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니(薇妮)
[정견망]
(1)
2001년 12월 29일, 미국 플로리다법회가 끝나는 날 저녁, 나는 수련생들이 단체로 빌린 버스에 앉아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 오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자 버스 안은 추워졌는데 앞 좌석 등받이에 검은 색 코트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코트가 틀림없이 앞 좌석에 앉은 동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위를 막기 위해 빌려 입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코트를 입은 채 자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모두들 코트를 입고 있어 누구의 코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추워서 일체를 불문하고 “당연한 듯”이 그 코트를 입었다. 나는 “그 코트의 주인이 추우면 꼭 나를 깨우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코트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코트를 벗어 원래 위치에 가져다 걸었다. 그때서야 한 서양인 수련생(갑)이 나에게 “웨이니, 미안하지만 그 코트를 좀 건네 줄 수 없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굳어 버렸다. 내가 한밤 중에 깨었을 때, 옆좌석 오른 편에 그 서양인 수련생이 얇은 하얀색 셔츠만 입고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나는 “버스 안에 있는 수련생들은 모두 코트를 입고서야 추위에 견딜 수 있는데 이 분은 홑옷을 입고도 잠들 수 있다니.”하고 생각했었다. 나는 난처하여 “미안해요, 저는 코트의 주인이 오면 꼭 나를 깨우고 옷을 찾아 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왜 저를 깨우지 않았나요?”라고 말했다. 그는 조금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이 “괜찮아요, 코트가 거기 걸려 있은 건 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가요? (That”s what it is for, isn”t it?)”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내가 법을 얻고 처음 법회에 참가했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언제면 갑 수련생처럼 그렇게 선량하게 수련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 될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 수련생처럼 내가 추운 상황에서 자신의 유일한 코트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여태껏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은 도와준 뒤 항상 나에 대한 그들의 은혜를 “일깨워” 주곤 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이러한 “시장적인 은혜”(뜻인 즉, 이런 은혜는 대가를 요구하는 도움이라는 것)에 줄곧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갑 수련생의 선량함은 너무 자연스러워 조금도 나에게 그러한, “시장적인 은혜”와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2)
2002년 2월 1일, 뉴욕 법회기간에 수련생들은 중문과 영문으로 “진선인”을 새긴 노란색 목도리를 팔고 있었다. 법회에 참가한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그 노란 목도리를 사고 싶었지만 누가 어디서 팔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월도프호텔 맞은 편에서 발정념하다 의외로 노란 목수건이 들어있는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박스를 책임지고 있는 수련생은 박스의 노란 목도리는 기자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은 간곡하게 부탁하여 각각 하나씩 살 수 있었다.
후에 나는 월도프호텔 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다가 한 기자를 만났는데 그 기자는 나에게 남은 목도리가 없는지 물어 보는 것이었다(그 기자는 목도리를 두르지 않은채 목을 움추리고 있었는데 매우 추워보였다). 나는 내 목도리를 벗어 그에게 주려하다가 그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사려 해도 사지 못하는 목도리임을 생각하고는 너무 아까워서 결국 주지 못했다. 사실 법의 표준으로 보아도 나는 마땅히 그에게 줘야 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표정으로부터 미루어 보아 그는 단지 추위를 막기 위해서이고 아마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변명했다.
나는 “진선인”이 새겨진 목수건을 따뜻하게 두르고 있었지만 마음은 바깥 2월의 날씨보다 더 차가웠다.
(3)
2003년 6월 22일, 미국 중부법회 때, 나는 또 다시 서양인 수련생 갑을 만날 수 있었다. 갑 수련생은 그 법회에서 자원봉사자로 법회의 보안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갑 수련생이 책임진 곳은 주(主)회의장의 입구여서 강단과 제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서 사부님과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회의장의 생중계방송을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과도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출입구와 제일 가까워 대문이 자주 열리고 닫히면서 들려오는 바깥의 떠드는 소리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게다가 그는 법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서있어야 했다. 법회에서 자원봉사하는 수련생들 가운데는 자원봉사의 기회를 이용하여 사부님을 가까이 하려는 생각을 가진 수련생들도 적지 않지만 갑 수련생은 제일 “좋은 점이 없는 곳”을 책임진 것이다.
나는 법회가 진행되는 사이에 갑 수련생이 책임진 입구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얼굴에 편안한 미소를 띠고 여유있는 표정으로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이런 그를 보자 나의 머리 속에는 즉시 “이익과 욕망 중에는 내가 없으며, 백년 후에는 유독 나로다(利慾中無我, 百年後獨我)”라는 <<홍음 각자>>라는 시가 떠올랐다.
(4)
2003년 4월 20일, 뉴욕 법회에서는 주 회의장의 좌석이 부족했다. 현지의 책임자 수련생은 자신을 희생하여 주 회의장에 별도로 달린 홀에 가 줄 사람이 없는지 물어 보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이전 법회 때는 항상 앞 좌석에 앉지 못해 사부님을 잘 뵙지 못했고, 이번 법회에서 어쩌다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 거기 갈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2003년 7월 20일, 워싱턴 법회 전날 저녁, 나는 나와 다른 몇 사람들의 법회 티켓을 샀는데 그 중 한 장만이 주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었다. 그 때 한 수련생이 나에게 주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요구해 왔지만 나에게 단번에 거절당했다. 나는 “끊임 없는 노력”으로 확실히 괜찮은 자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없었다.
