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나의 심득체험(워싱턴법회 발언고)

나의 심득체험

글: 북미 대법제자

【정견망 2007년 7월 25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련한 경험, 속인과 함께 진상 항목을 진행한 경과, 색마(色魔)를 극복한 체험, 이 세 가지 방면에서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혼인 생활 중에서 수련

저는 2003년에 결혼을 했는데 처음엔 결혼 생활이 아주 순탄했습니다. 아내는 비록 내가 왜 비행기를 타고 전국 각지를 다니며 법회에 참석해야 하고 매번 단체 법공부를 하고 늦게서야 집에 오는지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매우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결혼 일 년이 지난 후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실업을 당했고 아내는 한차례 심한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제가 반드시 집에서 돌봐야 했습니다. 이리하여 집은 저의 주요한 수련 환경이 되었습니다.

제가 법공부를 하거나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석하려고 하면 아내는 불만스러워하며 반대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우선 타인을 생각하면서 또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어느 곳에 문제가 생기면 그곳에 가서 진상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파룬궁 얘기만 꺼내면 아내가 불쾌해 했기에 저는 점차 아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집착심이 생겼습니다.

지금에서야 저는 이것이 저의 근본 집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비교적 이기적이었고 속셈이 많아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천목의 정화지기(精華之氣)가 산실되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저의 이기심에는 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많은 층차가 있었습니다. 구세력은 저의 수련 중에 있는 누락을 이용해 아내와의 사이가 긴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구세력이 제 집착을 이용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발정념을 하여 그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말로만이 아닌 자신의 행동으로 아내에게 내가 대법 중에서 수련해낸 자비심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함께 있을 때면 나는 아내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그녀를 우선 생각해주면서 가사와 식사 준비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아내에게 내가 도울 일이 없는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동시에 지역별 법공부와 교류에 끊임없이 참가하여 많은 제고를 했습니다.

지금 저는 이미 좋은 직장에서 일 년째 근무하고 있고 저의 아내도 제가 술을 마시지 않거나 대법을 수련한다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녀를 처음에 불쾌하게 했던 근본 원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제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아내가 불쾌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저와 다투어 진상을 알리고 있고 신당인 스팩태큘러를 관람하고 나서 대기원에 문장을 쓸 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을 소개하여 대기원에 참가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미 제고되었고 성숙되었지만 자신의 부족점을 늘 발견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때론 수련하지 않는 아내와의 관계를 평형 시킨다는 이유로 더 정진하여 구도 중생을 잘하지 못하는 구실로 삼습니다.

설사 가족 관계를 원용(圓容)시킨다고 해도 이것이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구실이 될 순 없습니다.

최근에 아내의 친구가 찾아와 같이 식사하러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내가 선택한 식당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것도 한차례 고험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내가 친구와 한담하다가 화제가 우리 가족에게 돌려졌는데 가족들에 대한 아내의 한마디 평어가 나를 화나게 했습니다. 나는 정서가 격동되어 이지적이지 못하게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이튿날, 아내는 나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엊저녁에 당신이 어찌 그럴 수가 있어요? 당신은 말끝마다 대법 수련인은 이렇게 좋고 저렇게 좋다고 하더니 어찌 나한테 고함을 지를 수 있어요? 친구 앞에서 너무 난처했다구요.”

그녀의 말은 비수처럼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비평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매번 잘못인줄 알면서도 아내의 비평을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어떤 장소든 막론하고 이런 일들을 담담하게 보면서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2. 가오즈성(高智晟) 변호사가 상을 받다

최근에 저는 집식구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결과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 하렵니다.

저희 아버님은 변호사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가오즈성(高智晟)변호사를 화제로 삼아 아버님께 진상을 알렸습니다. 가오즈성 변호사와 박해에 관한 이메일을 보내드렸고 다른 내용의 메일들도 보내드렸습니다. 동시에 늘 부모님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잦아지면서 부자간의 관계가 화목해졌습니다. 몇 달 동안 가오즈성 변호사 이야기와 진상을 알리면서 그제야 저는 부친께서 원래 6000명가량 되는 “법원출두변호사위원회(American Board of Trial Advocates=ABOTA)” 상장수여위원회 회장을 맡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협회에는 “용감한 제창자상(Courageous Advocacy Award)”이라는 특별상이 있어 자신의 생명위험을 무릅쓰고 법을 수호하는 변호사나 법관을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기왕에 모든 것이 법을 위해 왔다면 저는 부친께서 이 협회에서 지닌 직위도 대법을 위해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친께 가오즈성 변호사에게 “용감한 제창자상”을 추천하도록 건의 드렸습니다.

