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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깨달음: 어느 곳으로 돌아가랴

대법제자

【정견망】

중양절(重陽節 역주: 음력 9월 9일을 말하는데 올해는 양력으로 10월 11일이다)이면 높은 곳에 올라가 고향을 생각한다. 이는 고향을 멀리 떠난 사람에게 일종의 의지이자 희망이다.

“멀리 있어도 알 수 있는 건 올해도 우리 형제들 높은 그 산 오르겠거니,
머리에 수유 열매 돌려 꽂다가 한 사람 모자람을 문득 깨달으리

遙知兄弟登高處
遍插茱萸少一人

[역주: 왕유의 시 《중양절에 산동의 형제를 생각하다(九月九日憶山東兄弟)》의 후반 2구절]

시인은 홀로 외지를 떠돌고 있는데 그 내심의 고독은 외부인이 느끼기는 어렵다.

불가(佛家)에는 ‘구구귀일(九九歸一)’이란 말이 있다. 즉 구구 81난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양절의 구구(九九 역주: 음력 9월 9일) 배후에는 귀일(歸一)의 함의가 있는 게 아닌가? 아마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에서 세인들에게 인류가 존재하는 진상을 알려주신 후 일체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다 법(法)을 위해 온 것이다. 생명은 대부분 천상에서 온 것으로 목적은 분명히 법을 얻기 위해 왔다. 하지만 인간 세상의 일목일초(一木一草), 하나의 염두, 한 단락의 문화는 모두 오늘날 정법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다.

구구(九九)를 중양(重陽 양이 중첩되었다는 의미)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 중(重)에는 다시 태어난다[重生]는 뜻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높은 신(神)이라도 인간 세상에 오면 신(神)의 눈으로는 곧 죽은 것이다. 되돌아가기란 몹시 어렵다. 그렇다면 대법이 중생을 구도해 되돌아갈 때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천산만수(千山萬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일종의 의탁일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집인 하늘의 천당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다. 대법은 중생에게 한 차례 기연(機緣)을 줬는데, 아직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가?

인간 세상이 아무리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모두 찰나일 뿐이다. 오직 수행만이 진리다. 인간 세상의 명리정구(名利情仇 명예 이익 사랑 증오)를 버리고 대법에 들어가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