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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한 회상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한 회상

작가 : 대륙 대법제자

[정견망 2007년 7월 5일]

법을 얻기 전에 나는 거사였으며 절에 들어간 지 19년째였지만 수련하면서도 늘 진법을 찾지 못했다고 느꼈다. 1993년 어떤 수련생이 북경에 가서 지진을 피할 때 인연이 있어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다가 돌아온 후 내게 말했다. “法輪功(파룬궁)을 배우는 게 제일 좋아.” 그러나 나는 이번 기연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1994년 상반기에 또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중국파룬궁>> 책 한 권을 보내주었는데 돌아와 읽어보니 <개론> 중에서 말하기를, “처음 들으면 허황한 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기공수련에 뜻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써 오로지 세심히 체험하고 깨닫는다면, 오묘함이 모두 그 안에 있다.” 당시 나는 이 말이 매우 신기하여 한 번 시도해보자는 마음에서 제5장 공법인 “신통가지법”을 했다. 당시에 반가부좌만 했고 결가부좌는 하지 못했다. “가지구상신통(加持球状神通)”을 대략 8분 정도 하고 있을 때, 기적이 나타났다. 눈앞에는 신체에 아무것도 없고 남은 것은 빨간 피가 있는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 보았는데 정말 미묘했다. 당시 어찌된 일인지 잘 보려고 마음을 움직여 눈을 뜨자 그 무궁하게 미묘한 상태에서 보통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즉각 이번에 진법을 찾았음을 알았다. 사부님은 진법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사부님은 진짜 부처가 하세한 것이다. 이때 이후 나는 어떤 인연있는 사람이 그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파룬궁의 사부는 “진불”이다. 이 후에 강습반을 열면 반드시 참가하여 층차를 제고하겠다.”

* 정주학습반에 참가하다

1994년 6월 11일, 나는 인연이 닿아 정주학습반에 참가했다. 당시 나는 한 살 남짓한 손녀를 데리고 다녔는데, 아이가 늘 젖을 먹어야 하므로 무거운 짐을 두 개나 짊어졌다. 나는 두 사람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정말 단번에 두 명의 수련생이 왔다. 한 사람은 이미 사부님의 학습반을 따라다닌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우리와 함께 가려고 했다. 당시 내가 매우 신기하게 느낀 것은 내 손녀가 사부님을 따라다닌 그 수련생을 보자 마치 구원의 손길을 만난 것처럼 반드시 그에게 안기려고 했고 나에게 안기려고 하지 않아서 나는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린 손녀는 이전에 이 사람을 본적이 없지 않은가. 그 수련생이 아이를 안고 2리나 걸었는데, 곽림로초등학교에 도착하여 법륜장을 보았을 때 아이는 그것을 끌어안고 어찌된 일인지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생각해보니 아마 이 수련생은 사부님이 신체청리를 한 때문이 아닌가 했다. 이 일을 통하여 나는 더욱 사존 뵙기를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6월 10일, 나는 차를 타고 무창에 도착했고 먼저 용화사에 가서 이전에 모셨던 사부님께 고별인사를 했다. “저는 오늘 정주로 파룬궁을 배우러 갑니다. 어쩌면 이후에 안돌아올지 모릅니다.” 그녀는, “가보게! 선재동자도 얼마나 많은 사부를 모셨는지 모른다……” 그녀가 비록 이렇게 말은 했지만, 당시 나는 괴로웠고 그때부터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커우(漢口)에서 온 수련생이 나를 보고 물었다. “무엇 때문에 우십니까?” 나는 불교에서 나왔는데, 파룬궁을 배우러 정주에 간다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고등학교를 끝냈으면 대학에 다니게 되어 기쁘지 않습니까?” 그녀의 말을 듣자 나는 곧 눈물이 멈추었다. 참가하기 직전 6월 10일 저녁에 출발하려고 할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나는 비가 그치면 내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더니 정말로 비가 그쳤다.