아버님은 처음에는 협회에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킬까 우려하셨고 협회가 이로 인해 정치판에 휘말려 들어간다는 오해를 받을까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최후에 위원회에서 추천을 받아들이거나 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이런 특수한 직위에 계시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이 직책을 이용해 좋은 일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최대의 노력으로 가오즈성(高智晟)변호사를 추천하기만 한다면 최후의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명을 준비하고 토론을 기다리며 투표하고 나중에 상을 수여 받기까지 일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전반 과정은 정말 씨를 뿌린 후 많은 시간을 들여 물을 주고 재배해야 하듯이 해야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회사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어머님도 저와 아버님이 이런 뜻 깊은 일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는 메일을 보내 오셨습니다.

상장을 발급하던 날, 수상식이 시작되자 회의장은 매우 조용해졌습니다. 회의 발언은 모두 중국에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에워싸고 진행되었기에 참가자들은 중국에서 한사람이 얼마만한 용기가 있어야만 가오즈성(高智晟)변호사처럼 할 수 있을지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곁에 계시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따뜻한 금빛이 가득 찬 회의장이 회전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청중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 발언자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습니다.

의식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아버님을 찾아와 이렇게 훌륭한 활동을 조직한데 대해 축하드린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발언한 동수와 객석 변화사에게 좋은 평판을 해 주셨습니다. 또한 종래로 변호사들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5분이상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30분이나 조용히 듣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그들을 구도하시고 있기 때문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 여사의 남편은 협회 창립회원이었습니다. 여사님은 저희 어머님과 대회에서 발언한 동수를 찾아와 자신이 협회 활동에 참가한지 50년이 되었지만 가오즈성(高智晟)변호사에게 상장을 수여한 것이 협회 50년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하시면서 대회에서 발언한 동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150명의 대표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직접 진상을 들었고 6000명의 협회 회원들도 중국에서의 박해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매스컴에서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큰 신문사에서도 가오즈성 변호사가 파룬궁을 변호한 사실을 알렸고 워싱턴 신문, 보스턴 글로브와 보스턴 신문 등 큰 매체에서도 이 소식을 전재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가오 변호사가 상을 받은 것을 논평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이 이렇게 영향력이 클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고 단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나와 연분이 큰 사람들 모두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때론 사람의 관념이 생기면서 진상을 알리기가 쑥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은 진정한 내가 아님을 알고 만나는 사람마다, 기사이건 동료이건 가족이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하며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라고 자신을 일깨워주곤 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저는 작은 일들이 모여 큰 일로 이루어지며 오직 우리에게 중생을 구도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조건을 창조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색심(色心)을 버리다

수련하기 전에 저는 색심이 아주 심했습니다. 제가 처음 법회에 참석한 것은 2003년 정월 대보름 법회였습니다. 법회에서 사부님을 만나뵙자 저는 큰 물질 하나가 제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오랫동안 이면의 교란이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색에 대한 집착이 표면으로 나온 것을 느꼈고 때론 자신이 수련인답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을 향해 찾은 후 저는 천목이 열린 한 동수가 쓴 이 방면에 관한 명혜 교류문장을 보았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공간에서 색심이 중한 사람들의 다리에는 뱀이 도사리고 있거나 메스꺼운 동물형상의 생물이 그들과 함께 침대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수련인은 속인들이 원하는 금전, 지위, 향수, 혹은 사람의 다른 욕망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이미 여기까지 타락했는데 무슨 이유로 사람의 정과 자극을 추구한단 말입니까?

사부님께서는 “… …당신이 다시 담배를 피우려 해도 곧 그 맛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매번 색욕이란 이 관을 넘지 못할 때마다 실상 저는 그런 행위가 정말 아무런 향수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원인인지 설사 자신이 이 문제에서 이미 납득이 되었음에도 완전히 배척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속인이라는 이 염색독에 오랫동안 젖어있다 보니 색욕에 대한 집착을 극복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성이 더욱 높은 층차로 제고되고 정법표준의 층차까지 제고되었을 때 쉽게 색의 마음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정념이 아주 강할 때면 쉽게 주의를 전이시킬 수 있으나 마음을 일초라도 방임할 때면 어려웠습니다. 이때 만약 이런 충동은 실질적으로 사람을 메스껍게 하는 마가 정법을 파괴하려한다는 생각만 하여도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로서 당신의 일이 곧 나의 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솔직하게 동수들과 자신의 결함을 교류할 때면 우리 정체 중에서 바르지 못한 부분을 수정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런 불결한 것들을 우리 정체에서 없애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한 개체로만 생각하고 법의 각도에서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의 결함은 정체와 내가 책임진 중생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동시에 정법 중에서 구도해야 할 중생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 진정한 자비로 동수를 대하고 함께 우리의 사전 염원을 실현해야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은 저 개인이 현재 층차에서 이해한 것입니다.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7년 워싱턴DC法轮大法 심득교류회 발언고)

발표시간 : 2007년 7월 25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7/25/449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