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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소년심(少年心)

섬섬(纖纖)

【정견망】

사람은 누구나 늙게 마련이며 이는 자연의 법칙이다. 오직 신선만 예외일 뿐. 소동파의 이 《완계사(浣溪沙)•유기수청천사(遊蘄水清泉寺)–기수 청천사에서 노닐다》는 사람들에게 자포자기하지 말라고 권한다. 전체 사(詞 일종의 노랫말)는 다음과 같다.

기수현 청천사에서 노닐다 절 앞의 난계(蘭溪)가 서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산 아래 난초 싹은 짧아서 시내에 잠기고
솔밭 사이 모랫길은 진흙 하나 없이 깨끗한데
소슬한 저녁비에 소쩍새는 울어댄다.

누가 말했나, 인생에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대문 앞 냇물은 오히려 서쪽으로 흐를 수 있거늘
백발이 되어 노란 닭이 새벽을 재촉한다 노래하지 마라.

遊蘄水清泉寺,寺臨蘭溪,溪水西流。

山下蘭芽短浸溪,
松間沙路淨無泥,
蕭蕭暮雨子規啼。

誰道人生無再少?
門前流水尚能西!
休將白發唱黃雞。

1. “기수현 청천사에서 노닐다 절 앞의 난계(蘭溪)가 서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이 구절은 사(詞)를 짓게 된 배경에 대한 소개로 시인은 기수에 있는 청천사에 놀러갔다. 이 사찰 앞에 난계(蘭溪)가 있는데 이 계곡물이 서쪽으로 흐른다. 중국에서 대부분의 강은 동쪽으로 흐르는 것과는 정반대다.

2. “산 아래 난초 싹은 짧아서 시내에 잠기고
솔밭 사이 모랫길은 진흙 하나 없이 깨끗한데
소슬한 저녁비에 소쩍새는 울어댄다.”

이 세 구절은 환경을 묘사한 것으로 의미가 심장하고 진실하면서도 또 특별하다. “난초 싹은 짧아 시내에 잠기고”는 풀의 절반가량이 물속에 잠겼다는 뜻이다. 필자도 최근에 동전초(銅錢草)를 길러 보니 매번 나오는 싹은 모두 뿌리 옆에서 서서히 물이 있는 쪽으로 자라났다. 다시 말해 뿌리가 물과 멀리 떨어지면 식물이 생장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파란 싹이 물에 잠긴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작은 시냇물이라도 수위(水位)가 변화하기 때문인데 비가 오면 수위가 높아지지만 한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마른. 그런데 파란 싹은 물이 메마를 때면 매우 높게 자라지만 수위가 높아지면 일부가 물에 잠긴다.

“솔밭 사이 모랫길은 진흙 하나 없이 씻은 듯 깨끗한데” 역시 아주 의미심장하다. 작은 길은 완전히 모래로 진흙 하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에 나오는 “저녁비”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이곳은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빗물에 흙이 유실되어 모래만 남은 것이다.

“저녁비에 소쩍새는 울어댄다.”는 것은 모두 슬픔을 나타낸다.

이곳 앞부분은 “난초 싹이 짧아 시내에 잠기든” “모랫길에 진흙 하나 없든” 모두 세척되어 정화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시인의 심령이 정화되었음을 가리킨다. 즉 수도(修道)의 의미가 있다.

3 “누가 말했나, 인생에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대문 앞 냇물은 오히려 서쪽으로 흐를 수 있거늘
백발이 되어 노란 닭이 새벽을 재촉한다 노래하지 마라.”

중년이 되면 사람들은 흔히 끊없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끼곤 하는데 자신이 한평생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더는 희망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시의 견해는 달라서 기왕에 물이 서쪽으로 흐를 수 있다면 사람이라고 왜 다시 젊어질 수 없는가? 라고 말한다.

소동파는 부처님을 믿었는데 우리 모두 알다시피 신불(神佛)은 늘 아주 젊어 보인다. 시인이 이 사(詞)에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우리로선 헤아릴 방법이 없다. 하지만 수련의 각도에서 본다면 늘 젊어진느 것도 가능하다. 오늘날 파룬따파(法輪大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동년배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은 오직 내려놓고 수련에 들어가야만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젊게 보이는 것이 그렇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