날이 질 때쯤 우리는 정주에 도착했고 잘 곳을 찾아보았다. 비록 피곤했지만 사람들은 잠이 오지 않아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는 부랴부랴 학습반의 강당으로 뛰어갔다. 강당은 만원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사부님이 도착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사부님이 오셨다!” 사부님이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일어나 박수를 쳤는데, 정말로 박수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사부님은 강당 입구에 정지하여, 우리는 머리를 들어 사부님을 보았는데 마치 오래 헤어진 친척을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사부님은 소박한 의복을 입고 표정은 상화하며 자비로웠다. 잠시 후 사부님이 강단에 올라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하자 즉각 강당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사부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1미터도 안 되었다. 당시 사부님이 설법하시는 그 마이크에 많은 잡음이 있어 나는 사부님에게 말했다. “마이크를 좀 떼어서 말씀하시면 좋을텐데요.” 당시 사부님은 손짓하시며 자비롭게 “앉으세요.”라고 하셨다. 사부님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마이크는 자연히 좋아졌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른 것이었다.

사부님은 우선 자기소개를 하시고 강의를 시작하셨다.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부님을 보았는데, 자비로운 사부님은 박대정심한 법리로 나를 속세에서 깨우셨고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다. 어느 날 사부님은 사람들에게 신체청리를 해주시기 위해 사람들에게 발을 구르라고 하셨는데, 구르기 전에 자기에게 병이 있으면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너무 심한 병은 안 된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나의 근시를 생각했지만 또 생각해보니 근시안은 큰 병이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에게 병이 없으면 자기 친척의 병을 생각해도 됩니다. 그래서 나는 시아버지가 다년간 어깨에 담이 있는 것을 생각했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소리치면 여러분들이 함께 발을 구릅니다.” 사부님이 하나, 둘을 세고 미처 셋을 세기도 전에 어떤 사람이 기다리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사부님은 웃으시며 말했다. “수련하려고 하면 이렇게 정진하면 됩니다.” 집에 돌아간 후 시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어깨 결린 것 좋아지셨나요?” 시아버지는, “다년간 담이 아픈 고질병이 어쩐 일인지 나았네” 하셨고 94년부터 2002년까지 아픈 적이 없다. 학습반에 참가한지 사흘, 자비로운 사부님은 우리의 신체를 청리하여 주셨는데 나는 토하고 메스꺼웠으며 우리반의 수련생은 삼일 내에 모두 이런 감각이 있었다. 이 때부터 모두 몸이 가뿐함을 느꼈는데, 대법의 현오함과 초상적인 것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다.

어느 날 사부님이 강의하시는 중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고 손을 뻗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은 지경이었다. 곧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는데 우박이 강당의 기와를 때리는 소리가 울렸고 우박이 사부님이 강의하시는 강단 앞의 기와를 부수어 비가 곧바로 흘러내렸다. 강당의 주위에 각종 각양의 동물이 괴성을 지르며 여기저기서 소리가 나, 들으면 모골이 송연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데, 사부님은 이때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의 탁자 위에 올라 가부좌 하시고는 대연화수인을 하셨다. 몇 분이 지나자 하늘이 밝아지고 태양이 아침처럼 빛났다. 이 때 사부님은 탁자에서 내려와 자리에 돌아가셔서 말씀하셨다. “정주 이 반의 소질이 특히 좋지만 가지고 온 것도 적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일을 해주었는지 압니까?” 당시 나는 듣고도 내가 뭘 가져왔나? 손녀가 오려고 했어도 데려오지 않았는데 하며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날 어떤 수련생이 황하강변에 가서 노는데, 강변에 매우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나가 사람들은 비로소 어제 말씀하신 것이 마의 교란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이 대수인을 친 것이 마를 제거한 것이었구나. 동시에 수련생들의 몸에 있는 나쁜 것들을 청리했구나.

집에 돌아간 후 나는 파룬따파가 좋다고 생각되어 절에 가서 이전에 알던 비구니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들은 우리처럼 이 만고의 얻기 어려운 기연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법륜장만 지니면 되지 책은 필요없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책을 보더라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 기억하기에 한번은 내가 설법 녹음을 그들에게 틀어주어 듣게 했더니 그들은 듣고 매우 진지했으나 우리처럼 경건한 것 같지는 않았다. 또 어떤 사람은 처음 녹음을 틀었을 때 테이프가 몇 번 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종교의 난잡한 신이 그녀들이 법을 얻는 것을 제지하여 나쁜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우리는 다행히 대법을 얻었다. 반드시 이 만고의 수련 기연, 사부님의 자비한 고도(苦度)를 아껴야 한다. 사명을 욕되게 하지 말고 조사세간행(助师世间行) 하자.

