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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학습, 수련의 관계를 바로 잡자

글 / 독일대법제자

[정견망] 오늘 나는 여러분들과 내가 학습과 수련의 관계를 잘 처리한 문제에 대하여 교류하고자 한다.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을 읽고 나서 나는 정법시기 매 한가지 일은 모두 작은 일이 아니며, 개인수련은 개인의 문제가 아닐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길을 올바르게 걷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잘하는 전제(前提)이며, 또한 우리가 미래에 남겨놓을 한갈래 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수련한지 얼마 안되어 개인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갖거나 혹은 전업을 바꾸려고 하였다. 바로 이때 탄압이 시작되었다. 그당시 나는 대법서적 번역팀에 참가하였고 점차적으로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한단락 시간에 전문적으로 번역일을 하려고 하였다.

그당시 법공부가 깊지 못하여 최대한 속인의 이치에 부합됨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는 오직 이 많은 책을 번역해야 하고 독일동수들이 책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으며 내가 학교에 다닌다면 많은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행히 책을 번역하는 것 역시 법공부하는 과정이 었으며 조금씩 나는 하나의 도리를 알게 되었는바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서 내가 어떤 방법이 좋다고 여기면 어떤 방법이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때 나의 자아는 미혹되어 학교에 다니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어찌 대법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이었다. 예를 들면 법공부를 하여 점차적으로 개인관념이 적어짐에 따라 나는 나자신의 생각이 어떻하든지 막론하고 법에 씌어진대로 속인 중의 일을 잘 해야 한다면 나는 마땅히 학교에 다니거나 일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아울러 후에 학교 다니는 과정 중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근본 대법일에 영향주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반대로 대법일 또한 학습에 영향 주지 않았다.

어느 한 학기의 중간에 나는 독일사이트의 번역일에 착수하기 시작하였고 일의 양은 갑자기 아주 많아졌다. 그리고 일이 복잡하였다. 나는 그당시 다만 사부님께서 법공부와 수련은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만 생각이 났다. 하여 나는 이로 인하여 학과를 감소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본래 내가 배우는 과는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과 비교하여 학습량이 아주 많았고 지금은 더욱 바빠졌다. 통학시간이 3시간 이었으며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를 하고 때로는 차안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법공부를 소흘히 하지 않았다.

그 학기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이탈리어이었고 나는 0점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타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 기초가 있었을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두 백인이므로 서방언어를 배우는 것은 나보다 쉬웠다. 선생님은 수업을 아주 빨리 하였고 나는 아주 힘들게 여겨졌다. 그러나 포기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일체 여가시간을 다잡아 있는 힘을 다하여 배워냈다.

시험 기간에는 또 대법사이트의 번역이 가장 어려운 시기다. 번역하는 아주 많은 수련생들이 학생이기 때문에 모두들 시험을 치르므로 번역인원이 감소되었으며 나는 되도록 일부를 보충하려고 노력 하였다. 이탈리아어 시험치를 때는 몇일동안 계속 잠을 아주 적게 잤으므로 시험보러 갈때 나는 기차에서 아주 졸렸지만 문제집을 복습하려고노력하였으며 대부분은 처음 본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마음은 아주 평온하였으며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엔 아예 결과를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였으니 끝까지 최후의 힘을 다하자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저 생각 없이 뒤져서 보았고 겨우 30%정도 보고나니 시간이 없었다.

