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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수련은 내 생명의 영원한 영광

정법수련은 내 생명의 영원한 영광

작자: 샌프란시스코 대법제자

【정견망 2007년 11월 10일】

존경하는 사부님, 여러 동수분 안녕하십니까

1. 법을 얻다

아주 어렸을 때 일로 기억나는데, 나는 암암리에 늘 천상에 어느 큰 신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마치 늘 그의 자비와 보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때때로 기쁜 일이나 기쁘지 않은 일을 만났을 때 작은 의자를 찾아 그 위에 꿇어앉아 천상의 그 신께 호소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면서 무신론 교육과 당문화의 독해를 점차 많이 받게 되어 나는 이 물질과 각종 명리(名利)의 세계에 빠져 미혹되었고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생겼으며 어렸을 때의 일은 너무나 아득히 여겨졌다. 나는 또 동년배처럼 성적이나 진학과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조류를 쫒았으며 내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비록 내내 순탄하긴 했지만 젊었을 때도 이미 생활의 고달픔을 느꼈고 늘 마음속이 매우 허전함을 느껴 내내 채워줄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래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나는 무언가를 찾아다녔으며 일부 어려운 철학 서적들을 보았고 마치 이치를 조금 알았다고 느꼈지만 매 사람마다 자기의 이해와 논법이 있었고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수 없었다. 나중에 서양 종교로 들어가서 매우 많이 공부했고 강의도 적지 않게 들었지만 갈수록 아득했으며 많은 문제는 누구도 답을 줄 수 없었다. 아무도 진정하게 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사람들은 신앙 활동을 대개 사회활동과 사교활동으로 여겼다. 나는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96년 당시 내 남자친구이자 지금의 남편이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마침 대학원생이었고 교정에서 많은 연공인을 보았으나 오히려 자신의 무지 때문에 기공수련과 정신신앙은 다른 일이라고 여겨 기연을 잃어버렸다. 남편이 막 법을 얻었을 때 환희심 때문에 나더러 수련의 일부 일을 말해주었나 나는 일부 협애한 과학관념 때문에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眞善忍”에 비추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땅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 일념 때문이었는지 사부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이렇게 2000년이 되었다. 사악이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박해했지만 파룬궁 수련생들은 견지하며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도대체 파룬궁이 무엇인지 이해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법륜』과 사부님께서 세계 각지에서 말씀하신 모든 설법을 다 읽은 후 장기간 나를 곤혹하게 했던 일부 문제들이 순식간에 해결 되었고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비할 수 없는 지혜와 자비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리의 명석함과 방대하고 정심함은 나로 하여금 수련의 길로 들어오도록 결심하게 했다.

나는 한 수련생에게 물었다. 우리는 신이 세상에 내려와 세인을 구도하는 것으로 신이 인간 세상의 제자가 된 것이니 정말 행운이 아닌가? 그러자 그 수련생은 우리는 정말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2. 수련의 길

돌이켜 보면 나는 이미 7년의 정법수련과 개인수련이 얽힌 수련역정을 지나왔다. 7년 동안의 체험과 개인의 변화는 한편의 수련심득에 융합하기는 정말 어렵다. 시간관계상 여기서는 일부 수련의 길에서 겪은 단편만 교류하고자 한다.

막 법을 얻었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적지 않은 진상 일에 뛰어들었다. 내 기억에 처음 진상자료를 나누어 주려고 차를 탔을 때 속으로 좀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성장하도록 아직 길거리에서 자료를 나누어 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해 처음 자료를 나누어 줄 때 나는 일체가 모두 자연스러움을 느꼈고 오고가는 중국인들에게 자료를 나누어 주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비와 상화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하고 격려하신 것임을 알았다.

그때 이후 다른 정법시기 수련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진상자료를 캐나다에서 미국, 유럽으로, 차이나타운에서 뉴욕의 42번가까지, 의회에서 중국 영사관까지 모두 나누어주었다. 자료를 나누어 준 과정의 수련과 체득은 마치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제일 처음 관문과도 같았다.

