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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조(唐朝) 시인 이백 및 시가(詩歌) 감상 (8)

명월(明月)

【정견망】

다음으로 《장진주(將進酒)》를 감상해보자.

그대 모르는가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쏟아져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음을.
그대 모르는가
고대광실 환한 거울 앞에서 흰 머리 슬퍼함을.
아침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 눈처럼 세었구나!
모름지기 인생은 마음껏 즐길지니
황금 술통 빈 채로 달을 대하진 말라.
하늘이 내게 재주를 내렸으니 필경 쓰임이 있으리니
천금을 탕진해도 언젠가는 돌아올 터.
양 삶고 소 잡아서 즐겨보세
한번 마셨다면 모름지기 삼백잔이라.
잠부자(잠징군)
단구생(원단구)
한 잔 드시오
잔일랑 멈추지 말고
그대 위해 한곡 읊어보리니
그대 내게 귀 기울여 들오보게.
온갖 악기 살진 안주 대단할 게 없다네.
오로지 원하는 건 오래 취해 안 깨는 것.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흔적 없어도
오직 술고래들은 이름을 남겼다네.
예전에 진왕(조식)이 평락전에서 잔치할 때
한 말에 만 냥 술을 흠뻑 즐겼다네.
주인은 어이하여 돈이 적다 말하는가?
당장 술 받아다 그대 함께 마셔야지.
오화마
천금 갖옷
아이 불러 내어다 좋은 술과 바꿔
그대 함께 만고의 시름 녹여 보세.

君不見(군불견)
黃河之水天上來(황하지수천상래)
奔流到海不複回(분류도해불부회)
君不見(군불견)
高堂明鏡悲白發(고당명경비자발)
朝如青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複來(천금산진환부래)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차위락)
會須一飲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
岑夫子(잠부자)
丹丘生(단구생)
將進酒(장진주)
杯莫停(배막정)
與君歌一曲(여군가일곡)
請君爲我傾耳聽(청군위아경이청)
鍾鼓饌玉不足貴(종고찬옥부족귀)
但願長醉不用醒(단원장취불용성)
古來聖賢皆寂寞(고래성현개적막)
唯有飲者留其名(유유음자유기명)
陳王昔時宴平樂(진왕석시연평락)
斗酒十千恣歡謔(두주십천자환학)
主人何爲言少錢(주인하위언소전)
徑須沽取對君酌(경수고취대군작)
五花馬(오화마)
千金裘(천금구)
呼兒將出換美酒(호아장출환미주)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이백(李白)이 술을 노래한 작품들에서는 그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이런 종류의 시들은 장안을 떠난 후 지은 것들로 사상이 더욱 심오하고 예술표현 역시 더 성숙해졌다. 이 작품이 바로 그 대표작이다.

이 시가 창작된 시기는 대체로 현종 천보(天寶) 11년(752년)으로 이백이 51세 때다. 즉 현종이 하사한 황금을 받고 장안을 떠난 지 이미 8년이 지났다. 당시 그는 잠훈(岑勳)과 함께 여러 차례 초대를 받아 숭산(崇山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에 놀러가 원단구(元丹丘)의 집에 머물렀다.

《장진주(將進酒)》는 원래 한대(漢代) 악부(樂府) 고취곡(鼓吹曲)에 속하는데 제목을 풀이하면 한마디로 “술을 권하는 권주가”다. 원래 옛 노랫말에는 “장차 술을 권하려 하면서 술잔을 든다(將進酒,乘大白)”고 했다. 이백은 당시 잠훈과 숭산(嵩山)에 있었고 원단구는 영양산(穎陽山)에 객(客)으로 있었는데 세 사람이 늘 높은 곳에 올라 술자리를 갖곤 했다.

가령 《잠훈이 나를 찾아오다가 원단구를 만나 술을 앞에 두고 나를 기다리며 시를 써서 나를 초대한 것에 답하다(酬岑勳見尋就元丹丘對酒相待以詩見招)》란 시에서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수레를 타고 나를 부르러 오다가// 도도중에 원단구를 만나서 산에 올라 푸른 하늘가에서 연회를 열었는데// 술을 앞에 두고 홀연히 내가 생각나 맑은 바람 맞으며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고 하네(不以千裏遙,命駕來相招. 中逢元丹丘,登嶺宴碧霄. 對酒忽思我,長嘯臨清飆.)”라는 대목이 있다.

