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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췌진 (9): 임대옥의 원형 엽소란의 인생이 주는 계시

왕사미(王舍微)

【정견망】

《홍루몽(紅樓夢)》 제40회 ‘김원앙이 술자리에서 세 번 주령을 내리다(金鴛鴦三宣牙牌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원앙이 다시 말했다.

“왼쪽에 천(天) 패가 있습니다.”

대옥이 답했다.

“이른 아침 아름다운 경치 어쩔 수 없는 나날(良辰美景奈何天).”

보채가 이를 듣더니 고개를 돌려 대옥을 바라보았지만 대옥은 그저 벌을 받을까 봐 걱정할 뿐 보채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앙이 말했다.

“가운데 비단 병풍[錦屛]이 있는데 색깔이 아름다워요.”

대옥이 말했다.

“비단 창가에도 홍낭의 소식이 없네(紗窗也沒有紅娘報).”

원앙이 말했다.

“남은 건 ‘이(二)’와 ‘육(六)’인데 점 여덟개가 가지런해요.”

대옥이 답했다.

“나란히 옥좌 바라보면 조정 의례를 이끄네[雙瞻玉座引朝儀].”

원앙이 말했다.

“패를 합치면 꽃을 꺾어 담기 좋은 바구니가 돼요[湊成籃子好采花].”

대옥이 답했다.

“신선 지팡이에 향기롭게 걸린 작약꽃[仙杖香挑芍藥花].”

대옥이 주령을 마치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여기서 묘사된 보채의 반응, 즉 왜 고개를 돌려 대옥을 바라본 것일까?

이는 대옥이 무심코 대답한 이 구절이 명대(明代) 탕현조(湯顯祖)의 작품 《모란정(牡丹亭)》 제10출(出) 중 두려랑(杜麗娘)의 창사(唱詞 노랫가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토록 울긋불긋 화사하게 꽃들이 피어났건만,
이 모든 것이 저 허물어진 우물과 무너진 담벼락에 맡겨졌구나.
아름다운 시절과 고운 풍경이라지만 이 야속한 세월을 어찌할까,
마음 즐거운 일은 어느 집 정원에서나 일어나고 있는가!
아침에는 구름 날리고 저녁에는 커튼 말아 올리니, 구름과 노을 비치는 비취빛 난간이로다.
비단 같은 가랑비와 조각바람 스치고, 안개 물결 위엔 그림처럼 화려한 배 떠 가는데,
비단 병풍 뒤에 갇힌 이 몸은 이 좋은 봄빛을 너무나 가볍게만 여기는구나!”

原來姹紫嫣紅開遍,似這般都付與斷井頹垣。
良辰美景奈何天,賞心樂事誰家院!
朝飛暮卷,雲霞翠軒;
雨絲風片,煙波畫船,
錦屏人忒看的這韶光賤!

이 창사는 《모란정》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랫동안 절창되어 온 곡조다. 곡 전체가 화려하고 농염하며, 정과 뜻이 얽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 곡은 두려랑이 자기 집 뒷동산을 유람할 때의 심경과 정서의 흐름을 묘사하고 있다. 노을이 정자와 누각에 휘영청 비치고, 부드러운 바람에 가느다란 비가 내리며, 안개 낀 봄물 위에 그림 배가 떠 있는데, 나의 청춘은 깊은 규방에 갇혀 이 대지 위 봄빛을 저버린 채 좋은 시절과 아름다운 경치를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이어서 원앙이 말한 ‘비단 병풍(錦屏)’의 고운 색깔은 위가 넷, 아래가 여섯인 패를 가리키는데 이를 ‘금병(錦屛)’이라 부른다. 사(四)는 붉은색이고 육(六)은 녹색이라 직사각형으로 배열하면 마치 아름다운 병풍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옥의 구절 “창가엔 홍낭의 소식이 없네”는 금성탄(金聖嘆) 평본 《서상기(西廂記)》 제1본 제4절 〈요재(鬧齋)〉 중 장생(張生)의 창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곳에서 주령을 넣은 것은 제23회 ‘서상기의 묘한 말로 희롱을 나누고, 모단정의 요염한 곡조로 향기로운 마음을 일깨우네(西廂記妙詞通戲語,牡丹亭豔曲警芳心)’에서 연유한다.

