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북경 대법제자
【정견망 2007년 11월 4일】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수행(修行)”은 늘 내 마음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었으며 “수행”인을 매우 존중했다.
1. 도에 입문해 법을 얻은 즐거움
1996년 “5월 1일” 전에 매일 딸의 방을 정리하다 책상 위에 한권의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늘 습관적으로 책을 서랍 속에 밀어 넣곤 했었다. 그런데 5월 1일 그날 이 책이 매우 예쁘다고 느껴졌고 도대체 무엇이 쓰여 있나 하고 한번 뒤적여 보았다. 아이쿠. 이는 보서(寶書)가 아닌가. 이는 내가 꿈에도 그리던 것이구나! 나는 읽고 또 읽으면서 책속의 법리(法理)에 흡인되었으며 읽을수록 마음이 밝아졌다. 출가할 필요도 없고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원만 할 수 있는 이런 좋은 일이 있다니!
딸은 이것이 파룬궁 서적이라고 알려주었고 자기 직장에서 한 의사가 파룬궁 (또는 파룬따파)을 수련하고 있다고 했다. 딸아이는 연공동작을 배우면 집에 돌아와서 내게 가르쳐주겠다고 했다(당시에는 어디에 연공장이 있는 지도 몰랐다). 나는 마음을 들여 동작과 가부좌를 배웠다. 매번 연공이 끝난 후에는 몸이 아주 가벼웠다.
정공(靜功) 연마를 시작했을 때 다리가 아팠지만 아파도 견뎠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책에서 말씀하시기를 다리가 아픈 것은 소업하는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대략 반년 정도 나는 침상에서 정공을 연마하며 다리가 아파도 이를 악물고 견뎠는데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때는 사부님의 한마디 말씀을 생각했다. “참기 어려워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노라.”
그러자 나의 좌골이 점점 열리는 느낌이 들었으며 다리가 그리 아프지 않았다. 그때부터 두 다리를 똑바로 놓을 수 있었으며 가부좌할 때 두 시간 반 내지 세 시간을 할 수 있어 두 시간 정공을 연마한 후 가부좌한 채 법공부를 했다(1999년 7.20부터는 시간이 부족함을 느껴 정공을 매일 한 시간씩 배치한다). 한번은 처음 법을 배우는 좌담회에서 세 시간 반을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계란 껍질 속에 앉아있는 것 같은 미묘한 감각을 늘 느낄 수 있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97년 8월 30일에 발생했다. 이미 월경이 끊어진지 1년 반이 넘은 나한테 생리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달거리가 오지만 많지 않으며 지금 단계에 조금 쓸 수 있는 정도면 된다.”(『전법륜』)
내가 포룬(抱輪)을 할 때 오른쪽 어깨가 낮다고 지적해주었지만 나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거울에 비추어 보니 정말 차이가 적지 않았다. “왜 그럴까? 아, 내가 원래 오른쪽 팔을 바로 펴지 못해 훗날 오른쪽이 왼쪽 어깨에 비해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잊고 있었구나.” 지금 시험해보니 신기하게도 양쪽 팔이 꼭 같아서 원래 잘 펴지 못했던 흔적이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습을 통해 사람의 인생은 인간이 되어 법을 얻기 위한 것이며 대법 수련 중에 반본귀진(返本歸眞)하고 원래의 본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 견정하게 대법을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큰 지혜라고 생각했고 이것으로부터 신사신법(信師信法)과 견정하게 수련하는 신심을 다졌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연공장이 있었고 법공부 팀을 조직했으며 법회를 열어 동수들과 서로 교류하면서 배운 것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면서 매일 즐겁게 법공부와 수련에 푹 빠졌다.
