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紫金) 편집
【정견망】
1930년경 안휘(安徽) 임천(臨泉)의 한 십대 소년이 어머니를 모시고 상해로 피난을 왔다. 생활은 매우 고달팠다. 소년은 매우 효성스러워 매일 구걸을 하며 집안을 부양했다.
어느 날 상해 백운관(白雲觀)의 지객(知客, 도관 관리자)이 길을 걷다가 이 구걸하는 소년에게 수행의 선근(善根)이 있는 것을 보고는, 우리 백운관에 와서 지수(知隨, 시종)가 되어 손님이 오면 차를 따르고 물을 떠다 주며 사람들을 보살피면 매달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는 매달 급여도 있으니 구걸하는 것보다 낫겠다며 소년을 백운관으로 보냈다.
어느 해 설날이었다. 지객이 소년에게 올해 설에는 집에 가지 말고 보름이 지난 후에 가라고 말했다. 설 기간에는 관리나 부유한 사장들이 사찰에 와서 향을 피우는데 사람들이 아이에게 세뱃돈을 주었고, 설에 사찰에서도 그에게 은화 두 개를 주었다. 시주하는 손님들도 돈을 주어 소년은 그동안 모은 동전을 은화 네 개로 바꿨다.
소년은 이 돈을 매우 아껴서 수건에 은화 네 개를 겹겹이 싸고 다시 실로 묶어서 보관했다.
정월 대보름이 지난 후 지객이 이제 오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집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오라고 했다. 소년은 기쁜 마음으로 이 돈주머니를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가기 전 도관(道觀) 내의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안에서 바지를 내릴 때 주머니가 너무 컸던 탓에 위로 끌어올리다 주머니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돈이 든 은화 주머니가 화장실 변기통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민국(民國) 시기 상해 백운관의 화장실은 대단히 커서 몇 년에 한 번씩 분뇨를 쳤는데, 분뇨를 칠 때는 위생국에서 차 여러 대가 와서 하루이틀은 퍼내야 다 비울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그 돈을 건져낼 방법이 없었다.
소년은 오전에는 집에 갔다가 오후 일찍 돌아왔는데 돌아온 후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지객이 묻기를, 예전에는 집에 가라고 하면 하루 이틀은 안 오려고 하더니 오늘은 어머니와 설을 잘 쇠라고 열흘 보름쯤 있다 와도 된다고 했는데 왜 일찍 왔느냐고 했다. 소년은 집에 별일이 없어 일찍 왔다고 답했다.
이후 소년은 나날이 의기소침해지더니 처음에는 차를 따르고 물을 떠다 주며 시중을 들 수 있었으나 몇 달 후에는 걷는 것조차 비틀거려 병이 든 것처럼 보였다. 나날이 수척해지더니 7월 무렵에는 이 소년이 병으로 야위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 아이는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의사를 불러 치료해 보아도 호전되지 않았다.
출가인(出家人)들은 대부분 병을 볼 줄 알기에 이것이 무슨 병인지, 혹시 사기(邪氣)에 들린 것은 아닌지 의아해했다. 이에 객당(客堂) 사람들과 요방(寮房 도사들이 거처하는 곳) 사람들이 상의한 끝에 밧줄을 가져와 소년에게 네가 무슨 요괴냐며 오늘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이 대들보에 매달아 채찍으로 때리겠다고 말했다.
소년은 자신은 병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병이 없는데 어째서 일어나지도 못하느냐고 묻자 소년은 그저 “제 돈이 생각납니다”라고 했다. 어째서 돈 생각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고, 어디서 잃어버렸기에 찾지 못하느냐고 되물었다. 소년은 우리 도관 화장실 안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화장실이 이렇게 깊으니 건져낼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객당과 요방 사람들이 몇 개나 잃어버렸느냐고 묻자 소년은 은화 네 개라고 했다. 사람들이 은화 네 개를 주겠다고 했으나 당가(當家 도관 운영 책임자) 도사는 그에게 은화 마흔 개를 주어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그 돈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관리자가 위생국에 연락해 차 몇 대를 보내 속히 분뇨를 퍼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일꾼들에게 이 아이가 은화 네 개를 이 화장실에 빠뜨렸으니 누구든 이 은화 네 개를 찾으면 우리가 은화 네 개를 줄 테니 화장실에서 찾은 은화 네 개를 우리에게 달라고 약속했다. 일꾼들과 이야기가 잘 끝났다. 마지막에 당가가 생각하기를 만약 은화를 찾고도 주지 않고 보지 못했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다. 일꾼이 보지 못했다고 하면 이 아이는 절대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출가자 몇 명을 보내 특별히 서너 구덩이만 집중적으로 파서 분뇨를 담게 하고 나머지는 파지 못하게 하며 일꾼들이 파게 했다. 이렇게 조금씩 파 내려가 결국 화장실에서 그 은화 네 개를 찾아냈다.
