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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문제”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리웨이니(李薇妮)

[정견망] 오늘 사부님의 대련설법 제8강의 중의 “육식문제”를 듣다가 갑자기 자신의 오랫동안의 집착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밥그릇을 들고 만약 고기가 없다면 그야말로 밥이 넘어가지 않는데 그것이 바로 속인의 욕망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어느 한 진상 항목을 선택하여 하는 것은 사실 나도 모르게 그 항목은 내가 먹고 싶어하는 “고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표면으로 보면 일을 했지만(밥을 먹는데 해당) 사실 나는 어느 정도 나의 모종 집착(먹고 싶어하는 고기에 해당)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중시를 받고 싶어 자신의 능력에 자신 있는 팀만 선택함으로써 동수들의 중시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고기를 먹게 된 것에 해당)을 느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시를 받고 싶어 하는 나의 그 집착은 장시간에 거쳐 제거되지 않았고 어느날 “고기”는 비린내가 나게 되었다. 즉 어느날 갑자기 동수들은 모두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것 같았는데 사실은 나의 명(名)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자신에게서 잘 찾음으로써 명(名)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아 모순은 더 커졌다. 이는 사실 사부님께서 “그가 고기를 먹으면 배가 아프고 먹지 않으면 아프지 않은 이런 상태가 나타나게 되는데 뜻인즉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으로부터 반영되어 나와 먹을 수 없는데 심지어 당신이 삼키려고 하면 정말로 토해 내게 된다.”라고 하신 말과 같은 것이다.

나는 오성이 아주 부족하여 전에 동수들이 고기를 먹을 때 비린내가 나서 먹지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부러워하면서 “사부님께서 책임지고 계시니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공으로부터 반영되어 나와 나에게 명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는데 왜 나는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일까? 이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나는 정말 오성이 부족한 것같다!

정작 고기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느껴지니 나는 또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는 “그럼 왜 나는 먹을 수 없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모두 표면 현상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공으로부터 반영되어 나와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시기는 다 다르다. 그러나 모두 그 집착을 버려야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전에 나는 나의 집착이 어느 한 진상팀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면 “사직”까지 했는데 뜻인즉 여기서는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 다른 곳에 가서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진상팀에 옮겨가서 보니 거기서도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으로부터 반영되어 나와 먹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오성이 부족한 것같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당신은 음료를 청하고, 그는 생수를 청하며, 그는 맥주를 청하는데 당신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사람이 없다. 당신은 당신이 청한 것을 마시고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셔라…”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나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신다 해서 꼭 따라서 마실 필요가 없다. “당신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사람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의 집착에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당신은 당신이 청한 것을 마시고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셔라” 자신이 얼마나 많은 집착심을 버릴 수 있으면 얼마 만큼 버리는 것으로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이전에 나는 다른 사람의 집착을 보게 되면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했고 방법을 대어 그 사람을 멀리하여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전문 업무연락을 하면서 밖에서 뛰는 사람”에게 업종을 바꾸라고 하지 않으셨다. 술을 마시는 사람과 한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각자 자신이 청하고 싶은 것을 청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집착하는지는 다른 사람의 일인 것으로 계속 자신이 청한 음료를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부님께서는 “담배를 피는 문제”를 얘기하실 때 “이 학습반의 마당에서 담배를 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끊으려고 생각한다면 꼭 끊을 수 있으며 당신이 또 다시 담배를 핀다면 제맛이 아닐 것이다. 당신이 책을 보다가 이 한 강의를 보아도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다시는 자신의 집착을 본체만체할 수 없었다. 우주의 제일 근본적인 대법이 나를 구도할 수 없다면 나는 정말 구할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 “육식문제”를 다 이야기하시고 “질투심”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을 때, 나는 갑자기 질투심의 근원은 바로 각자의 부동한 욕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육식문제”를 이야기하시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는 문제를 언급했는데 사실은 사람의 각종 욕망을 이야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질투심”을 “육식문제”의 뒤에 놓고 이야기하신 것은 이유가 있다. 어떠한 욕망도 없다면 어찌 질투심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전에 “육식”에 대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을 때도 모순이 생기면 자신을 수련하여 모순은 제때에 해결되었다. 하지만 같은 모순이 후에 또 다시 나타나 나는 줄곧 곤혹스러워 했다. 그러면 내가 수련한 것은 가짜였단 말인가? “병”을 뒤로 미룬 것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선종의 이치를 끌어 안고 죽어라고 놓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나는 이로부터 수련 중에서 어떠한 한층의 이치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매 한 층차에서 깨달은 이치는 마치 달마가 중국에 올 때 강을 건너면서 이용했던 갈대만큼 밖에 되지 않아 아주 작다. 만약 어느 한 층차의 이치를 끌어 안은 채 계속 위로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만큼한 이치마저도 결국에는 사라질 것이다.

개인의 옅은 인식이니 많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4년1월25일
문장분류: 정법수련>수련체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4/1/25/25516.html
영문위치: http://www.pureinsight.org/pi/articles/2004/2/16/20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