대옥은 보옥이 《서상기》를 읽는 것을 보고 “책을 건네받아 보니 볼수록 사랑스러워”, 그것이 《중용》이나 《대학》 같은 정통 경전이 아닌 ‘음사염곡(淫詞艷曲)’임을 알면서도 입에서 술술 나왔다. 이는 두려랑과 최앵앵의 모습이 대옥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맴돌며 깊은 인상을 남겼음을 보여준다. 이 두 권의 책이 대옥에게 끼친 영향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이로부터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記)》 제42회 ‘형무군이 향기로운 말로 의구심을 풀어주고 소상자가 우아한 농담으로 남은 향기를 보태다(蘅蕪君蘭言解疑語 瀟湘子雅謬補餘香)’에서 보채가 형무원(蘅蕪院)에 있을 때 전날의 일을 물으며,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 대옥에게 건넨 한 마디가 이어진다.

“그러니 우리 같은 여자들은 글자를 모르는 편이 오히려 나아. 남자들도 글을 읽고 도리를 밝히지 못하면 오히려 글을 읽지 않느니만 못한데 하물며 우리야. 시를 짓고 글을 쓰는 일 따위는 원래 우리 분수가 아니며, 결국 남자들의 분수도 아니지.

【비평: 남자의 분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남자들이 글을 읽어 도리를 밝히고 나라를 도와 백성을 다스린다면 참 좋겠지.

【몽측비: 저자의 간절한 고심으로, 부처를 대신해 법을 설하고 성인을 대신해 도를 강론하니 책을 보는 자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비평: 글을 읽고 도리를 밝혀 백성을 다스리고 나라를 돕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다만 요즘은 그런 사람을 통 보지 못했고, 글을 읽어 오히려 더 나빠졌으니 이는 책이 그를 망친 것이요 안타깝게도 그가 책을 망친 셈이야. 그러니 차라리 농사짓고 장사하는 것보다 큰 해가 없지. 우리야 그저 바느질하고 길쌈하는 일이나 해야 하는데, 어쩌다 글자를 알게 되었으니, 글자를 알면 그저 점잖은 책이나 골라 보면 그만이야. 가장 무서운 것은 잡스러운 책을 보아 성정을 옮기는(移了性情) 것이니, 그렇게 되면 구제할 길이 없어.”

즉 보채의 의도는 《서상기》 같은 책은 어른들도 “몰래 우리 뒤에서 보고, 우리도 몰래 그들 뒤에서 보는” 것이라는 말이다. 어른들이 알게 되면 “때리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며” 책을 다 태워버렸다. 당시 이런 책들은 점잖지 못한 잡서에 속했으며 격조 높은 자리에는 내놓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이 이로 인해 ‘성정을 옮겨 구제 불능’이 될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 지연재(脂硯齋)의 비평에서도 “책을 보는 자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몽회전(蒙回前) 총비에서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누가 시(詩)와 서(書)가 사람을 그르치지 않는다 했는가,
화려함만 숭상하여 천진함을 잃었구나.
옛사람이 원래 세운 뜻을 보건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모두 논할 가치도 없네.”

誰謂詩書鮮誤人
豪華相尚失天真
見得古人原立意
不正心身總莫論

명대 진계유(陳繼儒, 1558년~1639년)가 편찬한 격언 어록집 《안득장자언(安得長者言)》에는 “남자는 덕이 있으면 곧 재주가 있는 것이요,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것이 곧 덕이다”라는 말이 있다.

진계유는 이에 대해 “여자가 문장에 통하고 글자를 알아 큰 의리를 밝힐 수 있다면 진실로 어진 덕이라 하겠으나, 이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외에는 곡본(曲本)이나 소설 보기를 즐겨 사악한 마음을 부추기고, 심지어 문장을 휘둘러 법을 어지럽히며 추한 일을 저지르니, 차라리 글자를 모르고 졸박함을 지키며 분수를 지키는 것이 낫다.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것이 곧 덕이라는 말은 지극한 말이라 할 수 있다”라고 주를 달았다. 이로써 이 문장의 핵심 함의는 덕을 바르게 하여 덕으로 재주를 통제하는 데 있지, 여자가 글자를 모르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덕성(德性)에서 벗어나 천진함을 잃게 만드는 사악한 재주를 경계한 것이다. 남자라고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전국시대 종횡가 소진(蘇秦)은 종횡의 술법을 배우기 위해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달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고통스럽게 《음부(陰符)–음부경》를 읽었다. 학업을 마친 후 한때 여섯 나라의 합종 연맹을 결성하여 ‘종약장(縱約長)’이 되었고 여섯 나라의 재상 인장을 동시에 찼으며, 진나라가 15년 동안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권모술수가 정도(正道)에서 벗어났기에 연맹이 해산된 후 연나라에서 제나라에 이르기까지 반간(反間) 활동에 종사하다 결국 횡사하여 끝이 좋지 못했다.

