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정견망】
이 글은 우리가 잘 아는 전파(電波)라는 사실과 현상을 사용해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전법륜》)이라는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말씀을 실증하고자 한다. 불순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미신을 전파한다며 사부님을 비방하거나 심지어 인터넷에서 “다른 공간”을 나열하는 것조차 금지하는데 정말로 가소롭다. 여러분이 한번 보라! 다른 공간이 과연 사실인지 아니면 미신인지? 다른 공간의 존재 형식이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철저하게 최초로 말씀하신 분은 바로 대법 사부님이다.
전파[無線電波]라는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발명은 인류의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사람들은 매일 라디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듣거나 시청하며 일상 생활에서 거의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TV 신호를 어떻게 수신할 수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파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들은 그런 것은 전기 기술자라면 당연히 그 이치를 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무선 전신(電信)의 원리를 아는 사람 역시 그저 책에 적힌 이론에 따라 전파의 존재 형식을 이해할 뿐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해하기 몹시 어렵고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전파가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는지 고려하지 말고 우선 일상생활에서 무선 신호를 듣거나 보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가정이란 작은 공간에서 당신이 텔레비전 세트를 켜면 많은 채널들의 신호가 잡히는데 뉴스, 스포츠, 경제, 문학 및 예술 등을 다 볼 수 있다.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라디오를 켜면 다양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데, 중파, 단파, FM 라디오 등의 다양한 주파수 신호를 들을 수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프로를 골라서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다. 또한 같은 장소에서 무선 휴대폰을 사용해 멀리 떨어진 친척, 친구 또는 동료와 통화할 수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 안 어디서나 이런 무선 신호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작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미지와 신호들이 확산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지만 TV를 켜면 보거나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괴상한가!
3차원 공간에서 형성된 전통 관념에 따르면 전파의 존재 형식이 어떻든 영상은 크기나 치수가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채널의 신호는 어쨌든 일정한 공간이나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어떻게 모두 한데 섞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가? 전파는 또한 물질 존재이니 즉 물질 미립(微粒)이 아무리 작다 해도 한곳에 많이 모이면 당연히 눈으로 직접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이 알려주다시피 전파는 단지 신호의 강약만 구별될 뿐 무슨 크기의 구별이 없다. 더 많은 전파가 모인다고 해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데 아울러 이러한 전파는 동시에 같은 위치에 존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존재 형식이다!
만약 어느 지역 사람들이 역대로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존재를 몰랐거나 또는 어딘가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사람들이 갑자기 수신기에서 이미지와 소리를 보거나 들었다면 누구나 마술(魔術)이라 하거나 또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순풍이(順風耳)와 천리안(千里眼)이라 생각할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농촌의 할머니들은 “요즘 사람들은 작은 상자(라디오)에 들어가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전자기학에서 전파는 흔히 전자파(電磁波)로 불린다. 전자파는 종류가 아주 많은데 광파(光波), X-선, 감마선, 전파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전파는 또 파장의 길이에 따라 중파, 단파, 장파, 미터파, 데시미터파, 센티미터파, 밀리미터파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주파수에 따라 중주파, 고주파, 저주파, 초고주파, 극초고주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서로 다른 전자파로 구성된 다이어그램을 전기 기술 및 전자공학에서는 전자기 스펙트럼이라 부른다.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볼 수 있다시피 주파수와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를 표현할 수 있지만 가시광선 및 적외선보다 큰 주파수 영역은 주파수가 너무 커서 일반적으로 파장으로 표시하는 반면 전파 영역 (3kHz ~ 3000kHz)에서는 주로 주파수를 널리 사용하는데 사실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주파수는 3Hz(왼쪽 끝)에서 시작해 3*10의 24승(오른쪽 끝)까지 주파수가 무한대(無限大)로 증가한다. 반면 파장은 10만 킬로미터(왼쪽 끝)에서 시작해 10의 -16승(오른쪽 끝)까지 무한소(無限小)로 짧아진다.
입자의 크기란 관점에서 보자면 분자, 원자 및 원자핵의 위치 역시 전자기 스펙트럼에 표시할 수 있다. 분자는 약 10분의 -7승 센티미터 정도가 되고, 원자는 약 10의 -8승 센티미터, 원자핵은 약 10의 -13승 센티미터에 불과하고 중성자, 원자, 중성미자와 같은 입자는 이보다 더 작다. 연구에 따르면 물질의 입자가 작을수록 에너지가 더 크다고 한다.
우리가 전자파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 전자기 스펙트럼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파 중에서 중파, 단파 신호, 텔레비전 신호 및 휴대폰 신호 등은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주파수에 따라 배열할 수 있지만 우리 현실 공간에서는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 존재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레이, 감마선 등도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확실하고도 확실한 사실이다.
전자기 스펙트럼을 통해 우리는 마치 우주 공간의 일부 복잡한 구조를 보고 이해한 것 같지만 이는 단지 표면에 불과할 뿐이다. 전자기 스펙트럼은 그래프에서 선으로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선(線)도 아니고 면(面)도 아닌 3차원, 또는 다차원 공간 구조다. 거시적으로는 무한히 멀고 미시적으로는 무한히 작은, 모든 것이 그 안에 존재한다. 주파수 공간, 장(場) 공간, 입자 공간 등에 대한 내용의 토론에서 우리는 전자기 스펙트럼의 신기한 특징을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체에서 눈과 귀는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그러나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시각과 청각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아주 조화롭게 작동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창세주(創世主)의 위대함과 신성함 및 자비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신 창세주만이 생기로 가득한 이 세상을 만들고 우주 중의 모든 것을 만드실 수 있는데, 여기에는 각종 크고 작은 배치를 포함한다.
리훙쯔 대사는 말씀하셨다.
“‘불법’은 입자(粒子)∙분자(分子)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더욱 작은 것에서 더욱 큰 것에 이르기까지, 일체 오묘한 비밀[奧秘]을 꿰뚫어보는 것으로서,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린 것이 없다.”(《논어》)
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서로 다른 생물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이 인식하는 세계의 물리적 모습도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인류는 비록 아득히 먼 은하계,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 눈앞의 화려한 현실 세계를 볼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은 파장의 길이가 겨우 0.77µm~0.39µm에 불과한 가시광선 범위에 속할 뿐이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파장의 범위는 그야말로 좁은 문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즉,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은 전체의 1% 미만이고 나머지 99% 이상의 공간은 볼 수 없다. 이 명백한 사실은 눈으로 모든 것을 명백히 볼 수 있다고 여겨온 인류에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리훙쯔 대사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현재 어떤 사람은, 이 한 쌍의 눈은 우리 이 세계 중의 어떤 물질, 어떤 물체든 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일종의 고집스러운 관념이 생겨서 그는 눈을 통해 본 것만이 확실하고 확실한 것이라 여기며,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에, 사람들은 보지 못하면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수련계에서는 예부터 이런 사람을 오성(悟性)이 좋지 않아 속인의 가상에 미혹되었으며 속인 중에 미혹되었다고 여겼다.”
지금 우리는 마땅히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사람의 눈으로 본 일체가 우주의 진상(真相)인가? 인류가 진행해 온 과학 연구는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아닌가? 만약 정말로 이와 같다면 그럼 인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인생의 의미란 대체 무엇인가? 누가 대답해 줄 수 있는가?
리훙쯔 대사는 “사람이 반본귀진하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34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