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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와 금

문화 (文華)

[정견망2004/01/14] 우리는 역사상에서 개인 수련 과정에서 낡은 세력이 많은 시험을 배치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배치는 확실히 수련자가 마지막에 원만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큰 물결 속에서 모래를 가려내는 것처럼 이와 같은 시험의 효과를 보았다. 만약 모래라면 반드시 물에 씻겨 나갈 것이다. 이런 시험의 기회를 하늘의 신은 단지 한번만 주는 것이다. 일단 잘 못 생각하거나 선택하면 영원히 고칠 기회를 잃을 것이다. 주원신이 삼계에 들어오면 마치 똥통에 빠진 것처럼 다시는 돌아갈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련은 이전의 수련과 완전히 달리 모래와 금으로 비유한다면 사부님의 눈에 우리 수련생 모두는 금인 것이다. 낡은 우주가 해체하는 이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인간 세상에 온 목적은 이 순간에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며 낡은 우주의 모든 중생을 선화하고 동화하여 새로운 우주로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의 본원에서부터 우리를 개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비록 우리가 지금은 모래이고 우리가 썩은 사과라고 할지라도 사부님은 우리를 원래의, 제일 높고 제일 본원적인 위치로 돌아가게 할 수있다.

비록 낡은 세력의 간섭과 파괴가 있었지만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는 줄곧 매 한 대법제자, 세상의 매 한 사람, 우주중의 매 한 생명에게 한번 또 한번의 기회를 주면서 우리가 최종 정확한 답안지를 내도록 기다리신다. 수련이 높은 단계에 이르면 바로 “선택”이다. 사부님은 어쨌든 우리를 제도하시려고 한다. 부처의 베푸는 은덕은 넓고도 넓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의 언어로 묘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중에 자신이 자신을 포기 하는 행위와 자신에 대하여 신심을 잃은 사람들은 근본으로부터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수련해 나가고 끝까지 수련을 한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원만인 것이다. 자신에 대하여 신심이 없다는 것은 바로 사부님에 대하여 신심이 없다는 것이고 법에 대하여 견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만약 우리 자신이 금으로 되려는 마음이 없고 금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모래처럼 도태되어 버릴 수도 있다. 속인의 말로 하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탓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은혜가 호탕한데도 불구하고 의연히 모래를 선택하였다면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

법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깨달은 것인데, 잘못된 곳이 있으면 고쳐주시기 바란다.

발표시간: 2004년 1월 6일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4/1/6/25232.html
문장분류: 정법수련>수련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