매 번 좌석에 앉은 후, 나는 마음 속으로 항상 이것 저것 더 따지면서 더 앞에 가서 앉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했다. 또 말하기 좋아하는 수련생이 있는지 주위를 살폈고 만약 있다면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앞에 빈 좌석이 보이면 같이 온 친구를 버리고 그 자리에 가 앉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더러운 생각을 볼 수 있었지만 다른 수련생들도 똑 같은 집착이 있음을 보고는 그것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 *** *** ***
만약 매 번 법회를 모두 한 차례 경을 얻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부끄럽게도 나 자신은 경을 얻지 못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금부처”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같은 수련생이지만 그 서양인 수련생은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경을 얻으러 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나는 자신의 사욕 때문에 경을 얻으려 했으니 어찌 진정한 경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다행히 아직 짧게나마 남은 시간이 있어 정진하여 집착을 버릴 수 있다. 나는 자신에게 이번 LA 법회부터는 이전처럼 그렇게 이기적이면 안 된다고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며칠전 인터넷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였다.나는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자동적으로 배분한 좌석에 앉으려 했지만 이메일로 보내온 시간표를 받고 화장실과 가까운 제일 마지막 좌석에 앉게 된 것을 알게 되자 왕복 티켓의 좌석을 모두 앞 좌석으로 다시 예약했다.
고친 후, 나는 갑자기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앞 좌석에 앉으면 반드시 뒷좌석에 앉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사실 내가 다시 인터넷으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때, 어떻게 해도 다시 설정한 결과를 저장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좌석의 위치를 다시 설정하고 저장할 때마다 컴퓨터 화면에는 “클릭하여 좌석 위치를 정하세요(Click to make seating arrangement)”라는 창이 떴다. 나는 IT분야를 전공하고 있었기에 컴퓨터에 발생한 실제 문제에 부딪치면 항상 제일 먼저 컴퓨터 지식으로 해석하려고 하면서 자신은 수련생이라는 것을 잊곤 했다. 그 때 나는, 이것은 다른 접속자가 이미 그 좌석을 예약했는데 아직 등록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컴퓨터에 관련된 문제에 부딪치면 우선 자신은 컴퓨터 관련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자신은 수련생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기에 나에 대한 사부님의 점화를 보고도 보지 못한듯 대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방광명 TV 방송국”에서 제작한 아홉개 시리즈로 된 동영상 “우리는 미래에 알린다” 중의 두 번째 시리즈 “대법이 전해지다”의 내용을 떠올렸다. 북경 수련생 장치(張琪)는 우연히 사부님께서 지하철 우커쑹(五棵松)역에서 차에 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사부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르도록 양보하셨다. 차에 오른 후, 차 안에는 빈 좌석이 두 개 있어 빨리 움직이면 거기에 앉을 수 있었다. 장치는 조급해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조용하게, 여유있게 서 계셨다. 얼마 안 되어 빈 좌석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았고 그 차량 안에서 사부님 한 사람만이 서있었다. 장치는 우리와 그렇게 다른 사부님의 행동을 보고 마음 속으로 감동되었으며 바를 “정(正)!” 이 한 글자를 떠올렸다고 한다. 사부님은 그렇듯 정(正)하여 불가사의할 지경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나는 이렇게 연공하여 수련해 온 것이기에 나는 이 것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셨다. 나는 이기적으로 다시 좌석을 예약했는데 전혀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으며 당연히 사부님이 가지고 계시는 “정(正)”도 없었다. 나는 그래도 연공인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너무 부끄럽다! 내가 이렇게 다시 좌석을 예약하는 것은 맞지 않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뒷좌석에 앉는 것이 다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연공인이 어찌 좋은 좌석에 앉기를 바라는가? 나는 이번 LA 법회에서는 절대 좋은 좌석에 앉으려 하고 대법책, 대법 복장을 앞다투어 사며 먼저 무료 기념품을 가지려 하고 먼저 회의장에 들어가려 하며 먼저 호텔방을 예약하려는 등 이기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집문도 나서기 전에 이미 비행기 좌석을 다른 사람과 쟁탈하고 있었다. 이렇게 더러운 생각을 가지고 어찌 사부님을 만날 수 있을까? 어찌 경을 얻으러 갈 수 있을까?
나는 계속 반성하고 있고 계속 법공부를 하고 있으며 계속 자신의 정념을 강화하고 있다. “군자는 암실에서도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君子不欺暗室)”는 말은 한 진정한 군자라면 마땅히 사람들 앞에서나 뒤에서나 마찬가지로 발라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좌석을 정한 것은 알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의 집착을 성실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고 사부님을 속이는 것으로 된다. 고험은 수련인의 마음을 고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의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LA 법회가 눈앞에 다가온 이때, 동수들에게 참고가 되도록 나의 이야기를 써 보았다. 이전의 나의 행위는 역시 수련생들의 집착심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했기에 여기서 동수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최후의 수련의 기연을 아꼈으면 한다.
부당한 곳은 자비로 지적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4년 2월 1일
문장분류: 정법수련>수련체오
영문위치: http://www.pureinsight.org/pi/articles/2004/2/16/2050.html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4/2/1/256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