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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맺어져 연꽃이 피다(緣結蓮開 續二)

인연이 맺어져 연꽃이 피다(緣結蓮開 續二)
:제2부분 정진정오(精進正悟) 속편

작가:정련(淨蓮)

【정견망 2007년 1월 5일】
* 일체는 사부님께 귀속

어떤 동수는 개인 수련을 몹시 중히 여기고 개인수련 방면의 법리에 비교적 명백하다. 그는 자신이 매우 높다고 여기지만 주동적으로 일부 대법 일을 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 역시 흔쾌히 두세 번 허락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미 청정무위(淸淨無爲)하기에 사오한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여긴다. 나는 그에게 일부 동수들을 법에서 그리고 씬씽(心性)상에서 제고하도록 돕는 일을 맡을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일깨워주었다. “당신이 알게 된 어떤 법리든지, 당신이 증오(證悟)하고 제고된 어떤 것이든지 모두 사부님께 속하는 것으로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목적은 당신 자신이 끌어안고 음미하도록 준 것이 아니며 당신이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성하도록 성취시켜 주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에게 그것을 주어 무엇 하겠는가?”

이 동수와의 교류를 통해 나는 다른 한 방면에서 나의 부족을 보았다. 나는 늘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도처에서 뽐내며 자신을 실증하고 과시했다. 사실 생명과 경지에서부터 지혜와 능력 등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으로 오늘날 3가지 일을 잘 완성하는데 쓰라고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개변해주셨고 육성하신 것이니 일체는 마땅히 모두 사부님께 귀속되어야 한다.

*관념을 없애는 것이 바로 자아를 없애는 것

며칠 전에 주요 협조인이 나를 불러 사오(邪悟)자에게 가도록 약속을 잡았고 나더러 8시 반에 모(某) 대학 입구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춥고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9시 반까지 기다렸다. 왜 이런 일이 내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가? 과거에 내가 고향에 있을 때 두 여자 동수와 약속을 할 때면 매번 넌더리가 날 정도로 기다려야 했다. 짧을 때는 1시간이 넘었고 길면 반나절이었으며 어떤 때는 심지어 이틀을 기다린 적도 있다. 나는 불만에서 시작해 차츰 원망으로 나아갔다. 나는 시간과 약속을 아주 잘 준수하는 편이며 성격이 급하다. 어째서 늘 나는 이런 일을 만날까? 사부님께서는 일깨워주셨다. “”자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필연”이란 원인이 있다.”(《도법(道法)》)라고.

대법은 다른 것이 아니며 바로 수련이다. 어떤 일이건 모두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기다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용히 안을 향해 찾아보았다. 찾을수록 깊어졌다. 시간을 지키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신(神)이 사람에게 준 행위규범이다. 그러나 사람은 점차 일종 관념을 형성했고(물론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마땅히 엄격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약정을 통해 세속에서 형성한 관념으로 자신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요구한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는 오히려 이런 도리가 아니다. 수련인은 사람의 사유방식을 포함하여 일체 사람의 관념, 집착, 욕망을 개변해야 한다. 속인 중에서 아무리 정확한 일이거나 아무리 자신이 옳은 일일지라도 다른 공간에서 보면 다른 일종의 이치와 다른 일종의 원인이 있다.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준수하고 약속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 이기적인 것으로 일종 사람의 관념과 사유방식이다.

자신에게 제거할 것이 없다면 절대로 상응하는 환경과 일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수련인이 어떤 크고 작은 일에서든 마음속으로 넘기기 어렵다면, 명백히 말해 일종의 사심(私心)이 있는 것으로 이는 자신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을 가볍게 보는 것이다. 즉 자아를 크게 보고 다른 사람을 작게 보는 것이다. 사실은 사람의 상태와 사람의 이치, 자아 속으로 떨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부딪히건 엄격하게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수련인이 반드시 구비하고 형성해야할 기본적인 소질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반복적으로 “절실한 이익”과 그것을 대하는 문제를 제출하셨다. 내가 깨달은 것은 자아(自我)와 사심(私心)이 없다면 곧 절실한 이익의 충격과 “절실한 이익”이라는 이런 개념조차 없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 없다면 사람의 일체는 곧 제자들의 몸과 마음에서 발 디딜 틈이 없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우주는 공(公)을 위한 것으로 정말로 다른 생명을 위해 책임지며 일마다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일에 부딪히면 늘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순정(純正)하고 무사(無私)하며 진정한 정법(正法)정각(正覺)의 원만을 수련성취”(《스위스법회에서의 설법》)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제자들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이자 바람이다.

