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대법제자
[정견망] 대륙의 자료점들에서 기술을 아는 동수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당연히 사악이 중점적으로 박해하는 대상으로 되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기술을 아는 동수들은 상당히 보편적으로 각종 교란과 박해를 받고 있다. 나는 감옥과 노교소에 적지 않은 컴퓨터 고수들과 기술을 잘 장악하고 있는 동수들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각 지역의 자료점에는 기술을 아는 동수들이 아주 적어 흔히 동수 한명이 여러 자료점, 여러 지역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기술을 아는 동수들에 대한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타파하는 것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함에 있어서 큰 의의가 있다. 나 자신도 기술적인 일을 하고 있어 이 방면에서 일부 문제, 교란, 박해와 마난에 부딪쳤었다. 잘하다 못하다를 반복해 왔는데 일부 체험을 여러분에게 참고가 되도록 이야기하려고 한다.
전에 컴퓨터를 잘 다루는 한 동수는 나에게, 지금 기술을 아는 동수들은 일반적으로 모두 법공부를 그다지 잘하고 있지 않고 법공부를 잘하고 있는 동수들은 또 기술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말한 것은 모든 상황을 다 포함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의 법공부에 보편적으로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내가 분석하기에 아래와 같은 몇가지 원인 때문인 것 같다.
1. 일반 동수들에 비하여 법공부 시간을 짜내기 힘들다.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의 책임은 비교적 큰데 자료를 다운받고 편집하며 디자인하고 찍어내야 하며 기계를 보호하고 고치며 주문해야는 등등 여러가지 일은 필연적으로 대량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역시 앞에서 말했던 그 동수의 얘기를 하자면, 한 동안 그 동수는 매일 쉴새 없이 여러 자료점을 오갔다. 그의 노력으로 그 지역에는 많은 자료점이 생겼지만 대부분 동수들은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기에 그는 그들을 가르쳐 주는 외에 여러가지 컴퓨터 고장도 해결해야 했다.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컴퓨터, 인쇄기 등 장비의 고장은 분명한 원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동수도 기계가 고장났으니 빨리 오라고 하는 다른 동수들의 부름을 받고 고생스럽게 달려가 보지만 대부분 문제가 없거나 아주 간단한 조작을 잘못했거나 기계를 전혀 다룰 줄 몰라서였다.
이렇게 한 동안 지난 뒤, 그 동수의 상태는 확연히 좋지 않게 되었다. 법공부를 거의 못했고 발정념과 연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하지 않아 대법제자의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게 되었다. 동수들은 교류할 때, 그에게 이는 사악의 교란일 수 있다고 일깨워 주었다. 만약 사악이 그 동수를 박해하려고 한다면 우선은 바빠서 법공부와 발정념 할 시간이 없게 할 것이고 장비들에 분명한 원인이 없는 문제들이 생기게 할 것인데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이후에 그 동수도 이 점을 인식하고 일부 일들은 의식적으로 밀어 버렸다. 이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확실히 능력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법공부를 보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법공부가 따라 오자 그의 상태도 즉시 회복되었다.
2. 사악은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에게 특유한 집착을 겨냥하여 올가미를 만들고 박해함으로써 법공부 시간을 심각하게 할애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은 속인 중에서 전문가에 속하며 기술을 연구하는데 특별히 집착하는 편이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고 기계에 고장이 생겼거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깊이 연구하기 좋아하며 해결된 후에는 기뻐하면서 일종 만족을 느낀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사악이 어떻게 동수들의 이러한 집착을 이용하여 교란함으로써 박해의 목적에 도달하는지 보기로 하자.
내가 아는 한 동수는 정말 괜찮은 젊은이였다. 정념으로 노교소를 벗어났고 집에 돌아 온 후에는 자신의 집에 자료점을 만들어 그 지역과 주변 지역에 자료를 공급했다. 그 젊은 동수는 배우기를 좋아했고 기술을 깊이 연구하기 좋아하여 자료점에 있는 인쇄기를 아주 잘 다루었다.
한 번은, 그 동수의 집에 며칠 묵게 되었는데 나는 한 가지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게 물었다. “왜 자네가 법공부하는 걸 보지 못했는가?” 그 동수는 쑥스러워 하면서 요즘 자신을 좀 느슨히 했다고 말했다. 후에 나는 그가 늘 한 편으로는 일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렇게 하면 보기에는 법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법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일하면서 녹음을 듣는 것은 되는가 되지 않는가?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토론하기로 하자.
