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제자
【정견망】
필자가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은 무신론이었다. 전통문화 속에서 신과 관련된 모든 것은 봉건 미신으로 치부되었고, 통치자가 백성을 우롱하는 정신적 아편이라 불렸다. 그렇게 몇 세대가 흐른 뒤, 대다수의 중국인은 무신론자가 되었거나 혹은 신(神)에 대해 반신반의하게 되었다. 절을 찾는 목적도 대부분 재물을 구하거나 건강, 득남을 기원하는 등 이것저것 구하기 위함이거나, 혹은 세상을 떠난 친척을 위해 법사(法事)를 지내주는 정도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그저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는 다 신(神)에 관한 전설이 있다. 사람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으며, 황금은 돈을 대표한다고 여긴다. 그 옛날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산과 바다, 사막으로 가로막혀 아무런 소통이 없었을 터인데, 설마 서로 다른 지역에서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생각해냈겠는가?
서방에서는 창세기부터 모세 십계명의 구약, 그리고 예수의 신약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신과 인간의 약속이라 여긴다. 신이 인간에게 사람다운 기본 준칙을 정해주면, 인간은 그 준칙에 따라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상고(上古) 태초 시기에 반고(盤古)가 하늘과 땅을 열고, 여와(女媧) 씨가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으며, 수인(燧人) 씨가 불을 취해 사람에게 전하고, 복희(伏羲) 씨가 팔괘를 그려 인륜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후 여와가 하늘을 수리하고 대우(大禹)가 치수를 했다는 전설은 노아의 방주와 같은 시기로, 많은 민족이 대홍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전 문명이 대홍수로 파멸되었기 때문인데, 서방 문명은 거의 전멸했고 중국은 곤륜산(崑崙山) 일부 지역이 지세가 높아 팔괘, 주역 등 일부를 남길 수 있었다.
이번 차례 문명에도 황제(黃帝), 염제(炎帝)의 전설과 신농(神農)이 온갖 약초를 맛보고 창힐(倉詰)이 글자를 만든 이야기 등이 있다. 노자는 오천언 《도덕경》을 남기고 푸른 소를 탄 채 함곡관을 나가 돌아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은 신(神)과 인간이 공존했기에, 중화문화는 신전(神傳) 문화이며 중화 대지는 신주(神州)라고도 불린다.
전인(前人)들은 또 후세를 위해 불후의 문학 작품들을 남겨 서로 다른 층차에서 후인들을 일깨워 주었다. 예를 들어 《봉신연의(封神演義)》는 조대(朝代)의 교체를 다루는데, 그 발단은 주왕(紂王)이 여와 낭랑에게 음탕한 마음을 품은 데서 시작되어 28년 만에 상나라가 멸망한다. 이 기간에 원시천존(元始天尊)과 그 제자들을 포함하여 일정 층차 내의 생명들이 참여했으며, 삼계의 신들이 새로이 봉해졌다. 층차가 비교적 높은 생명 중 본래 삼계를 벗어날 가망이 있었으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 삼계 내의 신이 된 조공명(趙公明), 황천화(黃天化) 같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에서 승화해 신이 된 황비호(黃飛虎)와 같은 이들도 있다. 한 조대의 교체는 참으로 천지를 진동시키는 일이다.
《서유기》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의 수련 이야기다. 사도(師徒) 네 사람이 81가지 난을 겪으며 각종 마난과 시련을 견뎌내고, 쟁투심, 질투심, 과시심 등 온갖 좋지 못한 마음을 닦아버린 끝에 마침내 진경(眞經)을 얻고 수련의 길을 마쳐 원만(圓滿)에 이른다. 네 사람 중 세 명은 불위(佛位) 정과(正果)를 얻지만, 팔계는 색심(色心) 등 좋지 못한 것들을 다 제거하지 못해 정단사자(淨壇使者)에 머문다. 전문가는 그 도리를 알지만 외부인은 떠들썩한 겉모습만 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서유기》는 참으로 대단한 작품이다.
말이 나온 김에 제8회에 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사람 마음에서 일념이 생겨나면
천지가 모두 다 아나니,
선과 악에 응보가 없다면
건곤(乾坤)에 반드시 사사로움이 있으리라.