은화를 꺼낸 후 위의 오물을 깨끗이 씻고 방으로 가져왔다. 끈을 풀자 그가 싼 수건이 커서 겹겹이 싸여 있었다. 끈을 풀고 마치 종이를 펴듯 첫 번째 층을 폈을 때는 별다른 것이 없었으나 두 번째 층을 펴니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층을 펴자 달라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층층이 많이 싸 놓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층 수건부터는 그 위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것은 선명하게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피였지 죽은 피가 아니었다. 수건 층층마다 피가 배어 있었고 수건 위가 온통 피로 가득했다. 모두 신선한 피였는데 마치 사람의 생혈(生血)과 같았다. 은화 네 개를 꺼내 보니 마지막 은화 위의 층에는 피가 없었다. 그럼 무엇이 있었는가. 앞의 몇 층에는 다 피가 있었는데 왜 안쪽에는 피가 없고 마지막 층에도 피가 없었을까.
그 네 개의 은화 위에도 피가 없었고 무엇이 있었는가 하면 거미줄과 비슷했는데 그 선보다 약간 굵었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그 돈 위에는 붉은색, 노란색, 흰색의 세 가지 색깔이 있었다. 이 세 가지 색깔의 선이 한 겹만 감긴 것이 아니라 은화 네 개 위를 완전히 빽빽하게 감싸고 있어 은화도 돈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거미 두 마리가 줄을 친 것처럼 거미줄 선과 정교함이 비슷했다. 그 위는 붉은색, 노란색, 흰색의 세 가지 색깔이었다. 물건을 꺼내 놓으니 평소 백운관에 머물던 일이백 명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이나 와서 보았고 출가자들도 모두 와서 보게 했다.
바깥 몇 층은 온통 피인데 왜 이 안쪽에는 피가 없고 왜 실로 빽빽하게 감겨 은화 네 개를 감싸고 있었을까. 이 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물건은 어디서 왔으며 수건에 그 많은 피는 어디서 왔을까. 모두가 보았으나 많은 출가인들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나중에 한 노(老)출가인이 와서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음! 과연 사람이 도를 닦아 성취하기란 어렵구나!”라고 말했다.
사람이 줄곧 어떤 사물을 생각하고 집착하면 그 사물이 단번에 자신의 신사(神思)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가버린다. 자신의 정화(精華)와 기혈을 완전히 끌고 가버리는 것이다. 그의 정(精), 기(氣), 신(神)이 은화에 얽혀버린 것이다.
그 은화 네 개 위의 피는 온몸의 기(氣)인데 기는 혈(血)로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안의 것은 무엇인가. 바로 가장 고귀한 정(精), 기(氣), 신(神)이다.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 위에는 피가 없다. 그 (실) 위의 붉은색, 노란색, 흰색 중 붉은색은 심장(心臟)에 속하고 노란색은 비장(脾臟)에 속하며 흰색은 폐장(肺臟)에 속하니 이것이 바로 세 장기의 정화이다.
이 소년은 이전에 화장실에 빠뜨린 은화에 과도하게 집착했기에 자신의 심혈과 온몸의 정화를 그 화장실의 은화로 가져가 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 은화 네 개를 그에게 주자 그는 그것이 자신의 돈임을 보고 기뻐했다. 집착을 내려놓자 두 달도 안 되어 살이 오르고 포동포동해졌다. 신체가 정상으로 회복된 것이다. 그가 젊기도 했고 그 돈(은화)을 얻어 기뻐하니 그의 신사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상 이야기는 도가 수행인 장지순(張至順) 선생의 구술에서 유래했으며 문장을 일부 수정했다].
옛사람들은 자주 심령신회(心領神會 마음으로 깨닫고 정신으로 이해), 취정회신(聚精會神 정과 신을 모으다), 폐목양신(閉目養神 눈을 감고 신을 기른다)을 말했다. 만약 정신을 지키지 못하면 신불수사(神不守舍 신이 집을 지키지 못함), 신혼전도(神魂顛倒 신과 혼이 뒤집어짐)라고 했다. 왜 옛사람들은 눈을 감고 신을 기르는 것을 중시했을까? 사람의 눈에는 오장육부의 정화가 모여 있기에 사물을 볼 수 있고 정(精)을 전할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집착하여 짧은 영상을 보면 몸 안의 정, 기, 신 또한 집착을 따라 휴대폰 속으로 상실된다. 반드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