그 젊은 동수는 바쁜 와중에 시간을 짜내어 법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일깨워 주곤 했는데 그 때마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긴, 이는 이미 귀에 못박힐 정도로 들어 온 말인 것이다. 수련을 그렇게 오래했고 그렇게 많은 마난을 겪었는데 법공부의 중요성을 모를리 있겠는가? 그러나 그 동수는 확실히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았다. 얼마전에 그 지역에 대규모 수색 체포가 있었는데 경찰 십여명이 그 동수의 집에 뛰어들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
그러면 사악은 어떻게 올가미를 만드는가? 아주 간단하다. “당신은 기술을 깊이 연구하기 좋아하지 않는가? 좋다, 그렇게 하게 하도록 하지.” 사악은 인쇄기가 고장나게 하거나 인쇄 효과가 좋지 않거나 기타 문제가 생기게 하여 뜯었다 다시 맞추고를 반복하게 한다. 나중에 고쳐지는지와는 상관없이 아무튼 반나절이나 하루 종일 시간을 허비하여 법공부를 못하고 발정념을 못하게 하며 최소한 법공부하고 발정념할 때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 고치지 못하면 그래도 괜찮다. 어떻게 해도 고치지 못하면 포기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고쳐지면, 반복적인 연구를 거쳐 고쳐지면 문제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고 기술은 더 제고되어 연구하려는 마음은 기뻐하며 집착을 더 커지게 한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정말 당신이 고친 것이 맞는가? 고장은 사악이 연화한 것이므로 고쳐진 것도 그것들이 연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다른 한 공간에서 당신의 그 연구하려는 마음을 커지게 하는데 갈수록 더 커져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이 커져감을 느끼게 하며 문제에 부딪치기만 하면 자신의 고만큼의 기술로 해결하려고 하면서 사부님과 법을 생각지 못하게 한다. 그것들은 당신이 매 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그러한, 전혀 있지 말아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게 하고 속인 중의 하찮은 기술을 “제고”하게 하며 시간만 나면 계속 만지작 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그런 정력과 시간은 마땅히 법공부와 발정념하는데 써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사악은 한걸음 한걸음 당신의 공간 마당에 스며들어 다른 한 공간을 장악하고 그 공간에서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는 일들을 연화해 낸다. 동수가 배반했다거나, 양회(兩會, 역주: 중국의 두 가지 큰 회의, 즉 “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를 가리킨다)기간에 대규모 수색 체포를 했다거나,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등등이다. 그 정도가 되면 속인 중에서의 안전문제는 정말 문제가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니 명혜망에서 며칠 전 보았던 뉴스가 생각난다. 어느 한 지역에서 열흘 동안에 12개 자료점이 파괴 되었는데 사악의 기염은 정말 놀라웠다. 그 기간에 한 자료점에서는 급히 도시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 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역시 파괴되었다. 동수들은 원인을 찾았는데 우선 찾은 원인은 핸드폰이 감시당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정말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이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밖에서 문제를 찾으니 말이다. 동수들이여, 생각해 보라, 자료점을 옮겼는데도 피하지 못했으니 다른 한 공간의 사악이 얼마나 커졌겠는가! 상황은 어떤 정도로 통제당했는가! 그것은 하루 아침의 일이 아니고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며 장시간 법공부를 홀시했거나 법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아서인 것이다.
3. 장시간 마음을 조용히 하고 중시하여 법공부하지 않는 것은 기점이 틀렸다
돌이켜 이 문제를 토론해 보자. 한 편으로 일하면서 녹음을 들어도 되는가?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내가 재작년 사악에게 붙잡혀 노역을 당하기 전 한 동안 생계 때문에 버스에서 카세트로 설법 녹음을 들으면서 법공부를 대신했던 일이 생각난다. 시간은 낭비하지 않았지만 효과는 어떤가? 후에 갑자기 사악이 들이닥쳐 노교소에 갔는데 사부님이 이야기하신 법에 비춰보면 모든 잘 하지 못한 것은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돌이켜 보면 주요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동수들이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만약 존경하는 사존께서 당신의 곁에서 당신에게 설법하신다 해도 당신은 한 편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 사존의 말씀을 듣겠는가? 초기에는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사존께서는 아마 이러한 상황이 존재함을 허용함으로써 법의 내포를 듣게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어떠한 신분인가? 아직도 초학자들처럼 흐리멍덩하게 법공부를 하면서 법을 존경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법을 존경하지 않는데 법의 내포를 들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렇게 하면 스스로 교란을 초래하는 것으로 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체는 강대한 교란인바 그것은 스스로 요구하고 구한 것이다.
