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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념을 바로잡고 수구를 잘해야 한다

일사일념을 바로잡고 수구를 잘해야 한다

작가: 대륙대법제자

【정견망 2007년 1월 10일】
어느 날, 동수 집에 가서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를 끝낸 후 잠시 휴식을 가졌다. 우리는 각자 인식하는 우리 지역 정체상 존재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또 개별적인 동수를 이야기하였다. 시작할 때는 모두 무의식적이었다. 그 몇 명 동수들의 문제는 모두 비교적 똑똑히 보이는 것이었고, 어떤 동수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사악에게 박해 당했다. 그들을 담론하던 초기에는, 그래도 법의 기점에 서서 이야기했지만 말을 하다 보니 변질되었고, 최후에는 전부 질책으로 변했음에도 우리는 도리어 의식하지 못했다. 마침 정각 발정념 시간이 되어, 제인하고 자신을 청리할 때에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먼젓번 정각 발정념 때는 자신의 공간마당이 상서롭고 순정했으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둘 다 정수리가 아프고 팽창되었다. 동수는 곧 말했다. “우리가 잘못했어요. 이런 말을 해서 뭘 하겠어요?” 나도 깨닫고는 곧 다시 한 번 자신을 청리하고, 방금 전의 대화에서 좋지 못한 요소들을 청리했다.

발정념이 끝난 후 우리는 교류하였다. 동수는 발정념 할 때, 자신이 다른 사람의 파일을 헤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내 앞에 몇 개의 껌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고, 또 몇 마리의 검은 올챙이를 보았다. 나는 이것이 자신의 입에서 냄새가 나고 더러우며, “수구”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생각(念)이 바르지 못하자 자연적으로 좋지 못한 것들을 초래한 것이다.

속담에 이런 한 가지 말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뒤에서 말을 하지 않아야 다른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속인 중의 나쁜 습관이자 또 속인들이 업을 짓는 일종 경로이다. 우리 수련인들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현재 어떤 지역에서는 동수들 사이에 간격이 아주 크다. 아주 많은 경우 모두 수구를 잘하지 못해 화를 초래한 것이다. 자신을 반성해보면, 그런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왜 선의적으로 얼굴을 마주대하고 지적해주지 못하는가? 배후에서 의론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의론을 당한 동수와 자신에게 모두 좋지 못한 물질을 내보낸다. 엄중하게 말하면, 마치 기를 훔치고 기를 채집하는 것처럼 당신이 다른 사람을 말하면 그 사람의 공간마당을 건드리게 된다. 원인은 당신의 생각(念)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좋지 못한 물질을 청해오게 되며, 또 자신도 업을 짓게 되는 것으로 자신의 백색물질을 다른 사람의 흑색물질과 바꾸게 되는데, 정말로 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다.

사부님께서는 자비하시어 제때에 제자를 점화해주셨고 나로 하여금 진정으로 놀라 깨어나게 했다. 수련은 극히 엄숙한 것으로 어떠한 바르지 못한 언행도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 기회를 빌려 자신의 잘못을 폭로하고, 또 동수들을 일깨워 주고 싶다. 절대 다시는 “수구”에 있어서 사악에게 빈틈을 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최후의 길에서 제때에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고 공동으로 정진하자.

발표시간:2007년 1월 10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7/1/10/417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