2. 법학습과 호법(護法) 중에서 수련
파룬궁을 수련하면 고질병을 낫게 할 수 있고 인심이 선으로 향하고 도덕이 되돌아 올라와 파경에 처한 가정을 무수히 구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며 국가와 백성을 이롭게 하니 수련자들이 날로 많아졌다. 그러나 사회에는 늘 넘어뜨리려는 사람이 있어 책을 금지하고 신문에서 파룬궁이 문제가 있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99년 4월, 천진에서 수련생들을 체포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은 우리 전체 수련생들의 마음을 촉발했고 그래서 99년 4.25 상방이 나타났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99년 7.20 박해이다. 그해 7월 21일 새벽 지역 경찰이 연공장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공을 연마한 후 우리는 상방하러 갔는데 상방하러 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잡혔고 나도 붙잡혀 모 체육관으로 끌려갔다. 잡혀온 동수들은 모두 큰 건물에 갇혔다. 사람들은 작은 범위에서 교류를 하며 어떤 사람은 법을 외웠는데 가장 기억나는 것은 어느 동수가 큰 소리로 “사부님께서는 “한 가지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미국 중부법회 설법』)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한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제자는 대법을 견정하게 수련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만이 바로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밤이 되자 나와 동수들은 풀려났다. 나는 본래 다음날 또 상방하려 했다. 당시에 나는 “이것은 정부가 파룬궁을 오해한 것이며 진정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어야 파룬따파가 좋은지 알고 어떠한지 다 잘 아니 우리가 천방백계로 정부에 찾아가 분명히 설명하고 실증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밀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내가 직장에 가서 통지하고 내의와 물컵 등을 준비하는데 우리 지역 경찰과 다른 경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눴고 점심도 먹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연공하는 것은 『전법륜』 속의 법리가 나를 흡인했기 때문이며 나는 이런 수련인이 되고자 한다. 나는 현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속고 속이며 서로 싸우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면 사람의 도덕이 회승하며 사회가 안정되고 가정의 행복이 오게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연공장에서 일부 관련되는 예를 들었다. 나는 또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정부에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정부가 파룬궁을 오해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짓인데 이 기회를 빌려 정치적인 자본을 얻으려는 것이다.”
“파룬궁이 좋기 때문에 수련자가 이렇게 많다. 정부의 이런 과격한 고집은 백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다.” 그러자 경찰의 눈언저리가 축축해짐을 볼 수 있었는데 그는 매우 감동한 듯이 말했다. “당신이 가서 문제가 생기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번 강조했다. “생각할 때는 냉정해야 하고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나와 연락하면 내가 당신을 보호해주겠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그는 비로소 나를 돌려보냈다. 막 도착하자마자 전화 한통을 받았다. “오후 3시에 텔레비전을 보시오. 내 성은 모씨요.” 텔레비전을 틀자 마침 “중요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나는 정서가 너무 격동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것을 다 듣고 나서….
나는 자신의 심태를 잘 다스린 후 정부의 “신방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가는 도중에 도처에 검문소였는데 우리는 “신방사무실” 입구 밖에서 가로막혔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잡혔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았다. 나는 수용하는 차가 있는 곳을 찾아가 나는 정부에 정황을 반영하러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경찰은 어리둥절하더니 “차에 타세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 이 차는 사람이 가득 찼으며 차 뒤에 또 빈차가 하나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모 체육관으로 끌려갔는데 체육관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잠시 후 또 모 소학교로 옮겨갔는데 이곳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잡혀온 사람들이 분산 수용되었는데 우리는 7,8명이 한 교실로 떠밀려들어가 심문이 시작되었다. 또 보증서를 쓰라는 핍박을 당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힌 후 23일 오후에야 풀려났다.
나는 소위 보증서를 쓰지 않았으며 그곳에서 나는 단지 “마음속의 말”을 한편 남겨놓았다. 내용은 이랬다.
1. 파룬궁 수련생들은 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니 나라와 국민에게 이롭다.
2. 정부는 파룬궁을 오해하고 있으며 이는 어떤 사람들이 책동한 때문이다.
3. 진정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사회 환경이 어떻든지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특히 그 자리에 있던 일부 책임자와 단독으로 기공에 대한 국가정책과 파룬궁을 수련한 초상적인 것에 대해 담화했다. 그는 사리에 매우 밝았는데 약 반시간 후 그는 상급자가 부른다고 하며 떠났다.
3. 사부님을 공경하고 법을 믿으니 생사에 담담해져
2001년 초 중앙 TV에서 “분신자살” 사기극을 방송한 후, 온 가족이 두려워하며 나더러 파룬따파를 포기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열 계획이었는데 남편, 아들, 며느리, 딸 또 한 살 된 손자까지 모두 다 왔다. 아들은 울며불며 말했고 남편도 울면서 말했다. “우리 연공하지 맙시다!” 나는 그들에게 매체는 근본적으로 거짓이며 사기라고 말했다. 그들은 믿지 않고 말했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도 『전법륜』을 보지 않았어요. 책에서는 명백히 살생을 하면 안 된다고 써있으며 또한 자살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스스로 분신을 하겠어요? 분신을 하면 신체가 없는데 그럼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요? 저 아나운서가 말하는 것을 보세요. 사람이 불탄 후에 연기를 무릅쓰고 말한다는데 파룬따파 서적 중에 어디 저런 말이 있나요?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무도 믿지 않을 겁니다.” 남편은 “그럼 거짓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보지 않았소, 우리를 건드릴 수도 있잖아? 이것은 탄압의 전조이며 문화혁명 때 무고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당신도 알잖소?” 그러나 나는 반드시 眞善忍을 수련할 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며느리와 딸이 모두 편지를 써서 나더러 신중하라고 하면서 전 가족의 안전을 고려하라고 했다. 나도 거듭 나의 사고를 정리했다. “사부님께서는 위대하시며 대법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하다. 사부님께서 내게 안배하신 수련의 길은 잘못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반드시 견정하게 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사의 선택”이란 글을 써서 내 마음의 소리를 기록했다.
