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객
【정견망】
일찍이 상대(商代) 갑골문 시기부터 ‘칠(七)’은 숫자로 차용되었기 때문에 본래 뜻이 사라졌다. 최초의 ‘七’은 ‘十’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쓰였는데, 가로획 중간에 세로획이 하나 있어서 무언가 단절되었음을 나타낸다. 나중에 십(十)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전국 시대에 세로획을 구부려 지금의 ‘七’과 같이 표시해서 ‘十’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수술(數術 수를 이용한 술법)에서 ‘칠(七)’은 중지(中止)를 대표하고, 산을 대표하여, 간괘(艮卦)를 대표하는데, 방위로는 동북이고, 오행에선 토(土)에 속한다. 대체로 이 괘를 만나면 흔히 앞에 번거로움이 나타나거나 또는 성공하지 못함을 예시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一)부터 구(九)까지 9개의 숫자 중 ‘칠’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 전화번호나 차량 번호판에 ‘7’이 들어가면 좋아하지 않는데, 결혼을 할 때도 가급적 7일은 피한다. 여기에는 전통문화의 영향 외에도 ‘칠’의 발음이 화를 낸다(生氣)는 ‘기(氣)’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방 신화와 전설에서는 여와(女媧)가 7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는데, 《태평어람》에 따르면 여와는 정월 초하루에 닭, 초이틀에 개, 초사흘에 돼지, 초나흘에 양, 초닷새에 소, 초엿새에 말을 창조했고, 초이레에 황토와 물을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따라서 작은 진흙 인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황력(黃歷 전통 역법) 정월 초이레는 사람이 태어난 날로 간주되어 “인칠(人七)”이라 불린다.
하지만 서방에서 ‘칠’은 존재감이 강한 숫자다. 《성경》 첫 편에서 하나님이 첫째 날 빛을 창조해 밤과 낮이 생겼고, 둘째 날 공기와 하늘을 창조했고, 셋째 날 땅과 바다, 산천과 평야, 꽃과 풀과 나무를 창조했고, 넷째 날 온 하늘의 별을 창조해 1년을 계절과 해를 구별했고, 다섯째 날 물고기, 새와 다른 동물들을 창조했으며, 여섯째 날 하나님은 태양이 빛나고 땅은 광활하며 세상이 아름다운 보라색과 빨간색이며 짐승이 뛰고 곤충이 뛰고 물고기가 헤엄 치고 새가 지저귀는 것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서 “내 모습을 본떠 사람을 만들어 지상의 모든 것들과 짐승을 관리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하나님이 진흙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고 흙으로 만든 형상에 숨결을 불어넣자 사람이 태어났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완벽해진 것을 보고 일곱째 날에 휴식을 취했다.
지금은 불교 중의 경서만 여러 가지 이유로 역대로 전해지는 과정에 변질되었을 뿐 아니라 《성경》도 원본에서 크게 벗어나 변질되어 더 이상 사람들이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주일(周日 일요일)이 휴일이 된 것은 《성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목적은 단순히 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로 이날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해 신(神)과 가까워지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신을 향상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서방 신자들은 이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기에 이날을 예배일이라고 한다. 사람은 고생 속에서 자율적으로 지키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전업으로 수련하는 사람들, 사찰의 승려들은 주지가 관리하고, 수도원의 수도사나 수녀들은 주교가 감독한다. 하지만 일반 신자들은 예배일이란 형식으로 느슨하게 관리하며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학습할 기회를 제공한다.
불교에서는 칠(七)의 연원이 더욱 깊은데 불교에서 칠(七)은 원만(圓滿)을 대표하는 상서로운 숫자다. 불교에서 ‘칠’은 곳곳에 나타나는데, 칠정(七情)은, 기쁨, 분노, 슬픔, 행복, 사랑, 미움, 욕망이고 칠보(七寶)는 금, 은, 유리, 마노 등 7가지 보물을 말하며 칠불(七佛)은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파불(毗舍婆佛),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불(拘那含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이외에도 또 칠법(七法), 칠심계(七心界) 등등이 있는데 일반인들에겐 낯선 말이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고대 인도의 작은 왕국의 왕자였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가 막 태어났을 때 일곱 걸음을 디뎠다고 한다. 비록 고귀한 왕족이었지만 즐겁지 않았고 인생이란 짧고 고생스럽고 생사의 괴로움을 느껴 좋은 옷과 음식을 포기하고 홀로 숲에 들어가 6년간 고생스레 수련했다. 하지면 여전히 해탈하지 못했고, 나중에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고 양치기 여인의 우유죽을 받아먹고 보리수 아래에서 7일간 입정(入定)에 들어 깨달음을 얻고 도를 얻어 성불했다.
이 설명에서 보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는 자아를 깨달아 정과(正果)로 수련 성취했다. 사실 그는 사명을 지니고 세상에 내려온 각자(覺者)로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치했고 때가 되면 지혜가 열리고 크게 깨달아 자신이 누구인지 회억하고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 사바세계에서 과거 칠불(七佛) 중 마지막 분이다. 나중에 불교에서는 탑을 쌓을 때 7층으로 쌓아 칠급 부도라 했다. 그렇다면 ‘구(九)’는 어떠한가? 구는 도가(道家) 체계에서 가장 큰 수다. 물론 나중에 불교가 중국에 전해 들어온 후 역시 도가의 일부 개념을 흡수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칠’이든 ‘구’든 사실 불교의 만(卍)자와 마찬가지로 은하계를 상형(象形)한 형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러도 불도(佛道) 사이에는 여전히 구별이 있다. 인간 세상에서 그들은 모두 사람을 이곳에서 제도해 데려갈 수 있는데 둘 다 우주 중에서 자기 일가(一家)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