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2003년 11월 5일]
사존께서는 <<2002년 보스턴 법회서의 설법>>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대법제자가 그 무슨 일을 할 때, 모두 법을 가장 크게 보아야 하며 그 어떠한 일을 처리할 때에도 당신은 모두 우선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 여러분이 기억하다시피, 나는 늘 당신들에게 한마디하는데, 대법제자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모두 우선적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매번 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일종의 정황이 나타날 때 설사 하나의 작은 일 일지라도 나의 첫 일념(一念)은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이미 자연스러운 것으로 형성되였기 때문이며 나는 곧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동수지간에 서로 교류할 때에는, 모두다 실재적이어야하며, 우리는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가서해야하고, 무사무아의 경지에 도달하여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완전하에 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주위에서 발생한 몇가지 일은 나에게 매우 큰 진동을 가져다 주었기에, 여러분들에게 말해보고자 한다.
어느 하루, 우리 몇은 동수 A의 모학교 기숙사에서 단체 법공부를 하기로 약속하여, 우리는 저녘 6시에 그의 기숙사에 갔다. 우리가 그의 기숙사에서 법공부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기숙사 저녁시간이라, 나는 저녁을 먹고 와서 함께 법공부를 할테니, 먼저 공부하세요.” 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그의 이런 행동거지를 보고 마음이 쓰렸다. 나는 “다른 동수들은 외지에서 아침 일찍 이 곳에 왔고, 하루종일 바삐 지내다 보니, 지금까지 한끼도 못먹었는데, 그는 우리가 식사를 했는지 한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혼자 밥을 먹으러 가다니”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있던 빵을 몇개 꺼내어 이 동수에게 주었는데, 그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으니 지금은 먹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좀 지나서 동수 A가 돌아왔는데 그는 아무말 없이 우리와 함께 법공부를 하였다.
나는 예전에, 회사에 출근할 때에 정심시간에 누가 찾아오면, 식당에 가서 밥을 더 떠가지고 와서는, 손님들과 함게 먹었고 부족하면, 밖에 나가 더 사가지고 오곤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 동수 A는 저녁시간이 되자 혼자 밥을 먹으러 가고, 다른 동수는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아예 물어 보지도 않으니, 밥을 가지고 와서 동수들과 나누어 먹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다른 한 가지 일은, 전번에 있었던 대형 단체 법공부를 하던 중 점심 휴식시간에, 많은 동수들은 자기가 가지고 온 음식을 먹었는데, 나도 내가 가지고 온 작은 과자들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내옆에 있는 한 동수가 푸른 콩을 넣은 볶음밥을 먹는것을 보았는데, 그의 그 도시락은 매우 작고 정교하여, 나는 그의 도시락이 아주 사용가치 있고 재미있게 했다고 하였다. 내가 한 바퀴 돌아보고 오니, 그의 도시락은 큰 것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이상해서 이 도시락이 아까 먹던 것인가를 물어보았더니, 그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당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옆에 있던 동수 B는, 아침 일찍 그 지역의 동수들을 차에 싣고 오느라, 밥을 먹지 못했으며, 아까 내가 준 2개의 작은 빵으로는 근본적으로 배를 채울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참을 수 없어서, 밥을 먹고 있는 동수에게, 옆에 있는 동수 B는 아직 밥을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도리어 오늘 아침 바빠서, 볶은 것이 평소 먹던 소식이라, 다른 분들과 나누어 먹지 않은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사실 나누어 먹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에 동수가 있는가 없는가, 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하는 것이다. 즉, 마음속으로 먼저 동수가 밥을 먹었는가를 생각한 다음에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의 밥을 동수에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이것이야 말로 중요한 것이다.
두가지 사건을 통하여, 나는 사를 똑똑히 보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나도 저렇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니 나 자신도 그랬다.
동수들과 교류할 적에, 입만 열면 “내가 보기에는”, “내가 느끼기로는” , “내 생각에는 어떻게 하였으면…”하는 말이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마직막까지 동수의 의견을 들어 본 적이 매우 적었으며, 그들이 사람이 관념을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만 보고, 더욱 더 그들의 입장에 서서 묵묵히 보충과 원용을 했다고 말할 수 없었으며, 정체의 입장에 서서 더욱 좋게 법을 실증하는 각도로 문제를 보지 못했다. 체현한 것은 모두 나 자신 뿐이었다.
전화를 걸거나 동수들과 연계할 때도 그랬는데, 직접 동수들에게 이 일을 이렇게 이렇게 해야한다거나, 내일 어느때 차를 가지고 오라거나, 우리 함게 일을 하러 가자라고 하는 식이었다. 동수의 시간과 그들 자신의 배치는 매우 적게 생각하였으며, 매번마다 나 자신이 지배인마냥 명령을 내리고 일을 했는데, 표면으로 볼 때에는 자기 구역의 일을 더 잘 하려고 한 것 같지만, 실질상으로는 개인이 법을 실증하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었다. 어떻게 수련을 하던, 연공을 하던, 더욱 더 잘 하자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다 나 자신의 틀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 자신과 주위에 발생한 일들을 보게 되면, 내가 오늘 이렇게 진귀한 우주의 근본 대법을 얻었다고 생각할 때면,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묵묵히 감당하신 것과 부처의 가없은 은혜를 생각할 때면, 이 몇해 사부님께서 각지 법회에서 한 번 또 한 번 우리들에게 설법과 해법을 하신 것을 생각할때면, 모두 우리들 마음 속에 맫힌 의문과 장애를 깨끗이 씻어내기 위한 것이었으며,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잘하겠끔 고무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통곡하고 싶었는데, 나는 내가 너무나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어떤 때에는 알고도 잘못을 범하였는데, 근본적으로 대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 나는 줄곧 법을 배웠으면서도 도리어 전심전력으로 법에 동화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사존의 말씀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속에서는 도리어 자신이 법에 대해 이해한 것에 의거하여 일을 하는가? 왜 법공부할때는 심태가 좋지만 문만 나서면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가? 왜 한편으로는 대법에 머무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이익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이렇게 방방면면에서 모두 하나의 사를 체현하고 있다.
만약 우리 대법제자들이 모두 다 사부님을 존경하고 법을 중요시하며, 사부님의 말씀을 경청하고자한다면,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해야 하며, 진정으로 법의 표준으로 엄격하게 자기를 요구해야 한다. 그랬다면 이번 박해는 이렇듯 긴 시간을 끌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현한 일체 문제는 다 우리의 마음에 의해 조성한 것이다. 만약 강대한 사가 없었다면 낡은 세력의 이번 박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아는 하나의 강대한 장애이며, 우리가 전진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사적인 것을 철저히 제거하는 것은, 낡은 우주의 이치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며, 새로운 우주의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시면서 자비로 우리들을 제도하시는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진정으로 법의 표준에 부합되게 엄격히 자기를 요구하여야만, 미래 대궁의 순정하고 불파한 일체를 이룩할 수 있다.
발표시간 : 2003년 11월 5일 수요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수련체오
원문위치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11/5/2437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