그때 이 후 직장에서 나를 찾아와 잠시 보너스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연말 평가에 정치 불합격으로 한다고 했다.(그럼 결과적으로 승진할 수 없다) 또한 부서를 합병한다는 이유로 나의 직책을 취소했다.
99년 9월 10일 나는 서기(시 정치협상회의 위원)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파룬궁을 소개하면서 내가 대법을 견지하겠다는 뜻을 표명하는 동시에 서기에게 파룬궁을 이해하고 상부에 잘 보고해 달라고 했다.
파출소에서 오늘은 나를 찾아와 표를 적게 하고 내일은 직장을 찾아와 보증하라고 했으며 다음날에는 또 집에 찾아와 위협했다. 내 주위의 환경은 매우 긴장되었다.
2000년 3월 어느 날, 직장 보위처장이 나를 보위처로 불렀다. 지역 경찰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경찰은 말했다. “아내가 집에 없어서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당신의 정황이 매우 단호함을 나는 알고 있다. 서명을 하면 내가 가서 적당히 처리하겠다.”
며칠 후 나는 꿈을 꾸었는데 눈앞에 큰 나무가 있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이 나무에 올라가야 했으며 이것이 내가 꼭 지나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막 나무에 도착하니 이 나무는 미친 듯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나뭇가지를 단단히 잡고 발로는 가지를 밟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아무리 미친 듯이 불어도 나를 흔들어 내려가게 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큰 나뭇가지와 함께 떨어져 내려왔다(나뭇가지는 매우 굵어서 거의 나무의 절반이었다). 깨어난 후 나는 사색했다. “이렇게 뚜렷한 꿈을 꾸었으니 사부님께서는 내게 무엇을 점오하시는 것일까? 알았다, 내가 인정에 집착해 이용당한 것이구나.”
나는 즉시 보위처장을 찾아가서 말했다. “경찰이 와서 기록한 것은 내가 시간이 없어서 잘못 본 것이며 내가 인정이 무거워 이용당한 것이다. 당신이 나하고 파출소로 가서 기록한 것을 지우거나 고쳐야 하겠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대법을 수련한 이래 모호한 적이 없었습니다.” 처장은 자신이 가서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나를 데려가면 효과가 좋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감격하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선생님의 좋은 학생이군요!” 이 일은 줄곧 2004년 “짐승의 기호를 없애는” 계발을 받을 때 까지 지속되었고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엄정성명을 썼다.
2000년 이후 나는 여러 차례 상무위원회, 신방사무실, 중앙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서 정황을 반영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파출소에서 나를 찾아와 기록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여러 차례 정부기구와 국가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서 파룬궁을 바르게 대할 것을 호소하며 잘못된 말만 듣고 파룬궁을 탄압하여 조성한 손실을 만회하려고 했다. 아울러 기록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탄압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갈수록 심해졌다.
2000년 7월 19일, 나는 다른 세 명의 동수들과 함께 천안문에 갔다. 우리는 서쪽 역에서 차를 탔다. 두 동수는 버스에서 천안문을 지나가는 길에 광장을 향해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 하는 플래카드를 펼쳤다. 나와 또 다른 동수는 각자 두 개의 작은 플래카드를 지니고 광장으로 들어갔다. 기회를 보아 사람이 많은 곳에 플래카드를 높이 들고 여행객에게 달려가서 큰 소리로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 를 외쳤다.
그 느낌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듯했는데 정말 좋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는데 아마 몇 분이나 몇 초쯤 되었으리라. 우리는 경찰에 잡혔고 사복경찰이 우리를 차에 끌어넣으며 악독하게 밀어 넣고 욕을 했다. 나는 “당신은 누구인가? 입이 왜 그리 더럽소? 그게 어디 인민경찰의 모양이오!”라고 말했다. 어떤 악경이 나쁜 말을 퍼붓고 사부님을 욕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 사람의 마음이 나왔고 속인의 말이 튀어나왔다. “좀 참으시오, 경찰이 되어 그리 어찌 야만적이오.” 그는 매우 화를 내더니 전기봉으로 힘을 다해 나의 왼쪽 팔을 충격했는데 약간 마비되는 감각뿐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감당하신 것임을 알았다.
