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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연변지역에서 여신 학습반에 참가하다

사부님께서 연변지역에서 여신 학습반에 참가하다

나는 동수가 쓴 사부님의 은혜를 회억한 많은 문장을 보면 감개가 벅차오른다. 사부님이 연변지구에 공을 전할 때의 장면이 하나씩 눈앞에 떠오른다. 그 때는 내 일생 중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부님은 설법에서 연분을 얘기하였는데 나는 이 연분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사부님의 가없이 넓은 은혜(佛恩浩荡)의 안내와 역사적 안배로 나를 대법 속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

사부님은 연변에서 학습반을 연 시간은 94년 8월 20부터 28일까지인데 장소는 연변 체육관이었다. 강의 전수반은 규모가 매우 커서 전국의 십여개 성에서 삼천명이 참가하였다. 그 중에는 여러번 사부님을 따라 전수반에 참가 한 노수련생이 있었고 연구회의 일꾼도 있었다. 그들 모두 친절하고 선하여 나는 그들을 매우 흠모하여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들처럼 사부님을 따라다니고 싶었다.

나는 1934년 말, 삼대 째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많은 불교거사를 접촉하였다. 내가 열 살 되던 해 불교거사들이 우리집에 와서 경을 읽는데 나는 그들이 말법시기에 한분의 불조를 언급하며 이름이 “木子” 즉 이(“李”)라는 성인이 인간에 온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오로지 이 사람만이 중생을 구할 수 있다고 하며 인연이 있는 사람은 법선을 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당시 나의 기억은 매우 깊었다.

나중에 직장을 갖게 되어 도서관에 출근했다. 다재다난한 그 시기에 나의 정력이 소진되어 많은 병을 얻었고 매일 약이 끊이지 않았으며 나는 병원의 중병환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방면으로 치료해도 효과가 없기에 나는 기공을 생각하였고 또 어릴 적 들은 그 이씨 성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성인이 반드시 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1987년 한 달의 병가를 얻어 전국 각지의 큰 절을 한 바퀴 돌아 이씨 성인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1994년 6월 어느 친구가 나의 직장에 와서 자료를 찾으면서 나에게 무슨 기공을 연마하는가 안하는가 물었다. 나는 일종의 기공을 하긴 하는데 별로 좋지 않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부인이 “법륜공”을 하는데 부처 수련이며 본체를 가지고 수련 성취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듣고 반신반의하였다. 왜냐하면 역대로 불교에서는 몸을 버리는데 어디 몸을 가지고 가는가 ? 나는 이 사부가 누구냐, 성과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는 이씨 성인데 이홍지라고 하였다. 그한테 책이 있는가 묻자 그는 집에 <법륜공> 원본이 한권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곧 이 책을 보았고 바로 이 책의 법리에 끌려 들어갔다. 이 공이 내가 찾고 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사부가 내가 찾는 사람인지는 진정하게 고려해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은 일생에 하나의 사부만 있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고 어쨌든 먼저 연마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며칠을 연공했는데 정신이 많이 좋아졌으며 신체도 가뿐해졌다. 얼마 안 가 동수가 나에게 8월 20일에 사부님이 연변지구에 법을 전하러 온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름을 올렸고 열흘간 학습반을 여는데 표는 43원이라고 하였다. 내가 이전에 참가했던 기공반은 일주일에 오백원이었다. 동수는 내게 이 사부는 부처수련을 한다고 하며 사람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이 분은 아마 고인(高人)일 것이며 내가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20일 오전 8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따라 강당에서 좌석번호에 맞추어 앉아 사부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사부님이 강연대에 나타나자 전 강당은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내가 사부님을 보니 체구가 훤칠하고 온 얼굴에 붉은 빛이고 매우 젊었으며 머리는 까맣고 이 삽십세 되어 보였다. 사부님은 미소 짓고 단수 입장을 하여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강단에 올라갔다.