여자 또한 음란함을 가르치는 잡서(雜書)에 빠져 내면의 순정함과 천진함을 잃고 성정을 옮기게 되면, 규방에서 깊은 한숨과 신음 속에 마음이 어지러워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게 된다.

“깊은 규방의 딸은 곱고도 어리석으니,
봄 시름과 봄 원망을 어찌 다시 알리오.”

深閨女兒嬌複癡,春愁春恨那複知
(북송 진관 〈이혼기(離魂記)〉)

“쌍계(雙溪)의 작은 조각배로는,
이토록 많은 시름 실어 나르지 못할까 두렵네.”

只恐雙溪舴艋舟,載不動許多愁
(북송 이청조 〈무릉춘·춘만〉)

결국 향기가 사라지고 옥이 부서지듯 목숨을 잃게 된다. 청대 원호연수산인(鴛湖煙水散人)의 《규각재자기서(閨閣才子奇書)》 권7 〈노윤경(盧雲卿)〉 편 머리말에 인용된 글귀와 같다.

“화인상인(花茵上人)이 말하기를, ‘정(情)’이라는 한 글자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 죽지 않는다 해도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니, 대개 규방의 여인들이 더욱 심하다.”

《지연재중평석두기》 제76회에서 임대옥과 사상운이 연시(聯詩)를 지을 때, 사상운이 “차가운 못에 두루미 그림자 건너가네(寒塘渡鶴影)”라고 읊자, “임대옥이 듣고 좋아서 발을 구르며”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차가운 달이 꽃의 혼을 장사 지내네(冷月葬花魂)”라고 대꾸했다. 이는 곧 소상자(대옥) 운명이 되었다.

그러나 조설근이 쓴 ‘꽃의 혼을 장사 지낸다(葬花魂)’는 말은 아무런 근거 없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 유래가 있다. 명말 문학가인 소주부 오강현 사람 엽소원(葉紹袁, 1589년~1648년)이 엮은 《오몽당집(午夢堂集)》에는 그의 부인 심의수(沈宜修)와 딸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 가장 재능이 뛰어났던 셋째 딸 엽소란(葉小鸞, 1616년~1632년)은 혼인을 닷새 앞두고 열일곱의 나이로 요절했다. 딸을 그리워한 엽소원은 숭정 8년(1635년), 몇 차례나 ‘늑대사(泐大師, 금성탄)’를 집으로 청해 부계(扶乩)를 하며 엽소란의 소식을 물었다.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엽소란의 ‘희연분합장화혼(戲捐粉盒葬花魂)’ 중 ‘장화혼’ 세 글자를 조설근이 차용했음을 발견했다.

명대(明代)의 이청조라 불리는 심의수는 〈계녀경장전(季女瓊章傳)〉에서 딸 엽소란을 이렇게 형용했다.

“네 살에 《이소(離騷)》를 암송했는데, 몇 번 읽지 않아도 명확히 이해했다.

……

열 살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초겨울이라 맑은 등불 아래 밤에 앉아 있으니, 난간 밖 대나무에는 바람 소리 쓸쓸하고 발 앞의 달빛은 대낮처럼 밝았다. 내가 말하기를 ‘계수나무 차가우니 맑은 이슬 젖는구나’ 하자, 아이가 즉시 응답하기를 ‘단풍나무 싸늘하니 붉은 잎 어지러이 지네’라고 했다. 그때 그 민첩함에 놀랐으니 설도(薛濤)의 풍모가 있었다.

……

열네 살에 바둑을 두었고, 열여섯 살에 고모에게 거문고를 배워 조금 가르쳐주자 곧 몇 곡조를 통달하니 맑고 차가운 소리가 들을 만했다. 혜강(嵇康)이 말한 ‘빼어난 소리가 드높고 화려하며 찬란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아이는 검은 머리에 흰 이마, 긴 눈썹과 옥 같은 뺨,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단정한 코와 예쁜 보조개를 가졌으며, 맑은 눈동자는 선하게 빛나니 그 아름다움이 대단했다. 요염한 자태나 연분의 기운이 없었다. 매화에 비하면 매화가 너무 여윈 듯하고, 해당화에 비하면 해당화가 덜 맑은 듯했다. 그러므로 풍성하고 아름답다 이름 붙였으나 실상은 일품의 운치가 바람처럼 살아 있었다.”