*”진정 순정(純正)하고 무사(無私)하며 진정한 정법(正法)정각(正覺)”에 대한 깨달음

오늘 사부님께 향을 올리는데 사부님의 점화로 나는 갑자기 무엇이 “순정한 무사(無私)”이며 “순선(純善)”인지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을 함에 있어 과정에 주의하며 과정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을 중시하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대법 일을 할 때 특히 정체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면 출발점은 모두 비교적 순수한 것으로 완전히 대법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하는 과정 중에는 도리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지어 의식적으로 매우 많은 사람의 것을 섞어 넣는다.

그날 어떤 동수가 말했다. “그녀는 진상을 알리는데 매우 정진하지만 효과는 늘 별로 좋지 않다.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바로 그녀가 말하는 상대방이 늘 매우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 교류하면서 말했다. “우리의 마당은 속인들이 느낄 수 있는데 그렇다면 당신 자신의 심태는 어떠했는가?” 동수는 자신이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곧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는 수련인으로 속인의 반영은 우리 자신에게서 온 것이다. 진상을 알림에 당신에게 쟁투심이 있으면 속인은 곧 당신과 격렬하게 변론할 것이며, 증오심이 있다면 속인은 곧 대법을 증오할 것이며,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속인은 늘 진상을 듣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우리가 3가지 일을 하는 과정 속에 일체를 대하거나 각종 관계에 있어서 여전히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매우 많은 사람의 것들이 있다. 비록 우리가 이미 수련 중에서 매우 많은 사람의 것을 없애버렸음에도 말이다. 어떤 때 우리는 마치 아주 선(善)하게 표현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깊이 파보면 그 선의 배후에는 여전히 매우 많은 집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사심, 목적, 감정 색채, 다른 사람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마음, 예상한 효과에 도달하려는 욕망 등이다. 중생에 대해 일종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하며 은덕을 베풀고 가르치려는 심태가 있고, 가족들에 대해서는 천하에 좋은 일이란 좋은 일은 모두 차지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동수에 대해서는 심하게 질책하고 과시하며 비교하고 자신이 옳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하거나 심지어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등이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이 해낼 것을 요구하신 진정으로 순정한 무사(無私)와 선(善)을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 나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아주 선할 때 선의 배후에 있는 집착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제거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 우리는 정말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수익을 얻고 복을 얻을 수 있게 할 수 있으며 모두에게 불광(佛光)이 널리 비춰 예의(禮義)가 원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로 연결되어 강대한 법을 인간에서 체현하자

은사(恩師)께서는 《경언(警言)》중에서 제자들에게 일깨워주셨다.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으로부터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강대한 불법이 인간에서의 재현이다!”

어느 날 우리가 서로 교류할 때 한 동수가 말했다. “나는 지금 우리 집 영감을 용서할 수 없어.” 이 동수의 남편은 속인이다. 이 지역 협조인이 이 여자 동수는 아주 정진하며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며 발정념을 하고 단체법학습에도 빠지지 않지만 단지 교양이 없을 뿐이라고 알려주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아주 또렷한 꿈을 꾸었다. 사부님께서는 본질이 나빠진 공을 제자에게 주셨다. 제자와 모두 동수들은 함께 공을 찼다. 동수들과 공동 노력 하에 공을 아주 잘 찼으며 공의 본질이 개변되어 완전히 새롭고 좋은 공으로 변했다. 제자는 좋은 공을 사부님께 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사유전감으로 제자에게 알려주셨다. 줄곧 3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법에서는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그런 동수들(함께 공을 찬 동수들)을 도와 반드시 법에서 제고하게 하며 표준에 도달하게 해야 하며 정체적으로 함께 사부님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의 신경문 《사악을 철저히 해체하자》와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게》가 발표되었다. 나는 비할 바 없이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모든 제자들이 사부님 곁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 5월 대도시와 주변의 작은 현(縣)과 시(市) 610에서 서로 연계하여 몇몇 동수들을 납치해 세뇌반(洗腦班)에서 박해를 가했고 아울러 180여 명이 넘는 동수들의 명단에 근거해 대규모 박해를 꾀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각의 지역에서 모두 현지 사악을 폭로하고 있었지만 효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냉정하게 법으로 가늠해보았다. 사악은 왜 몇몇 작은 시와 현에서 동수들을 납치하여 한 곳에 집중시켜 세뇌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사악의 요소가 적어졌기 때문에 이미 일일이 돌볼 겨를이 없어졌기 때문에 한 곳에 집중해서 박해하려는 것이다.

