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신전한자(神傳漢字)의 이해: ‘비익(比翼)’의 ‘비’에서 ‘혼인’을 말하다

소우(小宇)

【정견망】

천백 년 동안 사람들은 ‘비익조(比翼鳥)’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혼인을 연상해 왔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在天願作比翼鳥,在地願為連理枝)” (백거이 《장한가》),

“하늘에서 비익조로 맺어지기를 기약하니,
인간 세상의 연리지 즐거움은 부럽지 않네

(結成比翼天上期,不羨連枝世間樂)” (해진 《원가행》)라는 시구처럼 말이다.

비익조는 두 마리의 새가 결합한 것으로, 저마다 날개 하나와 눈 하나만 가지고 있어 반드시 두 마리가 서로 협력해야만 비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나란히 하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不比不飛)’, 즉 ‘비익쌍비(比翼雙飛)’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새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헤어지지 않으며, 운명을 통찰하고 심지어 죽은 후 다시 부활하더라도 반드시 함께한다고 한다 (《낭환기(琅嬛記)》).

《박물지·이조(博物志·異鳥)》에서는 “보면 길하고 상서로우며, 이를 타면 천 년 수명을 누린다(見則吉良,乘之壽千歲).”라고 했다.

사실 ‘비익’이라는 묘사는 비단 부부 사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대(晉代) 갈홍(葛洪)의 《포박자·교제(交際)》에는 “머무를 때는 도를 강론하고 덕을 나아가게 하며, 나아갈 때는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날개를 나란히 한다(其處也則講道進德,其出也則齊心比翼).”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친구 사이에 집에 있을 때는 서로 절차탁마하며 함께 승화하고, 밖에 나갔을 때는 동심동덕(同心同德)하여 서로 협력해 공업(功業)을 완수함을 말한다. 여기서 쓰인 ‘비익’의 의미야말로 어쩌면 ‘비(比)’ 자의 본래 함의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현대인들이 ‘비(比)’라는 글자를 생각하면, 대개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우수함과 열등함을 가리는 ‘비교(比較)’를 떠올릴 것이다. 그 이해는 ‘경쟁’이나 ‘다툼’의 의미로 많이 치우쳐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다. 스스로 남보다 못하다고 느끼면 질투, 부러움, 근심, 자격지심 등의 정서가 쉽게 생기고, 남보다 낫다고 느끼면 환희심, 자만, 자아도취, 과시욕 등의 정서가 쉽게 일어난다. 이러한 비교와 경쟁 심리는 현대인들에게 이미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기에, 종종 무의식중에 매몰되어 이지(理智)를 잃고 평온하고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공산주의의 절대 평균이라는 극단적인 사상은 이러한 심리가 부면(負面)적인 정서로 전환되도록 더욱 부채질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비(比)’ 자에 대한 설명은 “두 사람이 종(从)이 되고, 종을 뒤집으면 비(比)가 된다(二人為从,反從為比).”라고 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뒤를 따르는 것은 ‘종(从)’이고, 이를 뒤집으면 ‘비(比)’가 되니, 곧 나란히 서서 긴밀히 밀착함을 뜻한다. ‘비익쌍비’나 “세상에 지기(知己)만 있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네(海內存知己,天涯若比鄰)” (왕발 《송두소부지임촉주》)에서 ‘비’가 바로 이러한 뜻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도대체 왜 나란히 서고 긴밀히 밀착해야 하는가? ‘비익’이 전달하는 뜻이 바로 그러하다. 힘을 합쳐 제고하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이다.