‘어려서부터 기이하게 총명했던’ 엽소란의 시사 창작은 우아하고 빼어남과 그윽한 원망, 세속을 벗어난 기운이 공존한다. 그녀의 시사는 맑고 기이하며 깨끗하고 고요하며, 그윽하게 속세를 벗어나 조금의 아첨하는 태도도 없다. 세상을 깊이 겪지 않은 그녀의 마음속에는 신비로운 색채의 서늘함과 환상적인 노을이 엉겨 있었다.

“봄이 오니 오히려 눈인가 의심스러운데,
점점 봄을 배웅하며 돌아가네.
어찌 요대(瑤台) 아래에서,
옥 꽃이 달과 함께 날아오르는 것만 같으랴.”
春來卻疑雪,點點送春歸
豈若瑤台下,瓊葩伴月飛
(〈양화(楊花)〉)

“몇 번이나 하늘을 부르고자 하나 하늘은 멀기만 하네.
산수가 이 생애와 멀어짐을 스스로 아노라.
누가 생성을 노을과 같게 했는가.
손꼽아 헤아리니 세월에 놀라고,
흐르는 세월 한가로이 가니 번화함이 싫구나.
어느 때나 학을 타고 선가(仙家)에 이를꼬.”
幾欲呼天天更賒
自知山水此生遐
誰教生性是煙霞
屈指數來驚歲月
流光閑去厭繁華
何時驂鶴到仙家
(〈환계사·서회〉)

“선녀의 자태 우뚝 서니 유달리 새롭고,
안개에 기대 말없이 반쯤 찡그렸네.
얼어붙은 구름과 찬 달이 서로 아는 듯하니,
눈 속에 봄이 없건만 오히려 봄을 한하네.”
仙質亭亭分外新
欹煙不語半含顰
凍雲寒月如相識
雪裏無春卻恨春
(〈매화십수〉)

“물결 위 걷는 듯 움직임 없으니 봄 추위 겁내고,
오랫동안 바라보니 패옥이 흔들리는 듯하네.
다만 광한궁으로 날아 돌아갈까 두려워,
자세히 보지 못할까 오히려 근심하네.”
淩波不動怯春寒
覷久還如佩欲珊
只恐飛歸廣寒去
卻愁不得細相看
(〈우제미인유조(又題美人遺照)〉)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 재녀(才女)와 그 작품의 수는 전대를 훨씬 능가했다. 왕양명 심학(心學)의 영향으로 이지(李贄)는 ‘동심설(童心說)’을 제창했고, 서위(徐渭)의 ‘본색론(本色論)’, 탕현조의 ‘지정론(至情論)’, 원굉도(袁宏道)의 ‘성령설(性靈說)’이 뒤를 이었다. 풍몽룡(馮夢龍)은 ‘정교(情敎)’로 ‘예교(禮敎)’에 대항했다.

명말 문학에서 ‘정(情)’에 대한 중시는 점차 ‘이(理)’의 울타리를 돌파했으며, 문학은 인간 내면의 자아에 대한 진실한 표현에 집중하고 개성의 해방을 강렬하게 추구했다. 이로 인해 당시(唐詩)에서 보이던 인생과 우주에 대한 탐구와 사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여성 문학은 내면 감정의 섬세한 표현에 더욱 치우쳤으며, 이러한 내면 세계의 민감함과 환상은 자칫 유원(幽怨 그윽한 원망)의 늪에 빠져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들었다.

엽소란은 여성 작가 중 으뜸이었으며, 그녀의 총명함은 지극히 민감한 마음으로 주변 환경의 아주 작고 묘한 변화를 포착해 냈으나 정작 그로부터 해탈하기는 어려웠다. 이는 문화가 단순히 글자 표면의 뜻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구 뒤에는 창작자의 사상 경지 등 함축된 의미가 실려 있으며, 독자가 이를 읽을 때 그 정보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와 머물게 된다.

그러므로 인류 사회의 도덕 수준이 높았던 시기에는 사람의 사상 경지가 상대적으로 더 순정했기에 남겨진 문화유산도 순정하고 사악함이 없었다. 그러나 인류 사회가 발전하고 도덕 수준이 하락함에 따라 사람들의 심경과 사상도 점차 먼지에 가려졌고, 각종 신학문도 점차 전통 가치에서 벗어났으며 문학 작품 역시 그러했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는 감별하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순수하고 깨끗하며 사악함이 없는 전통 경전을 많이 읽는다면, 내면의 천진함과 순정함을 유지하고 오염되거나 먼지가 쌓이는 것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