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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을 왜 한인(漢人)이라 부를까

과객(過客)

【정견망】

이학(理學 성리학)는 중국 고대의 정교하고 체계적인 이론 체계로, 그 영향이 비교적 넓고 깊다. 이학이란 유가(儒家) 학설을 중심으로 불도(佛道) 양가의 철학이론을 겸하며 강상명교(綱常名教)의 합리성과 영원성을 논증하며, 원조(元朝)에 이르러 관방의 공식적인 철학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가끔 성리학에 관한 어느 ‘명사(名師)’의 클립을 올리는 친구들이 있는데 오늘은 이 문제를 한번 말해 보고자 한다.

이학이란 무엇인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매사를 당연한 것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불도(佛道)에서 발전해 나온 것으로 이전에는 화상이나 도사들이 경전을 토론하고 도(道)를 논하길 좋아했고 늘 한 가지 문제를 그 근원까지 추적하곤 했다. 송명(宋明) 이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 역시 유명한 스승으로 그는 학생들에게 근원을 파고드는 것을 좋아해서 늘 학생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내놓곤 했다.

한번은 주희가 학생들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종종 ‘물건을 산다[買東西 직역하면 동서를 산다]’고 하지 ‘남북을 산다[買南北]’고 말하지 않느냐?”

우리는 비록 일상생활에서 “물건을 산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이 단어는 매우 자주 등장하지만, 그 내원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모두들 당연하게 여긴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은 모두 방위를 나타내는 단어인데 왜 유독 물건을 산다[買東西]고만 말하는가? 주희의 학생들 역시 간단하지 않아 시서(詩書)를 많이 공부했지만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주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책에서 답안을 찾아보게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도서관을 뒤져봐도 책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막 수업을 끝낼 무렵, 10살짜리 한 아이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집에서 장을 볼 때 늘 동시(東市 동쪽 시장)와 서시(西市 서쪽 시장)에 가기 때문에 ‘물건을 산다’[買東西]고 합니다.”

송조(宋朝)는 상업이 아주 발달하긴 했지만 당시 인구는 지금처럼 밀집되지 않았다. 햇빛 때문에 사람들은 집을 남향으로 지었고, 동서 방향으로 집을 짓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집 앞에 큰 길이 하나 있었는데, 당시 동시와 서시는 가장 중요한 시장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문을 나설 때 왼쪽으로 가면 동쪽방향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서쪽방향이었다. 즉 동서 방향으로 가면 물건을 사기 편했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오래 되자 장보러 가는 것을 ‘동서로 산다’[買東西]고 한 것이다.

중국 고대에는 음양학설(陰陽學說)이 성행했기 때문에 도시(城市)를 건설할 때도 오행이나 팔괘(八卦)의 배치에 따랐다. 예를 들어 동방은 목(木)이니 동쪽에 가구, 목기(木器), 마차 등을 취급하는 시장이 있었고, 서방은 금(金)이니 서쪽에는 금속 기구, 대장간 등의 시장이 있었다. 대부분의 생필품은 모두 금속과 목재로 분류할 수 있다. 반면 북방은 수(水)고, 남방은 화(火)이기 때문에 생필품과 관련된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즉 남시(南市)와 북시(北市)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업 거래에서 존재감이 아주 낮았고 동시와 서시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시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 문제는 겉으로 보면 한가한 질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속에는 많은 이치가 담겨 있고, 이런 질문을 통해 학생들의 사유도 넓힐 수 있다.

불법(佛法) 수행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찰에 많은 계율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왜 그런 규정이 있는지 똑똑히 알면 그 법리를 똑똑히 알 수 있다.

오늘날 큰 존경을 받는 주희나 왕양명(王陽明) 등의 “명사(名師)”라도 진정한 대가와는 차이가 아주 크며 그들이 말한 것도 속인 중의 얕은 지식에 불과해서 그것은 사람의 수련을 지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을 내세운 것 중 많은 것들이 이를 이용해 민중을 세뇌시키고 전문적으로 우리 한인(漢人)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다.

여러분 한번 물어보자, 여러분들은 왜 우리 중국인을 한인(漢人)이나 한족(漢族)이라 부르는지 아는가?

답안은 아주 간단하다. 한족은 한조(漢朝)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렇다면 한조는 왜 한조라 불리게 되었을까?

고조 유방이 한조를 세우기 전에 한중왕(漢中王)이었다. 한중왕이란 명칭은 한중(漢中)이란 지명에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한중이란 이름은 또 어디서 유래했을까?

원래 이 지역에 한수(漢水)라는 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한수라는 명칭은 또 어디서 왔을까? 한수의 흐름이 하늘에서 은하수와 같은데, 은하(銀河)를 ‘한(漢)’이라고 해서 강 이름이 한수가 된 것이다.

[역주: 북반구에서 바라보는 은하수가 서북쪽에서 동남쪽방향으로 흐른다. 중국에서 황하나 장강 등 대부분의 큰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지만 한수(漢水)는 서북에서 동남으로 비스듬히 흘러가기 때문에 은하수와 대응한다. 또 은하(銀河)를 은한(銀漢) 또는 천한(天漢), 운한(雲漢)이라고도 한다.]

《시경》에는 “하늘에 한(漢)이 있어, 살펴보니 빛이 난다[維天有漢,監亦有光]”는 구절이 있고, 조조가 쓴 시중에 “성한(星漢)이 찬란하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한(漢)’은 모두 드넓은 은하를 가리킨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 한인(漢人)은 천상의 성하(星河 별들의 바다 즉 은하)에서 왔으며, 우리가 천상에서 온 손님임을 잊지 말라고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전에는 오직 한인(漢人)만이 천상에서 왔고, 중토(中土)에 왔고, 이 중앙의 나라에 왔고, 중원이란 이 큰 무대에서 역사란 큰 연극을 연기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생명 본원이 모두 호한(浩瀚)하고 끝없는 우주 공간에서 유래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일뿐 날이 밝으면 떠나야 하고, 이곳의 모든 것은 다 우리 것이 아닌데 또 집착할 게 무엇이 있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