물론 버스에서나 다른 일을 할 때 절대적으로 녹음을 듣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공부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을 조용히 하고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수련은 절대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법공부가 제대로 되었는지 반드시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또 한가지, 임무적으로 법공부를 하는 정황이 있다. 표면으로는 당연히 승인하지 않는데 사실 많은 동수들은 잠재 의식중에 장시간 법공부를 임무적으로 하고 있다. 마음속에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일들인데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은 기술적인 일들을 생각하며 모두들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는바 빨리 법공부를 끝내고 마음 편히 자신이 하기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고장을 고치고 저런 것을 배우려고 하는데 이전에 내가 바로 그랬다.
그 밖에, 법공부를 기술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황도 있다.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머리를 썩이고 있노라면 동수들은 법공부를 해야하지 않겠냐고 일깨워 주는데 그러면 “아, 맞다, 법공부를 해야지.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 했더니.”라고 하면서 법공부를 한다. 법공부를 하면 문제는 정말 해결되는가? 빨리 법공부를 끝내고 다시 시도하는데 만약 정말 해결되면 큰 일이다. 법공부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보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정말 법이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인가? 이것은 아주 엄숙한 문제가 아닌가? 그 기술적인 문제는 정말 법공부하여 해결된 것인가? 아니면 착각을 일으키는 다른 요소가 있어 당신이 갈수록 그 집착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
장시간 집착을 의식하지 못하여 내려 놓지는 더더욱 못하는데 이는 장시간 법공부할 때 사상업력, 각종 교란과 지속적인 싸움을 벌리게 한다. 시간이 오래되면 더 심각해 지며 다른 공간의 각종 사악도 자신에 의해 더더욱 커지고 그것들의 배치에 따라 이것저것 하면서도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보고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매일 몇강의씩 읽고 있어 법공부를 틀어쥐는 것 같고 발정념도 놓지지 않고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하여 다른 공간은 거의 사악에 의해 점령되고 이 공간까지 공략되어 문제가 커진다.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무슨 원인인지 모르는데 사악도 정말 나쁘다. 일이 생겨도 진정한 원인을 모르게 이 공간에서 우연한 현상, 돌발적인 사건, 미행, 추적, 전화, 특무, 배반 등등으로 연화해 내는데 사실 모두 가짜이다. 진정한 원인은 오직 하나뿐인 것으로 바로 법공부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동수들은 일이 생긴 후에 이런 집착 저런 누락을 원인으로 찾기는 찾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급소를 찌르지는 못했다.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이 공간에서 정말 집착이 없다면 계속 이 공간에 있을 수 있겠는가? 계속 수련할 수 있겠는가? 다른 동수들도 그러한 집착이 있을 수 있는데 왜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동수들은 법공부를 제대로 했고 마음을 조용히하고 법공부를 견지한 것이다(형식이나 시간을 얼마나 들였는지와는 상관없이 법에 진정으로 용해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집착은 있지만 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법공부 과정에 갈수록 커지는 주의식이 자신을 지배하게 함으로써 이런 집착 저런 누락이 있다해도 정법 중에서 점차 없애고 있어 점차 약해진다. 이런 정황하에서 사악은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치지 못하는데 어찌 손을 쓸 새 있겠는가?
이런 일은 사실 모두 심각한 교훈에 대한 반성에 속한다. 나는 전에 거의 십년동안 컴퓨터에 관한 일을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온 하루를 다 보내 이미 습관이 된 부분이 많았으므로 전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다. 사실 컴퓨터는 중독될 수 있는 것으로 우리가 컴퓨터 앞에 온 하루 앉아 있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주의식이 똑똑할 때 잘 구분해 보면 그것은 절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당신의 은호신경을 자양하고 자극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하게 하며 당신의 정력과 시간을 소모하면서 자신의 원래의 목적을 잊게 하는데 그것이 그래 집착이 아닌가?
그래도 그것은 교활하여 법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둥,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둥 허울좋게 자신을 덮어 감추게 한다. 구분할 수 있는 제일 간단한 방법은, 컴퓨터로 한시간이면 완성할 수 있는 일인데 컴퓨터 앞에서 반나절 앉아 있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것들이 한 짓이다.