* 광주학습반에 참가하다

1994년 12월, 나는 운이 좋아 또다시 사부님의 중국대륙에서의 마지막 한차례 설법인 광주학습반에 참가하였다. 이것은 최후의 설법이므로 참가한 사람이 특별히 많아 국외에서 온 사람, 홍콩에서 온 사람, 마카오에서 온 사람 등등으로 정말 이전에 없던 성황을 누렸다. 비록 겨울이었지만 곳곳에 훈훈한 봄기운, 명절기운이 넘쳐흘렀다.

강의장소는 광주체육관이었는데, 온 사람이 특별히 많아 많은 사람은 표를 구하지 못했다. 학습반을 연 첫날 많은 사람이 강당 밖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사부님은 안에서 들으나 밖에서 들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많은 노수련생들은 자기의 표를 밖에 있는 신수련생들에게 주었다. 우리 일행 세 사람은 표를 사지 못했다. 둘째 날 강의 전 어떤 수련생이 우리 앞에 오더니 자기 표를 나에게 팔았는데, 나는 그 표를 신수련생에게 주었다. 오후에 또 한 사람이 표를 물려 나는 또 다른 신수련생에게 주었다. 이 때 어떤 여자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다른 쪽에서 어떤 사람이 기공반을 여는데 당신은 아예 거기 가서 듣지요.” 나는 즉시 대답했다. “우리 사부님은 여기서 강의하시니 나는 거기에 가지 않겠습니다.” 아마 이는 나의 심성을 고험하는 것이리라 여겼다.

세 번째 날 오전에 나는 사부님이 앞에 있는 호텔에서 나와서 체육관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이 때 나는 입구에 서있었는데, 얼른 위대한 사존에게 두 손으로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사부님은 단수입장을 하시며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얼마 후 어떤 수련생이 또 나와서 나에게 표를 주려고 하였다. 내가 들어가서 마침 어느 남자 수련생 옆에 앉았는데, 이 남자는 한편으로는 법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울고 있었다. 이번의 설법반은 수련생의 진보가 매우 크고 심성제고도 빨라 많은 수련생들이 표를 다른 신수련생들에게 주었다.

어느 날 한 중학교에 거주하는 수련생이 돌연 하늘에서 금광이 번쩍이는 큰 法輪(파룬)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는데, 한줄기 붉은 빛이 비쳤으며 광주의 많은 곳에서 이 기이한 경치를 다 볼 수 있었다. 그날 밤 간부학교에 거주하는 수련생들은 사존의 법신을 보았다. 학습반이 끝날 때 나는 세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는, “파룬궁 기지를 건설할 것인가 아닌가?” 둘째는, “내 아이는 다 컸으니 나는 기지로 가고 싶다.” 세 번째는, “중생의 고통은 감당할 수 없으니 사부님께 널리 중생을 구해줄 것을 청한다.”는 것이었다. 자비로운 사부님은 일일이 회답하여 주셨다. 지금 전 세계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며 대법 수련생은 세계 각지에 퍼져있다.

광주에서 돌아온 후 나는 일심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했으며 심성공부를 모질게 하며 각지로 가서 홍법하고 대법의 복음을 인연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며 그곳의 보도소 및 연공점과 협력했다. 그때 무릇 연공장에 가는 대다수 수련생들의 진보가 신속하였으며 매일 사존의 불은호탕에 푹 빠져들었다.

7.20 박해가 시작된 이후 나는 성 소재지, 북경 등에 가서 진상을 이야기 했다. 사악은 나를 박해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두 차례 노동교양소 판결을 내렸으며 여러 차례 집을 수색하고 일만 여 위안의 벌금을 물렸다. 그러나 이번의 불법적 박해는 진수제자의 믿음을 바꿀 수 없었다. 사부님의 점화와 법공부 중, 법에 대한 부동한 깨달음으로 나는 더욱 청성해졌고 이지적이 되었으며 대법을 수련하려는 결심을 더욱 견정하게 했다. 나는 반드시 법공부를 잘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조사세간행(助师世间行) 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것이다.

발표시간 : 2007년 7월 5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7/5/446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