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도(天道)의 영원함에 대한 깨달음 — 《금동선인사한가》 해독

청풍(淸風)

【정견망】

위(魏) 명제 청룡 원년 8월, 궁관(宮官)에게 명하여 수레를 끌고 서쪽으로 가서 한무제가 만들었던 승로반(捧露盤)을 받쳐 든 선인(仙人)상을 가져오게 하여 앞뜰에 세워두고자 했다. 궁관이 승로반을 뜯어내고 선인상을 수레에 실으려 하자, 선인상이 눈물을 흘렸다.

당 황실의 후손인 이장길(李長吉, 이하)이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歌)–금동선인이 한나라를 하직하며 부른 노래》를 지었다.

무릉의 유랑은 추풍에 떠난 객이요,
밤이면 말 울음소리 들리나 새벽이면 흔적도 없네.
그림 그린 난간 계수나무엔 가을 향기 걸려 있고,
서른여섯 궁궐엔 이끼만 푸르구나.
위나라 관리 수레 끌고 천 리 길 향하니,
동문의 시린 바람 눈동자를 쏘네.
부질없이 한나라 달을 싣고 궁문을 나서며,
임금 생각에 흘리는 맑은 눈물 납덩이 같구나.
시든 난초 함양 길에서 길손을 배웅하니,
하늘에도 정이 있다면 하늘 또한 늙으리라.
구리 쟁반 받쳐 들고 홀로 나서니 달빛 황량하고,
위성은 이미 멀어져 파도 소리 작아지네.

茂陵劉郎秋風客,夜聞馬嘶曉無跡。
畫欄桂樹懸秋香,三十六宮土花碧。
魏官牽車指千裏,東關酸風射眸子。
空將漢月出宮門,憶君清淚如鉛水。
衰蘭送客咸陽道,天若有情天亦老。
攜盤獨出月荒涼,渭城已遠波聲小。

이하는 당대 시인 중 시귀(詩鬼)라 불린다. 그의 시는 상상력이 기이하고 경계가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사실 그는 근기(根基)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의 많은 시 속에 묘사된 것은 상상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진실하게 본 것이다.

이 시는 그가 관직을 그만두고 장안에서 낙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은 것이다. 앞부분의 서문은 이 시의 창작 배경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의 주인공은 한 무제 유철이다. 한대 사회의 수련 분위기는 상당히 농후했는데, 천자의 몸인 유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일찍이 서왕모를 만난 적이 있고, 서왕모는 그에게 몇 가지 수련의 가르침을 주었으나 안타깝게도 유철은 끝까지 견지하지 못했다. 그의 전각 밖에는 구리로 만든 선인상이 구리 쟁반을 받쳐 들고 있었는데, 전해지는 바로는 그 구리 쟁반으로 이슬을 받아 특정한 식재료와 함께 먹었다고 한다. 도가 수련에는 약식(藥食)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기초를 닦는 과정에서 매우 독특한 양생 방법 중 하나이다. 그래서 유철은 비록 수련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수명은 비교적 길었다.

앞의 네 구절은 능묘의 정경을 묘사했는데, 화면이 처량하고 퇴락하여 옛날의 번화함은 이미 다하고 사물은 그대로이나 사람은 바뀌어 무한한 감회를 준다. 이어지는 네 구절은 상당히 절묘하다. 금동선인이 궁 밖으로 옮겨져 위 명제의 궁전으로 보내질 때 선인이 눈물을 흘린 장면이다. 일반적인 해독에서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지만, 사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다. 만물에는 영(靈)이 있으니, 이 구리 인형도 다른 공간에서는 살아있는 존재다.

그는 유철을 여러 해 동안 보필하며 유철의 그토록 좋은 근기를 보고도 결국 수련을 이루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으며, 이제 또 떠나야만 하기에 슬피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 눈물은 우리 이 공간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났으니, 즉 구리 인형의 눈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본 것이다. 작가는 근기가 좋아 신(神)이 그에게 이 정경을 보게 하였고, 그 역시 이에 대해 깊이 감개하며 유철을 위해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다음 두 구절은 시 전체의 정화로, 풍경에서 철학적인 사고와 깨달음으로 전환된다. “시든 난초 함양 길에서 길손을 배웅하니, 하늘에도 정이 있다면 하늘 또한 늙으리라.” 시든 난초가 고도(古道)에서 배웅하는 대상은 어제 눈물을 흘린 금동선인이자, 오늘 실의에 빠진 이하이며, 나아가 고금의 모든 명리와 권세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의 신세와 결부하면 마치 자신의 운이 좋지 않음을 한탄하는 듯 보이지만, 작가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하늘에도 정이 있다면 하늘 또한 늙으리라”, 즉 천도(天道)는 늙지 않으며 영원하다는 점이다.

왕조가 바뀌고 세상일이 변천함에 사람은 슬퍼하지만, 하늘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신(神)은 그렇지 않은데, 그에게는 속인의 정(情)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 자체가 본래 그가 안배한 것이다. 이는 노자가 말한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추구(芻狗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라는 말과 매우 유사하다. 이 두 구절은 이러한 천기(天機)를 누설했을 뿐만 아니라 기세가 웅대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일반적인 회고시와는 비교할 수 없기에 천고의 명구로 남게 된 것이다.

마지막 두 구절은 화면감이 풍부하다. 수레가 점차 장안에서 멀어지고 위수의 파도 소리도 점점 작아지는데, 이 모든 것이 당시 작가의 심경을 가장 잘 나타내는 배경이 되어 독자로 하여금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