나는 장시간 자료점들을 오가면서 늘 사악에게 기술을 깊이 연구하려는 마음과 컴퓨터에 대한 중독에 가까운 애호 등등을 이용당하곤 했는데(물론 또 명리심, 일을 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여기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교란이 아주 심했다. 구분하기 어려웠으므로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기계가 “고장”나 자료를 찍을 수 없다고 하는데 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서 처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악의 교란은 연구하고 바삐 보내도록 배치하여 정력과 시간을 소모함으로써 법공부를 못하게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그것들이 만족스러워 괴성을 지르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정말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하겠는가? 처음에는 정말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의식하고는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억제해 보았다. 예를 들겠다.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는 동수들과 같이 쓰고 있어 파일이 빈번하고도 많이 저장되었다. 그리하여 컴퓨터는 느리고 문제도 많이 생겨 나는 외지에서 돌아올 때마다 프로그램을 다시 깔고 업데이트 등 작업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작업들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다 하고나면 반나절이 걸리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속인들과 같지 않아 곁에서 눈을 부릅뜨고 우리가 손을 쓰기만을 노리는 사악들이 많다. 매 번 돌아올 때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지만 컴퓨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이 그것들이 배치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좋다, 그러면 나는 컴퓨터를 만지지 않을테야. 내가 해야할 일을 우선 완성하고 법공부도 해야지. 컴퓨터는 지금 쓸수 없는것도 아니니 후에 하면돼.” 사실 그럴때는 깊이 연구하려는 마음,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모두 나와 손이 근질근질할 지경이었는데 다행이 참고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알 수 있는데 매 번 그런 마음을 따라 무슨 일을 할 때면 그것들은 더 커지고 그것들의 힘이 주의식을 초과하게 되면 그것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여기게 된다. 사부님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매 번 그것을 억제할 때마다 그것은 약해지며 갈수록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억제 자체가 아니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무엇이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켜 나에 대해 큰 교란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법공부이며 법을 외우는 것이다.
“문: <<전법륜>>을 한 번씩 읽을 때마다 껍질 한층을 벗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련생들 웃음)
사: 여러분은 웃지 말라. 나는 확실히 이런 위력이 있는 것을 보았다. … …”(미국 서부법회에서의 설법) <<전법륜>>을 한 번 읽으면 껍질 한층 벗길 수 있다는데 한 번 외운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환골탈태한다고 해도 과분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렇다. 속인중에서 기술적인 일을 하고 있어 장악한 지식도 비교적 많지만 입정할 때 교란도 그만큼 더 많은 것 같고 법공부할 때 허튼 생각을 하는 정황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 같다. 게다가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더욱 심각해 지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나 법공부 할 때의 사상업력과 지속적인 싸움을 벌일수는 없지 않는가?
법을 외우는 것은 내가 선택한 “우둔”한 방법인데 실천은 그래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법을 외워보니 몇가지 수확이 있었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을 교란하는 요소(깊이 연구하려는 마음, 컴퓨터에 대한 취미 등등)를 빨리 식별할 수 있어 큰 교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데 다시 말해서 법공부를 교란하지 못하게 했다.
제일 큰 수확은 바로 법공부하는 심태가 변한 것이다. 이전에 법공부가 임무적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조용하고 행복하며 심오하여 끝없는 낙이 있는데 다른 일들이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정말 말로는 형용하기 어렵다.
이런 변화가 있은 후, 나는 매일 제일 좋은 시간을 모두 법공부에 돌려 다른 일들은 법공부 시간을 크게 점하지 못하게 했고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짜내어 보충했다.
많은 일들은 법공부를 깊이 한 후에 보면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같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료점의 기술, 안전 등 문제를 포함하여 말이다.
여기서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과 이런 문제를 토론하려고 한다. 우리가 속인 중에서 십여년 동안 배운 그러한 지식 및 학습방법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물론 그런 지식, 방법, 기술은 오늘의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크나큰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것은 긍정적이다.
또 한가지, 동수들이 생각해 보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속인 중에서 공부하는 과정에 많은 시험과 단련을 거쳐 키워낸 암기 능력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우리가 현재 법을 외우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상 당신은 사부님께 이러한 암기 능력이 있어 장래의 법공부와 법을 외우는데 이용함으로써 더 많은 중생들이 새로운 우주에 구도되어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원인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이런 능력을 이렇게 그냥 둔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다른 한 방면으로부터 말하면 당년에 우리는 시험 점수와 속인중의 가련한 명리를 위해서도 이것저것 다 외웠는데 대법을 앞에 둔 지금은… …
다시 한번 동수들을 일깨워 주는데 절대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하며 이런 두가지 문제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첫째, 매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둘째,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결하고 언제 해결할 것인지?
이 두가지 문제는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현재 나는 법을 외우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동수들에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제출하여 공유할 수 있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를 일깨워 주었던 한 동수의 말을 빌어 기술적인 일을 하는 동수들에게 드린다. “우리는 수련하러 온 것이지 기술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다.”
주: 이 글을 쓴 목적은 법공부를 전념해서 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교류하려는 것이지 기술을 배우지 말고 안전에 중시를 돌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사실 법공부를 잘하면 자연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일에서 기술의 중요성과 어떻게 하면 기술을 잘 배우고 잘 장악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이지적으로 안전 조치를 취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합당하지 않은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4년 3월 20일
문장분류: 정법수련>법공부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4/3/20/26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