나란히 서서 밀착한다는 뜻은 “저 물건을 이 물건에 견주는 것이다(以彼物比此物也)” (주희 《시집전(詩集傳)》)라는 뜻으로 파생되어, 우리가 자주 말하는 ‘비유(比喩)’, ‘비교(比較)’가 바로 이 뜻이 된다. 여기서 왜 ‘비(比)’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인생을 비유할 때 “인생은 흰망아지가 문틈을 지나가는 것 같다(人生如白駒過隙)”, “인생은 꿈과 같다(人生如夢)”, “인생은 연극과 같다(人生如戲)” 등이 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인생이라는 개념의 서로 다른 각도를 드러내어 생동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또한 ‘장심비심(將心比心, 마음을 가져다 마음속에 견줘본다)’과 ‘비상부족, 비하유여(比上不足, 比下有余, 위를 보면 부족하나 아래를 보면 여유가 있다)’를 말할 때, 하나는 ‘견주어(比)’ 보아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할 줄 알게 됨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견주어’ 보아야 비로소 자신의 수준과 부족함을 알 수 있음을 말한다.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여기서 ‘비’의 함의는 명백하고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즉, ‘비(比)’ 자에는 사람과 사람이 왜 인연을 맺고 왜 함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내함이 담겨 있다. 생명의 최초 근원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더 높은 층차의 공간이며, 우리는 통상 이를 ‘천국’이나 ‘신(神)의 세계’라고 부른다. 즉 인간은 모두 신이 전생(轉生)한 존재라는 뜻이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은, 둘이 함께 있으면서 서로 일깨우고 협력하여 함께 승화하고 내세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속세에 매몰되어 영문도 모른 채 업(業)을 짓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를 혼인으로 구체화해 말하자면, 부부의 인연으로 남녀가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은 옛말에 “열 개의 절을 헐지언정 한 번의 혼인을 깨뜨리지 말라”고 했을 만큼 매우 중대한 일이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시경·소아·사간(詩經·小雅·斯干)》에서는 “동뢰례와 합근례를 치름으로써 혼인을 맺는다(同牢合卺,以為姻也).”라고 했다. 이 ‘동뢰합근(同牢合卺)’이야말로 혼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중 ‘동뢰례(同牢禮)’는 표면적으로 신랑 신부가 함께 고기를 먹는 것이며, 이 ‘뢰(牢)’ 자는 가축의 고기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예절의 함의를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동뢰(同牢)’란 바로 ‘같은 감옥(牢房)’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좋게 들리지 않을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 세상의 속세는 잠시 머무는 감옥과 같으니, 너와 내가 부부의 인연으로 이곳에 함께 들어왔으니 서로 도와 하루빨리 벗어나 자신들의 진정한 근원으로 돌아가야 함을 뜻한다. 어떻게 서로 돕는가? 부부가 일체가 되어 동심동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합근례(合卺禮, 표주박 잔을 합치는 예)’의 뜻이며 ‘비익’의 이해와 서로 통한다. 옛사람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이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혼인 속에는 대대손손 동고동락하는 인연이 포함되어 있고, 마음을 모아 덕을 닦고 제고하여 올라가겠다는 공동의 뜻(共同志向)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인들의 이해와는 완전히 다르다.

역사 속에서 진목공(秦穆公)의 딸 농옥(弄玉)과 그의 남편 소사(簫史)는 혼인의 내함을 연출하여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감동을 주었다. 농옥은 생(笙)을 불고 소사는 소(簫)를 불었는데, 부부가 된 후 소사는 농옥에게 소를 부는 법을 가르쳐 봉황의 울음소리를 배우게 했다.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자 그 음악 소리가 금룡(金龍)과 채봉(彩鳳)을 불러들였고, 후에 은거하여 수행한 끝에 마침내 이 부부는 쌍쌍이 용과 봉황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신선이 되어 올라가 한 자락 아름다운 전설을 남겼다. 이 부부는 사실 음악이라는 형식을 통해 서로의 심경을 절차탁마하고 제고하며 수련의 길을 함께 잘 걸어간 모범이다.

신전문화 하에서 모든 글자, 모든 역사 이야기, 모든 구체적인 예절의 이면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며, 결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멋대로 하거나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모두 서로 다른 각도와 방식으로 사람을 선(善)으로 인도하고 덕(德)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며, 이래야만 비로소 지혜를 얻어 자신의 진정한 내원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