이어서 두 대의 차가 천안문에 도착했다. 또 붙잡힌 몇 사람을 데리고 천안문 파출소로 달려갔다. 파출소에서 나는 아무도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대는 것을 듣지 못했다. 경찰은 이런 굴복시킬 수 없는 사람들을 보자 매우 화가 나서 잠시 후 한발로 차고 또 한 대 때렸으며 한 경찰은 한 사람의 머리를 끌어당겨 있는 힘을 다해 벽에 부딪혔으니 정말로 인성이 없었다. 잡혀온 대법제자는 몇 개조로 나뉘었고 우리는 좁은 방에 갇혀 차례대로 심문을 받았다.
한 여경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천안문에는 왜 왔는가?” 나는 힐끗 보고 말했다. “말해줄 수 있지만, 단 조건이 있다. 내가 한 말을 상부에 반영한다고 보증해야 한다. 나는 생사를 내려놓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한번 보더니 가버렸다.
천안문에는 매일 청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잡혀왔으며 다 수용하지 못해 수시로 밖으로 내보냈다. 나는 이번에 천안문에 잡혀 7일간 갇혀 있었고 9개의 공안국, 파출소, 간수소, 구류소등을 출입했다. 비록 불법적으로 어디에 갇혀 환경은 매우 나빴으나 나의 머리는 매우 뚜렷했다. 나는 원칙이 있었다. 내가 걸어 나온 것은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며 대법제자의 정기, 흉금과 이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장소에 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죄인인가? 왜 죄수의 것을 먹으려 하는가?” 나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자연스레 단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존중하지 않는 심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한 경찰이 의자에 앉아 조소하듯이 입구에 서 있는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다가 물었다. “왜 말이 없는가?” 나는 “실수하지 마시오, 나는 죄인이 아니며 당신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공민이오.” 그는 의자를 당겨 와서 말했다. “앉으세요.”
그래서 나는 그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엇이 파룬궁인지 왜 천안문에 와서 법을 실증하려고 하는지 파룬궁은 조직이 없고 수련인들이 자각적으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점심 먹을 때가 되어 나는 그에게 가족들이 기다릴 테니 먼저 집에 돌아가 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는 매우 감동한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데 아직도 다른 사람을 고려하다니 파룬궁은 모두 이런가요?” 나는 “그렇소”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파출소에서는 한 경찰이 나를 자기 사무실로 단독으로 불러 말했다. “내가 기회를 주겠소, 당신이 말을 하면 곧 집으로 보내줄 것이오. 집에서 연공하면 되고 다시 나오지 마시오. 잘못하면 월급도 없을 것이니 이후 생활을 어찌하겠소!” 나는 말했다.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지만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 최후에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설득하려 했는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가르쳤구먼. 허허, 돌아가시오!”
어느 구류소에서 수감된 죄수가 수련생을 때렸으며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체벌을 가했다.— 사람을 세워놓고는 대야의 물을 목에 붓는 것인데 질식할 것 같았다. 내가 이런 마난을 겪는 동수 앞을 지나가는데 그들은 나를 모질게 밀었다. 어떤 동수는 두들겨 맞아 코가 퍼렇게 되었고 얼굴이 부었다. 또 어떤 동수는 맞아서 절름거렸고 서로 부축해야 했다.
나는 또 다른 공안국으로 보내졌는데 두 사람이 나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가 내 앞에 차를 따르고는 여직원들이 나를 매우 존중했다. 이 때는 내가 단식한지 5일째여서 입술이 붙어 있었다. 나는 생각하기를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며 사람들에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게 하고 정부가 잘못을 하고 있다고 말하려고 온 것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가? 그래서 한편으로 물을 마시면서 그들 두 사람과 말을 했다. 그들이 자기 소개를 했는데 한 사람은 ××주임이었고 또 한 사람은 ××대대장이었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들으면서 또 때로 질문을 했다. “파룬궁이 정말 그렇게 신기한가요? 당신 정말 계속 할 건가요? 천안문 경찰이 정말 그렇게 야만적인가요?” 나중에 그들은 말했다. “당신은 선생님입니다. 우리를 설복시켰으니. 돌아가세요! 우리가 보내줄 테니 전화를 걸어 가족들이 당신을 데려가게 하세요!”
