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명대(明代)의 저명한 화가 당백호(唐伯虎)는 사실 매우 청성하고 이지적인 철인(哲人)이었다. 그의 《경세(警世)-세상에 대한 경고》라는 시는 자신의 일생을 반영한 작품이다. 우리 눈에 비친 당백호는 세상을 멋대로 비웃으며 호방한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당백호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 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세상 일이란 작은 돛단배처럼
서쪽 아니면 동쪽으로 움직인다
달은 몇 번 기울어도 다시 차오르며
남풍 불다 또 북풍 불며 수시로 바뀌누나
아무리 오랜 세월도 천일 동안 좋은 날 없고
봄꽃이 좋다 한들 얼마나 붉겠는가
옳고 그름 귓가에 들려와도 모름지기 참아야 하나니
절반은 바보처럼 절반은 귀머거리처럼 살아야 하네
世事如舟掛短篷
或移西岸或移東
幾回缺月還圓月
數陣南風又北風
歲久人無千日好
春深花有幾時紅
是非入耳君須忍
半作癡呆半作聾
시인의 눈에 인생이란 작은 돛단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여행이다. 잠시 서쪽으로 가지만 또 잠시 동쪽으로 간다. 달은 가득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고, 바람은 잠시 남풍이 불다 또 북풍으로 바뀐다. 인생에서 행복한 시절과 슬픈 날은 마치 꽃이 예쁘게 폈다 시드는 것과 같다. 원치 않는 일을 만나면 귀머거리라 벙어리처럼 가장해서 지나갈 수 있는데 왜 굳이 진지해야 하는가? 인생의 많은 일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아주 많은 유명 인사들이 우리 앞에서는 장난꾸러기나 악동처럼 나타난다. 사실, 외부인 누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 마음속의 고초를 알 수 있겠는가? 자신이 아무리 슬퍼도 남들 앞에서는 여전히 구름이나 바람처럼 보여야 한다. 오직 세상을 우습게 보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진실을 감출 뿐이다. 당백호 역시 그랬다. 생명의 고달픔을 또 누가 알 수 있고 또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큰 기쁨과 슬픔을 경험한 시인은 마치 치매에 걸린 바보처럼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청성하고 똑똑히 안다. 단지 너무나도 많은 무력감과 괴로움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그저 은폐할 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