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법제자 : 차이페이팡(蔡佩芳)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신을 잘 수련하는 외에도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나는 2001년에 법을 얻은 제자로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중생을 구도하는 큰일을 더욱 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체험이 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에 혹은 동수들과 협력하여 일을 하는 중에 모순이나 곤란이 나타날 때 만약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즉각 무조건적으로 안을 향해 찾으며 법리(法理)에 대조해 자신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모순과 곤란이 길어질 것이며 결과적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큰일을 지체하게 된다. 이 방면의 교훈이 아주 많다.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개인적인 각종 감수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에 비한다면 정말로 말할 나위도 없을 만큼 사소한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청정심”에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향해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 나는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실 진정한 장애는 바로 아직 제거되지 않은 사람마음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현재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법기(法器)는 매우 많으며 자동적인 도구를 이용하거나 혹은 수동으로 진상을 알리거나 매체 활동이거나 혹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거나 모두 부동(不同)한 정도로 사악의 교란이 존재하거나 혹은 일부 돌파할 필요가 있는 저애가 있다. 그 속에서 어떻게 구세력(舊勢力)의 안배를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길을 바르게 걸어갈 것인가는, 내 생각에, 매우 큰 요소는 바로 대법제자들이 진정으로 수련의 기점에 서서 사람의 관념을 돌려 수련인의 정념으로 문제를 보고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우리 매 사람의 수련의 길은 부동하지만 비슷한 것은 우리가 모두 반드시 수련 중에서 착실하고 착실하게 조금씩 사람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되돌아가는 길에서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수련인의 정념과 자비는 바로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 중에 생긴 것임을 체험했다. 평상시 법학습을 중시하고 일에 부딪쳐 법에 따라 어떤 정도로 할 수 있다면 법력(法力)은 곧 그만큼 펼쳐 나오게 될 것이다. 매 한 번의 제고는 모두 사람관념을 전변한 후의 성과이다.
아래는 최근 전화 진상 중의 약간의 심득이니 이 자리를 빌려 동수들과 함께 교류하고 공동 정진하고자 한다.
한번은 자동전화로 답신을 했는데 한 할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상대방은 방언이 심한데다가 일반인에 비해 말하는 속도가 아주 느려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그는 내게 많은 문제를 제출했으며 내가 일일이 대답한 후에는 진지하게 내 말을 반박했다. 이 과정은 정말로 나의 마음을 많이 연마했다. 10여 분이 지난 후 그는 진상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절대로 탈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고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곧 이 사상이 眞善忍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내가 자신의 감수를 고려하여 무조건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지 못했다. 이렇게 순정(純淨)하지 못한 사상으로 어떻게 그의 양지(良知)를 일깨울 수 있겠는가?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당신들은 아는가? 부처님은 당신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찍 속인 중에서 동냥하였고, 나는 오늘 또 큰문을 열고 대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정진요지』「진수」)
나는 아주 부끄러웠고 자신이 수련인 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나는 그 귀찮게 여기는 사상을 배척하기 시작했으며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했다. 서서히 나는 자신이 점차 홀가분해짐을 느꼈고 그의 말하는 속도를 포용할 수 있었다. 나의 관념이 변함에 따라 우리의 대화는 점점 상화로워졌고 그는 점차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듣고 싶어 했다. 최후에 그는 내게 “당신 말은 아주 듣기 좋고 모두 아주 옳아요.”라고 했다. 나는 입이 닿도록 그에게 3퇴를 해야만 장차 있을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권고했고 그는 주저하면서 내게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봅시다.”라고 했다. 이때 나는 나의 마음이 아주 평정한 것을 발견했고 나는 아주 예의 바르게 축복을 전하며 그에게 진상을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런 상화한 심태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고 나는 “忍”이란 사실 일종 아주 아름다운 경지임을 발견했다.
나는 진상을 알리는 중에 만나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 수련인 답게 대처하고 진지하게 잘하면서 보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체득했다. 상대방이 진상을 알고 난 후 기뻐서 우리를 찬양할 때는 환희심이 생겨 일종 자신을 실증하는 사유 속에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여 당신과 논쟁을 벌일 때면 또한 쟁투심이 나오지 않게 주의해야 하며 여전히 자비롭게 대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련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한번은 즉시 응답해야 할 자동전화번호 몇 개를 근 한 달 가량 방치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시간을 확인한 후 조급해졌고 사람마음이 올라왔다. 속으로 “이렇게 오래 지났으니 상대방이 잊어버렸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았다. “잘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잘하면 된다. 그가 잊었다 해도 전에 전화를 받은 것 역시 기연이니 다시 한 번 잘 말해보도록 하자.” 이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 통 한 통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는 상대방이 여전히 전에 전화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중 몇 사람은 내게 당장 3퇴 성명을 해달라고 했으며 또 내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원래 중생들은 모두 기다리고 있었구나! 모두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어.” 만약 애초 내가 사람마음과 관념에 장애를 받아 중생이 이런 기연을 잃게 했다면 그럼 장차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되었겠는가! 나는 자신에게 매 하나의 전화번호도 모두 소중히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매번 자동전화로 회사에 전화할 때면 늘 전화를 받자마자 황급히 “지금은 일이 바빠서 이런 것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바로 끊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 나는 상대방의 마음에 따라 조급해졌고 무의식중에 말하는 속도마저 빨라졌다. 조급한 마음이 일어나자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자연히 좋지 않았고 상대방은 보통 몇 마디 들어보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법학습을 통해 나는 사실 이것은 자신의 사람마음이 중생이 진상을 듣는 것을 방해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들의 문안에 감사를』에서 “중생들이여! 당신들이 수천 년 이래 희망한 것, 기다린 것과 당신들이 걱정한 것이 모두 왔고 아울러 바야흐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사람마다 다 자각적이거나 비자각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만년의 기다림은 바로 이 순간 구도받기 위한 것인데 그 어떤 일이 대법제자가 복음을 알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이런 이치를 인식한 후 “매우 바쁘니 시간을 빼앗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우선 발정념으로 자신의 사상을 순정하게 하고 나서 그의 공간장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그가 급할지라도 나는 조급하지 않았으며 평온한 말투로 천천히 그에게 알려주었다. “당신은 제 말이 끝난 후에 가서 일을 하셔도 늦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생명을 보장받는 일보다 더 긴박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혹시 당원이나 단원 아니면 소선대원이신가요?….” 그리고 나서 적당한 속도로 대법 진상을 알려준다. 나는 상대방이 나의 관념이 바뀜에 따라 거의 내가 묻는 대로 대답하는 것을 발견했다. 전체 장(場)을 내가 주도했는데 여러 차례 모두 이랬다. 많은 중생들이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탈당 결정을 내리고 또 보다 많은 진상을 알 수 있는 통로를 기억하고자 했다. 그들은 마치 처음에 바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잊은 듯 했다.