착실한 개인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법을 얻은지 얼마 되지 않는 힘에 의지한 표면적인 정진은 곧 적지 않은 고험을 받았다. 내가 넘겨야 할 적지 않은 관과 제고해야 할 방면에서 때로는 늘 가족들과 모순이 나타났다.

연공장에서 우리 지역에는 능력이 매우 강한 몇 명의 노제자들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나는 일부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번은 그곳에 중국 대사가 갈 가능성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사악을 억제하고 진상을 하는데 노수련생들이 모두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비록 갈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가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다른 수련생이 현장에 가서 작용을 일으키긴 했지만 전체 과정에서 사악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후 자기 수련이 착실하지 못하여 이런 진상활동의 의미와 자기가 마땅히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동수에 대해 집착했고 일부 노수련생에 대한 반감이 생겼으며 연공장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바로 그 때 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매우 더러운 곳에 떨어져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다 깨어났다. 깨어난 후 나는 정말 매우 두려웠다. 우리가 인간에서 무엇을 보았던지 모든 것이 다 허상일 뿐이며 단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을 볼 뿐임을 알았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데 그럼 자기는 어떻게 수련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가로막혀 있는데 그럼 우리는 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

2006년 초, 일 때문에 나와 남편은 함께 항만 쪽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TV 팀의 일에 참가했다. 뉴욕에서 TV 일을 한동안 도왔었기 때문에 나는 TV일에 대해 매우 고생스런 깊은 체험이 있었다. TV 기술은 어렵고 절차가 복잡하며 항목이 많고 전문성이 높기 때문에 만약 어느 한 방면에서 도달하지 못하면 전체가 실패할 수 있다. 때문에 TV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단체로 움직여야만 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밤이 늦거나 피로해도 힘껏 TV 조에서 견뎌냈다.

늘 내게 다음과 같이 묻는 동수들이 있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늘 이곳에 있을 수 있는가? 식사는 어떻게 하는가?”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이렇게 말했다. “정법의 형세는 갈수록 빨라지고 매체와 각 항목에 대한 전문성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정법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대법이 우리에게 준 지혜에 의지하는 외에 우리 자신의 노력을 배가해야 합니다.”

TV 항목에 참여하는 과정 중에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고되었고 과거 자신에게 장애가 되었던 많은 일들이 모두 지나가버렸다. TV 항목을 하는 많은 수련생들은 다 알겠지만 늘 밤을 새는 것이 일상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속인의 일을 할 때면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잠자기를 좋아했다. 또 만약 잠을 적게 자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대학입학시험 기간에도 여전히 충분히 잠을 잤다. 현재 많은 경우 나는 늦게 자는데 때로는 아침 7시 반에 출근해야 한다. 늘 2, 3 시에 잠자리에 들어 6시면 일어나 출근한다. 남편은 때때로 내가 이처럼 견지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TV 항목을 하는 과정 중에 심성 마찰과 제고도 적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매번 자신의 제고를 촉진하는 기회였다.

이렇게 낮에는 속인 일을 하고 밤에는 TV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회사에서 일한 지 1년이 되었고 연말 근무평가를 할 때가 되었다. 항만 지역에는 하이테크 기술회사의 압력은 내가 원래 하던 일보다 더 컸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글로벌 기업으로 근무평가가 매우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는데 업무 평가에서 하위 10%는 직업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일하는 부서는 기본상 모두 박사학위가 있으며 대부분 나보다 자질이 높은데 몇 사람은 국제적으로 비교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사장은 미리 예방차원에서 첫해의 평가결과는 보통 좋지 못하니 그리 마음에 두지 말라고 했다.

최후 평가에서 나는 “성공적(SUCCESSFUL)”이란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후반 50%에 배열되어 나로 말하면 의외의 결과였다. 사장은 내년 평가가 더 높아져야만 현재 평가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고해야할 세 가지 방면을 지적했다. 하나는 소통기능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잘 파악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지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일의 세부적인 것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단번에 미소를 지었는데 사실 이 세 가지 방면은 바로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내가 제고해야 할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교류원고를 쓸 때 나는 어제 밤 1시가 되어서야 겨우 완성해 원고를 올릴 시간을 진작 초과해, 원고를 심사하는 동수와 자신에게 고치거나 교류할 시간을 남겨놓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내가 제고하고 성숙해야할 방면이다.