내가 멍하니 보다가, 아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 분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찾았던 사부님이 아니신가 ? 목자(木子)가 바로 이(李)씨이다! 바로 불주(佛主)이시다. 나는 격동되어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렸다. 마음속으로 묵념했다. 사부님 제가 사부님을 찾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요! 어찌 이제야 오십니까? 당신께서는 절에 계시지 않고 오히려 속인 속에서 나타나시네요. 오늘 나는 진정한 사부님을 찾았다! 나는 너무나 격동되었다. 당시의 정경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강의를 하는데 원고가 없고 탁자에는 단지 한 병의 물과 한 장의 백지만 있었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펜과 종이를 가지고 기록할 준비를 했다. 나의 자리는 강단과 매우 멀었지만 사부님께서는 마치 내가 필기하려는 것을 아시는 듯이 “적을 필요 없습니다. 다 듣지도 못하고 다 적지도 못합니다.” 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필기를 그만두고 진지하게 설법을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 수 있겠지만, 당신은 이 시간 동안이 매우 보람찼음을 느낄 것이다.” <전법륜> 나는 반드시 사부님을 만날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에너지가 무척 강해 나는 매우 편안함을 느꼈으며 머릿속은 한바탕 공백이어서 무슨 생각도 나지 않고 단지 눈물만 흘렸는데 웬일인지 몰랐다. 당시 8월이라 날씨는 매우 더웠지만 사부님께서는 강의하실 때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정말로 수고스러웠다. 어떤 수련생은 부채를 가지고 바람을 부쳤다. 사부님께서는 “부채를 부치지 마십시오. 부칠수록 더 덥습니다”고 하셨다. 나는 부채질을 멈췄고 한가닥 시원한 바람이 불어옴을 느꼈는데 덥지 않았다.

사부님은 매일 한 과목을 강의를 마치고 공을 가르쳤는데 수련생 한명 앞에 서서 가르치며 강당을 한 바퀴 돌며 친히 수련생에게 동작을 시정해 주었다. 다음날 설법 때는 나는 잠이 들어 깨어나지 못했는데 사부님이 무엇을 강의 했는지 모두 들을 수 있었고 이는 바로 자는 것이라 나는 매우 급했다. 사부님이 설법하실 때 나는 다른 공간의 불, 도, 신이 모두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층층이 불, 도, 신이 모두 이러하여 매우 장엄하고 엄숙했다 나는 앉아서 들으며 또 잠을 잤는데 이는 사부님에게 큰 불경이었다. 이 때 나는 사부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어떤 개별적인 사람은 또 잠을 잘 수 있는데, 내가 강의를 끝내면 그도 잠을 깬다. 무엇 때문인가? 그의 머리에 병이 있어 그에게 조정(調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조정하면, 그는 전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그를 마취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청각부분에 문제가 없어 그는 잠을 달콤히 자지만 도리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듣는다. 사람은 이때부터 정신이 나며 이틀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는다. 모두 부동(不同)한 상태로서 모두 조정해야 하는데, 당신의 온몸을 전부 정화(淨化)해 주어야 한다.” <전법륜>

사부님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와 곳곳마다 수련생을 생각하고 계셨다. 그때부터 나는 사부님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는데 이는 천고에도 얻기 어려운 기연이다.

열흘 강의 이후 나의 세계관은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변화가 일어났고, 내 일생중 이해하지 못했던 미혹에 대해 이번에 모두 답을 찾았으며 이후에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았다. 사부님이 문제에 해답 하실 때 나의 머리는 한바탕 공백이라 아무 문제도 없었다. 단지 이 사부님은 너무나 신성하여 무엇이든지 다 알며 어려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끝난 후 사부님은 우리에게 대수인을 쳐주셨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내가 계속 보고 있으면서 놀랍고도 기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부님은 정말로 부처님이시구나! 이는 내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일이다.

전수반이 끝난 후 사람들은 사부님께 감사의 깃발을 드렸다. 사부님은 수업료에서 남은 7천위안을 적십자회에 헌납하셨다. 학습반이 막 끝났을 때 어떤 수련생이 광주학습반은 이미 돈을 다 받았고 티켓 가격은 일백위안이라고 말했더니 사부님께서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시며 돈을 돌려주라고 하셨다. 연구회에서 돈을 돌려주기로 한 후 사부님은 즉시 광주로 출발하셨다. 중생 구도를 위해 사부님께서는 주야로 노력하시는데 정말로 많은 고생을 하셨다. 사부님의 자비, 광활한 흉금은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12년이 지났는데 사부님의 음성과 용모는 여전히 나의 눈앞에 떠 있다. 사부님, 당신의 자비로운 고도에 감사드립니다. 대법을 널리 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나는 몇 번 잘하지 못했지만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은 조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악이 대법을 박해할 때 사부님께 행한 각종 요언, 중상 비방은 사실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나는 오늘날까지 걸어 왔으며 이후 나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세가지 일을 잘하며 은사의 자비로운 구도를 낭비하지 않을 것이며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발표시간:2007년 2월 12 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2/12/422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