술을 앞에 두고 벗들이 모임은 인생에서 즐거운 일이라 이에 술을 빌려 흥을 일으켜 통쾌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이 시의 시작은 장구(長句)로 이뤄진 두 세트의 대구법으로 이뤄져 있는데 마치 하늘에서 바람이 불고 바다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독자들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온다.

“그대 모르는가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쏟아져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음을.” 영양(潁陽)은 황하(黃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높은 곳에 오르면 멀리 황하를 조망할 수 있다. 시인은 이를 빌려 시흥(詩興)을 일으켰다. 아득히 먼 곳에서 흘러와 저 멀리 흘러가는 황하는 낙차가 아주 커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단번에 천리를 지나 동쪽 큰 바다로 흐른다. 이런 거대한 장관은 절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시선(詩仙)으로서 이백의 기개를 이곳에서 엿볼 수 있다.

첫 구절에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도도한 황하의 흐름을 노래했다면 뒷 구절에서는 황하의 거센 흐름이라도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묘사했다. 하나는 오고 하나는 가며,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보는 것 같다.

이어서 두 번째 대구 세트에서 “그대 모르는가 고대광실 환한 거울 앞에서 흰 머리 슬퍼함을. 아침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 눈처럼 세었구나!”라며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게 감정을 펼쳐낸다. 첫 번째 조합의 파도가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또 하나의 파도가 밀려온다. 시인은 인생이 너무 짧다고 직접적으로 한탄하는 대신 “고대광실 환한 거울 앞에서 흰 머리 슬퍼한다”고 표현했다.

즉 청춘에서 노쇠에 이르는 인생의 전체 과정을 아침과 저녁 일로 표현해 본래 짧은 인생을 더욱 짧게 말했다. 이는 첫 번째 조합에서 본래 장관을 더욱 과장되게 장관으로 묘사한 것과 함께 길고 짧음, 오고 감, 거대함과 작음을 선명하게 대비시켜 시공의 느낌 및 생생한 이미지와 운동감이 모두 강렬하게 만들어 풍부한 감동을 준다.

이 시가(詩歌)의 마지막 구절 “그대 함께 만고의 시름 녹여 보세”에서 말하는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만고(萬古)의 긴 시름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만고의 시름이라 불리려면 오직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만이 이런 호칭을 감당할 수 있다. 만고 이래 사람에게는 늘 3가지 궁극적인 문제가 존재해왔다.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왜 존재하는가? 장차 어디로 가는가?

이에 대해 그 어떤 철학이나 이론, 학설도 모두 진정한 답을 주지 못했으며 아울러 세상의 그 어떤 해답도 모두 사람들에게 허무맹랑한 일가(一家)의 설로 여겨졌지만 이 3대 궁극문제는 도리어 매 사람마다 반드시 마주해야 할 문제다. 비록 제때 답을 낼 수 없을지라도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백년이 지나가면 기연(機緣)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기(真機)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진상(真相)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만고에도 답을 얻지 못했으니 오늘은 그저 술에 취해 시름을 달래고 마음껏 즐기면서 잠시 망각할 뿐이다. 만약 술에 취한 후 “잠 들어 황량몽(黃梁夢)을 꿀 수 있다면” 깨어난 후에 또 궁극적인 결말을 똑똑히 보고 이 만고의 시름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지는 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또 시인의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세련된 시로 응축되었을 것이다. 그저 헛된 공상(空想)이 천고의 미담(美談)이 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백은 어떻게 단지 과장 등의 예술적 기법만으로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킬 수 있었는가? 이백의 시를 읽어보면 늘 시인의 호방(豪放)함을 느끼는데, 호방하게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황홀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 동시에 또 어떤 의미에서 인간 세상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 감회 및 굴원(屈原)이 말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취했고 나 홀로 깨어있는(世人皆醉我獨醒)”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나 이백이 지닌 것은 일종 술에 취해야만 깨어날 수 있고, 깨어나야만 노래할 수 있는 탈속한 의경(意境)이지만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도 사람들이 단지 경치, 인물, 기분, 정치 등 이해하기 쉬운 서술 대상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이백의 낭만적인 문학 표현이라고 간주할 따름이다.

믿으면 존재하지만, 믿지 않으면 그저 낭만으로 간주된다. 하늘 밖에 하늘이 있듯, 사람 밖에 신선(仙)이 있고 부처(佛)가 있으며 도(道)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때 그저 술김을 빌려 꿈처럼 기이한 생각을 말해 사람들더러 그저 이야기로 삼아 듣게 할 뿐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2/1/21/2505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