금년 초 내가 일하는 항목은 본래 3월경에 결과를 내야 했지만 질질 끌다가 알지 못할 원인이 나타나 시간을 놓쳐버렸다. 내가 맡은 주요 책임은 설계였지만 매번 나타난 문제는 모두 완성품을 만드는 작업에 있었다. 비록 내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일하는 주 담당자로서 나는 압력이 있었다. 다른 동수가 일부 좋은 결과를 얻은데 대해 사장이 연말에 평가하던 말을 생각했다. 사장의 얼굴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이 급해졌지만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다. 나는 반드시 수련에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이것을 나에 대한 교란으로 여기고 발정념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차례 지나간 후 두 번째 결과가 좋지 않자 나는 자신이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으며 다른 동수를 찾아가 교류했는데 곧 사부님의 한 마디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대법제자라고 말하게 해야 한다. 가정의 일을 잘 처리해야 하고, 직장 환경 중의 일도 잘 처리해야 한다. 대법제자로서, 당신의 수련이 어떠한가는 세인들 앞에서 바로 이런 곳에서 체현된다.”(『2004년 미국서부법회설법』)

나는 과거에 줄곧 일을 잘하는 것은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다투지 않으며 싸우지 않는 것으로 여기거나 또는 일이란 밥을 먹기 위한 수단이라고 이해해왔다. 때문에 많은 경우 나는 일을 하는데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심태에 비교하면 속인 중의 일은 훨씬 대강했다. 아울러 속인 일을 하는 태도에는 명리심의 작용이 뒤섞여 있었는데 생각한 것이란 내게 좋은 결과를 주면 일을 잘 처리하고 성공적으로 관을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또 이 과정 중에서 일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이런 것이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일을 하는 자체도 책임감과 자비로운 심태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발견하자 나는 직장에서 힘껏 일하기로 자신을 요구했다. 사실 많은 경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진정으로 마음을 써서 하느냐에 달려있다. 직장에서 나는 최고의 효율과 정력을 집중해 많은 일을 처리했으며 어수선한 것과 내가 좋아하는 식대로 일을 하는 것을 감소시켰다. 이렇게 하자 비로소 나의 다른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아주 갑작스럽게 몇 주 만에 나의 일에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 원래 우리가 별로 중시하지 않았던 작업 중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결과를 얻었다. 이전에 우리는 세계적으로 다른 세 연구팀에 뒤처져있었다. 사장은 우리가 그중 한 팀도 영원히 초월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 결과는 우리가 처음으로 한 작업에서 나왔고 아직 비교적 낮은 수준의 실험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초점은 다른 작업에 있었고 많은 실험을 설계했으나 마지막에 이 작업은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그리 중시하지 않았던 이 일은 기술자가 일을 처리하는 순서에서 실수를 했는데 본래 설치한 고온 실험은 마땅히 고온처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 이 실수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 결과는 내가 올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초과했을 뿐만 아니라 2년에 걸쳐 완성해야 할 목표를 도달하게 했다. 사장은 매우 흥분해 회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전했다. 나도 단기간 내에 가장 유명한 잡지에 글을 발표했고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했다. 한 회의에서 이 분야의 매우 저명한 교수 한분이 사장에게 말했다. “아주 잘했습니다. 당신들이 세계기록을 세운 것을 축하합니다.”

나는 이 일체가 대법이 창립해 준 것임을 알고 있으며 늘 사부님의 자비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제자는 그저 약간의 제고를 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비할 수 없이 넓은 천지를 주셨다.

이 교류문장을 쓸 때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생각했으나 나의 상황을 아는 한 동수가 다음과 같이 격려해주었다. “이 경험을 써내는 것은 자신을 실증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몇 년간 지나온 수련의 길을 회상해보면 가장 기억나는 것이 정법 중에서의 수련은 우리 생명의 영원한 영광이라는 것이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발언고)

발표시간 : 2007년 11월 10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11/10/492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