내게 아주 깊은 인상을 준 북경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 전화를 받자마자 아주 사나운 목소리로 “바쁘니까 이런 쓸데없는 말 들을 시간이 없어.”라고 했다. 나는 참을성 있게 그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또 오늘 하루 사업이 순조롭기를 기원했다. 전화를 끊은 지 5분 후에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세심하게 많은 진상을 알려주었고 결국 그 강철이 정말로 녹아버렸다. 그는 지금 탈당성명을 해달라고 말했고 또 진상자료를 보내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QQ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는 내게 “이런 소식을 널리 전하고 싶어요, 중국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가 진상을 분명히 알게 되어 기뻤고 또한 수련인 앞에 놓인 많은 곤란은 우리가 바르게 하기만 하면 좋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자동전화에 응답하는 과정 중에서 나는 중국인들이 당문화의 독해가 정말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때는 오직 우리가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선의 힘만이 사악을 전부 없앨 수 있을 뿐이다. 내 기억에 한번은 전화를 건 후 상대방이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큰 소리로 “당신들 파룬궁이 말하는 것은 듣고 싶지 않아.”라고 했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자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서 경찰에 알리겠다고 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전화를 끊으면서 내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결정에 집착하지 않고 포기하려 생각했다. 막 전화를 끊고 나서 명혜망에 올라온 동수의 교류문장을 보니 동수는 자신이 진상을 알릴 때 “아주 진지하면서도 거대한 자비를 지니고” 한다고 했다. 이 구절을 본 후 나는 자신과의 차이를 발견했고 마땅히 보다 강한 정념으로 한 번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발정념을 한 후 다시 전화를 했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때 나는 내심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그를 구도하고 진상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입당할 때 공산주의를 위해 일생을 분투하고 생명을 바치기로 맹세한 것을 기억하나요? 중국인들이 이런 맹세를 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며 당신의 운명을 당과 하께 연결시킨 것입니다.” 이어서 나는 그에게 캐나다 조사단의 생체장기적출 보고서와 장쩌민이 천안문 분신자살사기극을 날조하여 해외에서 기소된 것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근거가 있으며 거짓이 아닙니다. 당신의 운명이 연계된 당은 살인을 하고 있어요. 선악에는 보응이 있고 이 전화는 당신의 생명을 보장하는 정보를 알려드리는 겁니다. 공산당을 탈퇴하면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킬 그날에 당신의 성명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경찰에 알릴 필요도 없는데 공안부나 중난하이 사람들은 당신보다 더 진상을 잘 알고 있고 그들도 탈퇴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것은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장차 악당과 함께 순장될 겁니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잘되길 바라며 당신이 재난에서 벗어나 편안하길 바랍니다.” 내 말을 다 들은 후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잠시 후에 말했다. “좋아요, 나도 탈당하겠어요.” 나는 그에게 반드시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하라고 알려주었고 진상을 분명히 알면 복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줄곧 작은 목소리로 “좋아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늘 한 가지 생각이 있는데 “지금은 마땅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거나 혹은 “지금 이런 인식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경우 동일한 방법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법학습을 통해 나는 자신이 끊임없이 승화하고 있기에 나에 대한 법의 요구와 표준도 높아지고 제고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은 끝없는(大法無邊) 바, 당신의 그 마음에 의해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당신의 인내력과 고생을 견뎌내는 능력에 달렸다.” 나는 진선인 법리의 배후에 층층마다 끝없는 경지가 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동시에 또한 자신을 성취시키고 단련하는 과정임을 체험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에 나는 내가 최대한 사람마음을 배척하고 억제할 때, 내가 부닥친 일에서 법리에 따라 자신이 확실히 실천할 것을 요구할 때, 내가 무조건적으로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할 때, 법력은 한 차례 한 차례씩 내 앞에 펼쳐지고 사악은 모조리 사라지며 중생의 양지가 깨어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인간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도 내심 깊은 곳의 감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나는 엄숙하게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며, 자신의 사람마음이 중생이 구원받는 것을 가로막는 담장이 되어선 안 되고,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바로 중생에 대해 책임지는 것으로 다시 말해 법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라고.
이상의 교류는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발표시간: 2007년 7월 25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7/25/449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