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도(走正道)
【정견망】
필자는 “마음에 물어 부끄럽지 않다[問心無愧]”는 성어(成語)를 30년 넘도록 들어보지 못했다. 청대(淸代)의 대학자 기효람의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에서 이 성어를 본 적이 있는데, 몇 가지 자료를 참고한 결과 이 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는 이야기 형식으로 이 성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하(交河) 사람과 그 방언에서 한 말이다.
”귀신 이야기는 대부분 터무니없지만 도리에서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것이 있다. 옹정(雍正) 을묘(乙卯) 7월, 우리 배가 정해(靜海) 남쪽에 정박해 있었다. 달이 흐릿하고 해안을 걷다가 두 사람이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따뜻하게 나를 앉게 했다. 한참을 주의 깊게 들어보니 그들이 하는 말이 모두 음조지부(陰曹地府 저승 관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귀신이라고 생각한 나는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다.
두 남자가 나를 막아서며 말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한 사람은 주무상(走無常 지옥의 옥졸)이고 다른 이는 귀신을 보는 사람[視鬼者]입니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귀신을 볼 수 있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볼 수 있었지만 나도 이유는 모릅니다.”
내가 또 물었다.
“어떻게 주무상이 되셨었습니까?”
“꿈에 갑자기 잡혀 와서 이렇게 차사(差使)가 되었는데,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경(二更)까지 대화를 나눴는데 모두 인과응보에 관한 일이었다.
내가 물었다.
“음간(陰間 저승)에서는 유가의 이치로 판결합니까 아니면 불가의 이치로 판결합니까?”
귀신을 보는 사람이 말했다.
“나는 귀신을 볼 수는 있지만 귀신과 대화를 할 순 없어서 이 일은 모르겠습니다.”
주무상이 말했다.
“당신은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고 오직 자기 마음에 물어보면 됩니다. 마음에 물어봐서 부끄럽지 않으면 곧 음간 법률에서 말하는 선(善)이고 마음에 물어 부끄러움이 있다면 음간 법률에서 말하는 악(惡)입니다. 옳고 그름은 공통이라 음간(陰間)이나 양간(陽間)이나 같은 이치인데 구태여 유가와 불가를 구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말은 통속적이고 이해하기 쉬워 무당이 하는 말과는 달랐다.〗
문심무괴(問心無愧)라는 이 성어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 사이 비교적 많이 듣던 것이다. 이 성어에는 꽤 무게가 있었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우리에게 “사람이 일을 하면서 마음에 물어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이는 많은 문학 작품에도 반영되었다. 사람이 스스로 “사람으로서 마음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분명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고 스스로 양심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무원이라면 청렴하고 결백하며 부패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고 풍속을 해치는 더러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사업가라면 질이나 양을 속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당시만 해도 화학 첨가물이 많지 않았지만 유독(有毒) 식품을 팔지 않고 공정한 거래로 돈을 벌었으며, 사무원이라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고 뒷거래를 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이라면 남을 해치지 않고 천명(天命)을 해치지 않으며 분수를 지켜 자신이 할 일을 했는데 모두 마음에 물어 부끄럽지 않다는 이 성어에 떳떳할 수 있어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년간 이 성어를 듣지 못한 이유는 사람 마음이 변했고 사람이 돈과 권력을 위해 무슨 양심, 양지(良知), 천리(天理) 등을 모두 저버리고 신불(神佛)마저 모욕하기 때문이다. 가령 식당 이름도 “천중천(天中天)”이 있고 메뉴판에는 “불도장(佛跳牆)”, “나한재(羅漢齋)”마저 있다.
사람에게 정념(正念)이 없는데, 감히 마음에 물을 수 있겠는가? 마음에 물어 부끄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물어보면 부끄럽다! 신불(神佛)에게 부끄럽고 천지 양심에 부끄럽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 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고, 먹고 마시고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 것은 더욱 아니다. 삼계(三界)의 존재는 중생이 말겁 최후 시기에 파룬궁(法輪功)이 널리 전해질 때 진선인(真善忍)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사람 몸으로 정법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파룬궁을 수련해 영원히 사람 몸을 얻기 위함이다.
5천 년 중화 문화는 모두 오늘날 파룬궁이 널리 전해지기 위한 길을 다진 것이다. 5천 년 문명사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것들을 다져주었다. 가령 무엇이 선과 악이며, 무엇이 신불도(神佛道)인지, 무엇이 수련이고, 어떻게 수련하는지 등등.
“마음에 물어 부끄럼이 없다”는 이 성어의 출현 역시 사람들에게 천지 양심을 떠올리게 하고, 선과 악을 떠올리게 하며, 선악에 보응이 따름을 떠올리게 하고, 인과와 윤회 등을 떠올리게 해서 사람이 신불(神佛)의 가르침을 떠올려 스스로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향하라고 알려주기 위함이다.
사람이 정말로 신불이 사람에게 가르친 표준에 따라 실천하고 마음에 물어 부끄럽지 않음을 해낼 수 있다면, 내심이 행복하고 평온해서 일종 정기가 늠연(凜然)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심에 부끄러움이 있다면 스스로 남에게 부끄럽고 남을 볼 면목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당 문화에 중독되어 이런 느낌조차 없다. 중국 공산당은 전체 사회를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회로 변질시켰고 사람들이 모두 거짓, 사악, 투쟁에 따라 일하기 때문에 거짓과 사악한 당 문화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정말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단으로 몰려 공격과 박해를 받는다. 이 마귀의 사악한 주장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생존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륙의 중국인은 마음에 묻지 않으며 머릿속에 가득찬 것은 모두 어떻게 벼락부자가 되고, 어떻게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살아갈지, 즉 타락한 상류층 인사가 되는 것이다.
죄는 중공사당에게 있는데 그것은 중국인을 만장 깊은 심연(深淵)으로 끌고가 생명을 밑바닥 없는 구멍에서 훼멸시킨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고, 사람들이 한 걸음씩 전통으로 돌아가고, 전통 의 길로 돌아가도록 이끌어, 전통 가치관이 인간 세상에 다시 되살아나고 세인들의 마음에 되살아날 수 있게 한다. 사람이 모두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진선인(真善忍)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는다면 사회 전반의 상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반드시 완전히 참신한 사회 상태가 될 것이다. “마음에 물어 부끄러움이 없다”는 이 성어를 말할 때 반드시 자신감이 넘칠 것이고 사람으로서 일종 영광스런 느낌이 들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