시험장에 앉아 시험지를 받아본후 나의 마음은 정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내가 기차에 앉아서 보았던 문제가 대부분 모두 시험지에 출제되었으며 내가 복습하지 않은 것은 시험에 출제되지 않았다. 또한 내가 기차에서 졸음 중에 본 것이 모두 똑똑히 머리 속에 있었다. 이번 시험은 3분의 1되는 사람들이 치렀고 나도 그 속의 한사람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시험지에 “아주 큰 진보가 있다.”며 몇개의 감탄부호까지 적었다.
이 때 나의 첫번째 느낌은 다행이었고 두번째는 부끄러움이었다. 후에 생각해보니 사실 또한 다행스러울 것도 없었는바 나는 정말이지 최대의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의 용량이 그렇게 크게 닦지 못함으로서 일부 일들에서 여전히 잘하지 못하였으며 복습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학업을 아주 중요한 위치에 놓게 되었다. 비록 아주 곤난한 정황 하에서도 나는 대법일을 구실로 학업을 소흘히 하지 않았다.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나의 아주 부족한 곳을 보았기 때문이며 아주 많은 곳에서 여전히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음이었다. 그러나 또 사부님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학기에는 이탈리아어 성적이 일반적인 것을 제외하고 나의 기타 과목의 성적은 모두 좋았다. 아울러 나는 시험을 많이 치렀다. 그 후부터 그 곳의 중국학생들은 모두 나를 총명하고 또 부지런하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내가 학교에서 진상을 알림에 있어서 아주 큰 편리한 조건이 되었다. 이 학기에 나 또한 평소와 다름없이 대법일을 적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전에 학습이 대법일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나의 지혜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의 일면으로 일을 하였고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중하게 보았으며 법의 힘을 아주 믿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사부님과 법의 힘은 끝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해주시는바 관건은 우리의 이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내가 학과를 감소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였을 때 나는 대법은 원용하며 수련과 학습은 서로 영향주지 않는다고 믿었다. 만약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하였다면 이 도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지난 학기에 논문을 쓴 일 또한 나에게 아주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괴테의 비교적 이해하기 힘든 소설을 읽어야 했고 또한 15 페이지나 되는 논문을 써야 했다. 예전처럼 나는 아주 많은 대법일을 해야 했고 매일 시간을 내어 논문을 써야 했다. 어떤 때는 심지어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괴테의 소설을 읽을때 나는 그것이 아주 쉽다고 여겨졌다. 또한 수련 이전에는 괴테의 문장이 너무 어려워 보기만 하면 머리가 아팠었다. 이렇게 비록 책을 본 시간이 적었지만 이전에 몇배의 시간을 들여서 보아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을 오히려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논문 제출하기 2주 전, 나는 미처 제목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나는 다소 조급했지만 한번 또 한번 실천 속에서 깨닫게 된 사부님의 말씀들이 생각이 났다.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가서 하면 모든 것이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계획에 따라 매일 시간을 내어 논문을 썼고 참고서를 보았다. 남은시간에 나는 예 전처럼 법공부를 하였고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였다. 마음이 조용해 진 후 어떻게 써야 한다는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나에게 일종의 느낌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그들 본신이 그곳에 있은 듯 하였다. 내가 올바르게 하였을 때 사부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도록 허락 하신듯 하였다. 내가 논문을 제출하는 그날 아침에 비로소 그것을 수정하고 타자해 냈다. 시간이 아주 다급하였지만 나의 내심은 침착하고 안정되었다. 이 또한 선생님의 평점 역시 아주 좋았다.

이 좋은 점수와 내가 수련을 하지 않을 때의 좋았던 점수는의미가 달랐는데, 수련 전에는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었고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이 좋은 점수는 포기함으로서 얻어낸 것이고 포기한 것은 나의 자아와 사람의 관념이었다. 아울러 내가 얻은 것은 단지 하나의 좋은 점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얻은 것은 자신을 바로 닦는 과정이었으며 대법의 힘을 견증하는 기회였다. 일종의 자비하고 또한 관용의 힘이 이 일체로 하여금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사부님께서 재삼 강조하신” 자신의 길을 올바르게 걷다” 는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대법제자는 생활 속에서 시시각각 모두 올바르게 걸어야 하며 이것은 우리의 수련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이는 또 우리가 정법시기에 걸은 길이 후세사람들에게 남겨주는 것에 관계된다고 이해한다. 이후의 사람은 바로 이러한 일이 있고 학습이 있는 환경 속에서 수련할 것이며 그렇다면 이 관계를 어떻게 바로 잡는가는 후세사람들이 수련함에 있어서 참조해야 할 일부분이다. 만약 우리가 잘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후세사람들에게 남겨준 길은 바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길을 올바르게 걸음으로서 세인에 대한 자비를 체현한다. 우리의 길을 올바르게 걸음은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어깨에 짊어진 역사적 책임이다.

2003-12-1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3/12/10/248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