人心生一念
天地盡皆知
善惡若無報
乾坤必有私
《홍루몽》은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지만 대개 앞의 80회만 읽는다. 고악(高鹗)의 경지는 조설근(曹雪芹) 선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역주: 원저자 조설근이 쓴 소설은 80회까지이고 나중에 고악이 추가해 120회본을 만들었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책은 120회 본이다.]
내가 보기에 전권의 핵심은 제1회인 《석두기(石頭記)》의 연기, 호료가(好了歌), 견사은의 호료가 주해, 그리고 제5회에서 경환선녀가 홍루몽을 연주(警幻仙曲演紅樓夢)하는 것에 있다. 다른 모든 인물과 사건의 전개는 이를 증명하기 위함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보옥과 대옥의 사랑을 안타까워하는가. 하지만 대옥은 강주선초(絳珠仙草)가 사람으로 환생해 은혜를 갚으러 온 것이니, 눈물을 다 흘리고 나면 깨끗한 본연으로 돌아가야 하며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다.
또 묘옥(妙玉)의 예도 그렇다. 출가인으로서 진정한 수련은 하지 않은 채 찻그릇에 집착하고 유 노파를 혐오하며 내부인과 외부인을 따지니, 이것이 어찌 수련인의 상태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조공(曹公 조설근에 대한 존칭)이 남긴 시구는 이렇다.
깨끗하고자 했으나 언제 깨끗했는가?
구름처럼 비었다 하나 반드시 빈 것은 아니니,
가련하게도 금옥 같은 바탕이
결국 진흙탕 속에 빠졌구나.
欲潔何曾潔
雲空未必空
可憐金玉質
終陷淖泥中
아, 안타까운 일이다. 평생 《홍루몽》을 연구하는 이들이 많으나 자구에 매달려서는 아무런 도리도 찾을 수 없다. 스스로 조공의 경지로 승화할 방법을 찾는다면 명확히 보일 것이다. 조 공은 홍진 속의 일을 거의 다 파헤쳐 놓았는데, 이것이 아마 뒤의 40회가 전해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요재지이》에 나오는 이야기는 대개 호황백류(狐黃白柳 여우 족제비 뱀 귀신) 등 비교적 낮은 층차의 생명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피(畫皮)》만 봐도, 그리는 것은 피부가 아니라 분자 세포로 구성된 이 육신이다. 분명 이 미소년 부인의 원신(元神)은 이미 죽었고, 악귀가 그녀의 육신을 점유한 것이다. 마치 소달기(蘇妲己)의 원신이 죽고 여우가 그 육신을 점유한 것과 같다. 예전에는 소달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문 앞까지 찾아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음이 바르면 이런 생명들은 감히 접근조차 못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백사전》을 천 년을 기다린 사랑으로 보고, 득도한 고승 법해(法海)를 남의 사랑을 방해하는 고리타분한 노인으로 보는가. 하지만 이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에게 ‘색(色)이란 글자는 머리 위에 칼이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 풍몽룡의 《유세명언(喻世明言)》에 수록된 것이다.
문학 작품 외에도 전인들은 또 돈황 벽화, 막고굴, 낙산대불 등 신(神)과 관련된 수많은 예술품을 남겼다. 그 화가와 장인들이 일 년 내내 캄캄한 동굴이나 절벽에서 그리고 깎으며 무엇을 바랐겠는가? 대중과 후세를 속이기 위함이었겠는가? 미켈란젤로가 평생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리며 명예나 이익을 구하지 않고 가정도 갖지 않은 채 무엇을 바랐겠는가? 나는 이 화가와 장인들이 매우 선량한 사람들이었기에, 신께서 그들에게 천국 세계의 정경과 신불(神佛)의 형상을 보여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이토록 수승(殊勝)한 장면을 보았을 때, 그것을 남기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며 다른 것은 중요치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럼 이제 무신론을 말해보자. 실증과학이 등장한 후 무신론이 생겨났다. 사람의 눈으로 신을 볼 수 없고 기존 장비로도 탐측할 수 없기에 신의 존재를 일률적으로 다 부정한다. 사람의 눈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당연히 원자, 양자 혹은 다른 입자로 구성된 생명을 볼 수 없다. 기존 장비는 분자가 분열 후의 원자 몇 개를 볼 뿐이지, 무수한 원자로 구성된 그 공간의 생명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공능이 있는 사람이나 6세 이하의 어린아이, 수련생은 천목(天目)을 통해 볼 수 있다. 가끔 다른 공간의 정경이 착오로 우리 공간에 반영되기도 하는데, 신기루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지난 세기 1980년대 기공 열풍 속에서 기이한 현상이 많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비교적 개방적이었고 당국의 압제도 없었으며, 전학삼(錢學森)의 주도로 생명과학 연구가 시작되기도 했으나 나중에 환경이 변했다.