사부님의 점화에 근거하여 우리 지역 제자들은 첫째, 다른 현과 시의 동수들과 연계하여 저녁 8, 9, 10시에 통일적으로 전체적인 발정념을 했다. 둘째로 현지에서 진상을 알리는 방면에서 사악을 전체적으로 폭로하되 각 지역과 현에서 현지 진상을 보조적으로 알렸다. 4개 시와 현 중에서 3곳이 참여했고 한 지역은 동수의 장애로 말미암아 참여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하나로 연결된 3지역은 사악이 감히 움직이지 못했지만 참여하지 않았던 그 현은 동수들이 잇달아 납치되었다. 나중에 사악은 세뇌계획을 취소했다. 현재 동참한 몇몇 시와 지역의 동수들은 안전하고 평온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았다. 정체적인 협조와 협력을 잘 하자 강대한 법력(法力)이 펼쳐져 사악을 자멸하게 한 것이다.

은사님의 《사악을 철저히 해체하자》와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게》에서 제자는 깨달았다. 정체적으로 법학습 문제를 해결하고 정체적으로 법학습을 잘하며 법에서 제고해야만 비로소 모든 동수들의 사상과 언행이 법에서 바로 잡히고 사람마다 모두 내심으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과, 이것은 모든 지역의 협조인과 정진하는 동수들이 마땅히 중점적으로 중시해야하며 노력하여 협조하고 협력하여 해결할 문제라는 것을. 여기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법학습을 잘하는데 대한 자신의 인식을 몇 마디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법을 학습할 때 양을 추구하지 않으며 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잡념을 배척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학습한다. 한 글자 한 구절 법학습을 하고는 이해하고 배우고 나서 자신과 차이를 대조해본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학습을 하고 법을 이해하면 수익이 더욱 크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작은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삼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예를 들어 중문 《전법륜》 143-144페이지에서 사부님께서 씬씽(心性)을 제고한 사례로 드신 부분을 마음을 조용히 하고 통독하니 개인 층차에서 적어도 아래 몇 가지 층의 내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에 이롭고 백성에도 이롭다.”
2)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결정된다.
3)씬씽(心性)을 건드리는 환경을 정확하게 대하면 그 속에서부터 씬씽(心性)을 제고하고 도를 깨달을 수 있다.
4)각종 환경 속에서 행위 표현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또 중문 《전법륜》 180페이지에서 사부님께서 예로 드신 산동의 동굴 사례를 개인 층차에서 읽어낸 내포는 다음과 같다.

1) 사부님께서 대법을 전하시고 우리가 대법을 수련함에 모두 마의 교란과 파괴가 있다.
2) 교란과 파괴는 대법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철저하게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3) 사부님의 법력은 끝이 없는 것이다.
4) 동물이 수련성취 되면 곧 마가 된다.
5) 수련인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스스로 마를 초래하여 뱀 부체 등이 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나는 법학습을 하다가 글자 뜻을 모르는 곳이 있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가령 《홍음(2)―미혹됨이 없음》 “누가 하늘의 주인인가 층층이 법을 떠난 자로다(誰是天之主 層層離法徒)”에서 “리(離)”의 해석에 있어서 나는 마음속으로 여기에서 “명백하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또 여러 자전을 조사해보았다. 《사해(辭海)》를 찾아보니 “리(離)”에 대한 설명 중에 “명백하다”는 뜻이 있었다. 학습한 후 법으로 대조해보니 자신이 소재한 층차 중에서 “離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하려면 또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만약 내가 앞 문장에서 언급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정으로 순정한 무사와 선, 정법정각과 벌어진 거리가 여전히 아주 먼 것과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아주 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진하여 법을 학습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노력하여 빨리 도달해야 한다!(역주: 여기서 작가는 離法을 법을 명백히 아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작가 개인의 층차에서 이렇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지 한글 번역이 오역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법학습장이건 아니면 새로 만든 법학습장이건 오직 3-5명의 동수들이 가까이 있는 곳이라면 모두 동수들을 도와 법학습장을 만들어야 하며 안전에 주의하면서 안정적으로 하거나 혹은 동수의 집을 바꿔가면서 매주 한두 차례 단체 법학습과 교류를 해야 하고 아울러 근처에 있는 동수들이 모두 법학습장을 찾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협조인과 정진하는 동수들은 착실하고 착실하게 법학습장에 깊이 들어가(사람이 부족하다면 오늘은 A장소, 내일은 B장소 식으로 교대로 갈 수도 있다.) 동수들과 함께 법을 학습하면서 정체적으로 법에서 제고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내심으로부터 법을 인식하게 된 것이며 비로소 진정하게 쉽게 관찰할 수 없는 사람의 것을 분별해낼 수 있다. 우리가 완전히 인식함에 이르러서야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의 일체를 완전히 제거해주실 것이며 우리는 비로소 무조건적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에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한 말이나 해낸 일이 비로소 진리의 힘을 가질 수 있으며 곧 위력이 끝없는 강대한 불법이 인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곧 법에서부터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는 정체를 형성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서로 이웃한 현과 시 내지는 전체 성(省)이 하나로 연결되는 문제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은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이지적이지 못하게 유형적인 무엇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함께 모여 형식적으로 하나로 연결하자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정념과 바람을 하나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마침 이렇게 하고 있다.

