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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기점이 가장 중요

붕정(鵬程)

【정견망】

우리가 일을 함에 있어 늘 한 가지 원칙과 목적이 있다. 많은 일은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적은 오히려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안연과 자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는데 공자가 각자의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자로가 말했다.

“저는 수레와 가벼운 가죽옷을 모두 꺼내다 친구들과 같이 쓰고 헤져서 못쓰게 되어도 전혀 섭섭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안연이 말했다.

“저는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공로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선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요?”

공자가 말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편안히 해드리고, 벗들에게는 믿음을 주며, 젊은이들은 보살펴 주고자 한다.”

여기서 겉으로만 보면 공자의 말은 다른 제자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목적은 같지 않다. 제자들은 자신의 어떤 목적을 위해 한 것으로 자신이 모종의 상태에 달성하고자 했다. 반면 공자의 출발점은 다른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다. 아마 어느 시간과 지점에서는 그들이 함께 할 수 있겠지만 궁극에는 같지 않을 것이다. 마치 두 가닥 선이 교차할 때 오직 한 점에서만 만나는 이치와 같다.

대법 사부님은 《시드니 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현재의 사람이 부처를 믿는 기점(基點)과 과거 옛날 사람이 부처를 믿는 기점은 같지 않다. 과거의 사람이 부처를 믿음은, 부처를 모시고 부처를 수련하며 부처를 공경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어떤 마음도 없었다. 지금의 사람이 부처를 믿는 것은 부처에게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구하는 그 마음은 부처로 말한다면 가장 더럽고 가장 더러운 마음이다.”

고인은 부처님을 공경하기 위한 것이지 사심(私心)이 없었지만 도리어 얻은 것은 더욱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은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일단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반대로 신불(神佛)을 원망하고 미워한다. 겉보기엔 모두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이지만 목적이 다른데 최후의 결과는 자연히 같지 않다.

대법 사부님은 《정진요지》〈뿌리를 캐다〉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나는 일찍이 소수 사람의 마음이 대법(大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의 무엇을 수호하기 위한 것임을 보았다. 만약 당신이 한 속인이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인류사회를 수호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수련하는 사람이다. 어떤 기점(基點)에 입각하여 대법(大法)을 대하는가 하는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로서, 바로 내가 당신에게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법제자들은 사실 또 자신을 바로잡는 것을 법 공부 목표로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수련의 길에서 빗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득히 먼 천국 세계에서 이곳에 왔는데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법을 얻어 자신의 천체를 구하고 자신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다. 세간의 그런 화려한 것들에 미혹되지 말고 자신이 올 때 품었던 서약과 큰 소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 깨달음을 써서 동수들과 나누고자 하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