무신론이 나타난 후, 많은 이들이 신의 속박이 없어졌다고 느끼게 되었다. 선악의 응보나 인과응보가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방종에 대해 당연하다는 핑계를 찾았다. 그리하여 인류의 도덕은 하루가 다르게 하락했다. “덕이 한 근에 얼마냐?”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되었고, 도덕을 말하면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스스로 남자라고 생각하면 남자고, 여자라고 생각하면 여자가 되어 마음대로 성전환을 한다. 제도와 정책을 이용한 사기가 도처에 널려 있다.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타인의 장기를 적출해 수명을 연장하는 일이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지경이다. 20년 전 처음 폭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인류 인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며 유언비어라 여겼다. 지금은 어떠한가? 여전히 의심하는 이가 있는가? 그들은 돈과 권력이 있으면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 일을 하는 의사는 자신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비와 선악의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표준은 개인이나 당파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정해진다. 실종된 아이들의 가정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인류가 더 발전하면 어떤 모습일까? 머지않아 인류가 AI에 대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렇게 계속되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본다. 사람은 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은 신이 만들었으니 인류 사회는 인류 사회다운 상태여야 한다. 주왕(紂王)이 여와 낭랑에게 음탕한 마음을 품은 것만으로도 신은 그를 멸할 준비를 시작했는데, 하물며 인류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랴. 사람이 다스리지 못하면 하늘이 다스린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예전에 읽은 짧은 글 하나를 이곳에 옮겨본다.
“수년 전 러시아의 한 학자가 대회장에서 신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고 강연했다. 청중들이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낄 때쯤, 그는 큰소리로 하나님께 도전했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정말 영험하다면 내려와서 이 많은 군중 앞에서 나를 죽여 보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의 존재를 믿겠소!’
그는 의도적으로 몇 분간 조용히 기다렸으나, 당연히 하나님은 내려와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는 청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도 들었지요, 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때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한 부인이 일어나 말했다.
‘선생님, 당신의 이론은 참으로 고명하며 박학다식하십니다. 저는 시골 부인일 뿐이라 당신께 반박할 순 없지만, 제 마음속 질문 하나에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수년 동안 믿으며 마음속에 주님의 구원을 얻어 매우 즐거웠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그 맛이 깊어지고 마음은 위로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인생 최대의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묻겠습니다. 만약 제가 죽었을 때 신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 아니며 성경이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제가 평생 예수님을 믿으며 손해 본 것이 무엇입니까?’
학자는 한참을 생각했다. 전 장내에 정적이 흘렀고 청중들도 부인의 추론에 동의했다. 학자 자신도 그 단순한 논리에 경탄하며 낮게 대답했다.
‘부인, 내 생각에 당신은 조금도 손해 본 것이 없군요.’
부인이 다시 학자에게 말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제게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신이 죽었을 때 만약 신이 정말 계시고 성경이 틀림없는 사실이며, 예수님이 과연 신의 아들이고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묻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잃게 됩니까?’
학자는 한참을 생각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신론과 무신론, 둘 중 하나는 진실이고 하나는 가짜다. 모호한 중간 지대란 없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개인의 오성(悟性)에 달렸다. 하늘의 다스림이 시작되는 날, 신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이들이 어떻게 신의 구도를 받을 수 있겠는가? 부디 선념(善念)을 품은 사람들이 선량한 본성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여, 하늘의 다스림이 시작될 때 보살핌을 받아 새로운 기원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