1. 법에서, 정체적인 제고에서, 씬씽 수련상에서 하나로 연결되자. 우리는 몇 년 동안 일종의 내부간행물을 꾸려왔는데 주요하게는 매주 명혜망에서 다운 받은 소식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 전체가 교류하는 창구로 만들 수 있다. 내용은 각 지역에 존재하는 주요하고 보편적인 문제 및 해결방법을 교류한 것과 경험을 소개한 것, 심득교류와 각종 정보와 반응들이다.

2. 정념과 바람에서 하나로 연결되자. 사부님께서는 《사악을 철저히 해체하자》에서 이미 전 세계 대법제자들과 중국대륙 및 각 성시(省市) 대법제자들의 정념을 하나로 연결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많은 설법 중에서 모두 반복적으로 제자들에게 타이르셨다. 현재 대법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대법제자의 정체적인 협조와 협력을 잘하는 것으로 대법제자에 대한 최후의 고험은 바로 정체적인 협조와 협력에서 정체를 이루는 가의 고험이며 정체적으로 펼쳐지면 법력이 매우 강대하다는 등이다. 우리 전체 성의 동수들이 모두 법에서 정체적인 협조와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고 모두 강력하게 원한다면 사부님께서는 곧 제자들의 성취를 위해 일체를 잘 해주실 것이다.

3. 다른 진상과 본 현과 시, 지역의 현지 진상을 배포하는 동시에 통일적으로 본 성의 사악을 폭로하는 본성(本省) 진상을 보조적으로 배포한다. 우리는 이미 본성의 사악이 역사적으로 민중들에 대한 박해에서 지금에 이르러 대법제자 및 현지 민중들에 대한 박해를 《쓰촨(四川)성 전체 민중들에게 알리는 글》을 만들어 전 성의 중점 노교소(勞敎所), 감옥, 세뇌반, 지방 등의 시리즈 진상자료를 만들었다. 편집할 때 단순히 즉자적으로 알리거나 노교소를 폭로한다고 하여 단순히 노교소만 폭로할 것이 아니라 지방의 사악과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악한 표현 및 사악한 당의 본질을 연계시켜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펼쳐내 민중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갖게 하고 뉴스를 즐길 수 있게 해야 하며 이로써 구도 효과에 도달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정체적으로 모두 잘 하고 법에서 성숙하고, 매 사람이 모두 그 자신의 경지에서 성숙한 법 입자의 표현에 도달한다면 반드시 사악이 모두 제거되고 중생이 구도되며 비할 바 없이 위대하고 위엄 있고 신성한 불법(佛法)이 장차 비할 바 없이 휘황하게 인간세상에서 펼쳐질 것이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나온다

어제 저녁에 발정념을 할 때 천지를 뒤덮을 듯한 사악이 최후로 발악하는 것을 보았다. 중공 쓰촨의 사악한 공안회의는 아마 이미 끝났음에도, 철저하게 해체되기 전에 쓰촨 대법제자들에 대한 대규모 박해를 꾀하고 있다. 최근 이미 전 성에서 많은 대법제자들이 납치되었으며 청두에서만 40명에 가까운 동수들이 납치되었다. 나는 청두(成都)시 공간마당 중에 사악한 영과 썩은 귀신이 밀집한 것을 보고 즉각 강대한 정념을 발해 사악을 포위하는 식으로 집중 소각했다. 잠시 후 실질적인 사악은 소각되어 깨끗해 졌지만 사악한 요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정념을 발한 후 동수들과 교류하자 동수들은 모두 각기 다른 사악을 보았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점화하시어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세간의 일체와 정법 중의 일체를 장악하고 지휘하고 계시며 현재 사악은 이미 철저한 해체 속에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오로지 우리가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히 믿기만 한다면 일체 사악은 장차 순식간에 모두 소각될 것이다.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줄곧 최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제자들이 진정으로 견정하게 사부님과 대법을 믿을 수 있을까를 고험할 것이다. 오늘 아침 발정념을 할 때 이미 하늘은 맑고 투명했으며 온통 해맑았다.

(계속)

발표시간:2007년 1월 5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7/1/5/414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