제아무리 컸든, 제아무리 정교한 사유로 변론하며 종교형식의 외형을 수호했을지라도 진정한 신앙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바른 신앙이 요구하는 것은 엄숙하고 순정(純淨)한 태도로, 사회나 문화영역의 변이된 발전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다시 말해 천국세계에서 성도(聖徒)를 육성하는 표준에 대한 요구를 떨어뜨릴 수는 없다. 인류의 미끄러져 내려온 도덕은 바른 신앙의 가치, 바른 신앙의 내포와 지조를 근본적으로 변이시키거나 건드리지 못했다.
《신곡》이란 한 부(部)의 시(詩)가 온갖 시련을 거치며 역대로 전해져 내려왔는데, 시인이 고심하고 두뇌를 짜내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세속의 각종 혼란한 신앙들 속에서 어떻게 바른 신앙을 가짜와 구별하고 진정한 성도(聖徒)를 찾을 수 있는 가였다. 그러자면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고문과 마난(魔難)에 직면해 시종 견인불굴하게 신앙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었는가, 금전이익에 직면해 신앙의 가치와 내재를 늘 고치지 않을 수 있는가 여부를 보아야 한다. 이런 것들에 근거하면 세간에서 진정한 성도를 정확히 판별해낼 수 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주위를 한번 돌아본다면 현재 누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령(邪靈 사악한 공산사령)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온갖 잔인한 고문 시달림에도 신앙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가? 내 생각에 당신은 분명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주: 흔히 한글 번역본에서는 ‘신부’를 교회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단편적인 해석일 뿐이다.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교회라는 단체나 사회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神)은 오직 사람의 마음만을 볼 뿐 종교라는 형식을 중시하지 않는다. 진정한 신앙을 지켜낼 수 있는 신앙인으로 천국세계의 표준에 도달해 천국세계에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수련인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 널리 알려져 있고 또 20여 년 간 사악한 중공사당의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음에도 견정하게 버텨낸 신앙은 파룬궁(法輪功)으로 불리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있다.]
(시리즈 종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710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