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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잘 수련하자

자신을 잘 수련하자

작자:대만 대법제자

【정견망 2006년 12월 17일】 얼마 전에 나는 한동안 홍콩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저녁에 단체법학습에 자주 참가하지 못했는데 내심으로 늘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요즘 나는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적지 않은 문제들을 발견했다.

나는 어느 동수가 책을 너무 빨리 읽어 법학습을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가 너무 이기적(爲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나는 너무 빨리 읽어서 학습한 것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여겼는가, 만약 내가 정말로 마음을 내려놓고 학습했고 조용한 마음으로 학습했다면 여전히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수련은 곧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설사 다른 사람이 정말로 이기적이라고 해도 나는 왜 그의 상화에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지 않는가? 어떠한 사람의 어떠한 행동이든 모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모두 아무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왜 이렇게 두드러지게 표현했을까, 어쩌면 그는 이런 방식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그 층차에서 인식한 것으로 옳건 그르건 적어도 그의 마음은 좋은 것인데 나는 왜 그를 이기적이라고 말하는가? 설령 그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그런 방식이 확실히 그에게 가장 적합하다면 나는 왜 그를 도와주지 못하는가? 또 한 가지, 그가 빨리 읽은 것은 내 마음을 향해 온 것이 아닌가? 내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에 내가 갈수록 마음을 움직였기에 그는 자연히 읽을수록 빨리 읽게 된 것이 아닌가!

내가 다른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가 나의 이익을 건드렸기 때문이며 내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일부 수호하려는 것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의 이기적인 것을 마음에 둔 것이 아닌가. 만약 내가 일체에 대해 모두 정말로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의 이기적인 것에 개의(介意)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기적인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은 나 역시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말에 아무리 도리가 있더라도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는데 왜냐하면 내가 진심으로 그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개변(改變)시키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부족이다. 나는 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고 그에 대해 책임진다고 여기면서 비로소 그를 개변시키려 생각하지만 나는 역시 늘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까지 수련해오면서 나는 갈수록 내가 유일하게 개변시킬 수 있는 것은 단지 나 자신일 뿐이며, 오로지 자신이 잘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구하는 것이 없으며 매사에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해야지만 원망이나 원한이 없으며 다른 사람도 내심으로 감동되어 비로소 행위를 개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에는 본보기가 없다.”(《2003년 애틀랜타 법회에서의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대법에 따라 하라고 하셨는데 대법은 사부님께서 육성하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원래 사부님이야 말로 바로 우리의 본보기이시다. 사부님께서는 매 하나의 제자를 소중히 여기시며 매 하나의 중생에게 자비하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나 역시 매 하나의 동수를 소중히 여기고 매 하나의 중생에게 자비로울 것이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발표시간:2006년 12월 17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12/17/414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