내가 말했다. “내가 온 것은 돌아가려고 온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좋은 사람을 잡고 싶으면 잡고 때리고 싶으면 때리는데 어디 이런 법이 있는가? 백성들은 수련을 통해 좋은 신체를 얻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도 안 된다고 하니 무슨 생존권이 있다고 하겠소? 전화를 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우리 집 주소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겠소? 당신들이 내가 어디에 사는지, 직장, 소재지, 식구들 모두 연루될 것이 아니겠소? 당신들은 근본적으로 우리를 잡아서는 안 되며 지금 어떤 조건도 없이 나를 돌려보내야 하오!” 그 주임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식구들에게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우리를 찾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공중전화로 나가서 걸면 내가 보내줄 테니 아니면 휴대폰을 쓰세요.” 공중전화나 휴대폰이나 조사하면 금방 나올 것이기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때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사람이 들어왔는데 자칭 대대장이라고 하며 말했다. “그녀에게 스스로 휴대폰을 쓰게 하시오. 나중에 어떻게 지우는지 가르쳐 주면 될게 아니오.” 나는 이 말에 속아 매우 후회했고 또 화가 났다. 그들은 좋은 말로 말했다. “언니 가보세요! 우리가 당신을 노교소로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요?” 결과적으로 지역 경찰 직장 보위처장, 남편, 딸이 모두 왔다. 나를 데리고 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의 파출소 입구에 도착하자 또 식구들더러 먼저 가라고 했고 나는 또 기록을 남겨야 했다. 잠시 후 또 상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틀이 후에 풀어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또 불법적으로 현지 간수소로 보내졌다. 나는 자연히 단식했고 남편이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갈 때까지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픈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감시당하고 있었다. 11월 경 내가 쓰는 컴퓨터, 인쇄기 또 한 권의 『전법륜』등을 모두 빼앗겼다. 부친이 입원해 내가 가서 돌보았는데 또 조사했고 온 가족과 부모들도 모두 불안해했다.
2001년 11월 말 어느 날 오전 8시 경, 직장 당 주임, 보위처장, 경찰이 우리집을 찾아와 나를 붙잡아 세뇌반에 보내려 했다. 그들이 나를 설득할 수 없자 또 원장과 서기가 왔다. 허! 또 한층 높은 단위인 보위처 처장이 와서 삼륜차를 건물 아래에 두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는 보안이 왔다갔다 했고 입구에도 보안이 문을 지켜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당신이 가지 않으면 우리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왜 내가 세뇌를 받아야 하는가? 나는 일을 성실히 하며 잘못한 적이 없고 가정도 화목하고 내 신체는 매일 즐거운데 당신들이 나를 전화하여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오? 다시 말해 내가 어디 좋지 않다는 것인데 나는 대법 중에 바르게 돌아가려고 하며 절대 당신들의 그런 관심이 필요 없소, 그것은 박해요.”
나는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했다고 느끼고 작은 방에서 조용히 발정념하며 누가 문을 두드려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되자 나는 비로소 그들이 떠나가도록 발정념할 것을 생각했고 가지 않으면 그들에게 두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0여분 후 그들은 가버렸다.
지난 수년 동안 나는 이렇게 압력을 견디며 법공부, 연공하며 진상을 알리고 시련에 부딪치는 중에서 갈수록 법공부를 잘 하는 것이 수련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정진실수하며 법 중에 용해되다
『9평』이 세상에 나오자 나는 중공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었으며 중공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비로소 진정하게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우주의 법을 바로잡고 계시기에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조사정법해야 한다. 중공 사악을 폭로하는 것은 박해를 제지하기 위함이며 중생 구도야말로 비로소 반박해의 기점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컴퓨터를 잘 이해하진 못하지만 줄곧 자료를 만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동수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고 때로는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셔서(기술적으로 도울 수 있는 동수가 없을 때) 문제에 봉착하면 갑자기 이렇게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번 시도해보면 잘되었다. 평소에 자료를 보낼 때는 동수가 무슨 자료를 필요로 하는지 알았고 얼마나 필요한 지 무슨 의견과 요구가 있는지 알았다. 나는 인터넷에서 접속하여 가장 먼저 사부님의 신경문을 볼 수 있었고 대법 사이트의 문장을 일찍 많이 보았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일이 있으면 늘 나와 교류했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셨다. “이지(理智)로써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眞象)을 똑똑히 말하고, 자비로써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救渡)하라” (『정진요지2』 「이성」)
나는 고졸의 퇴직자로 진상자료가 몸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요구했으며 평소 집을 나설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료를 충분히 가져왔는가 하는 점이다. 쇼핑할 때는 비닐 봉투에 한 장짜리 자료, 소책자, CD, 『구평』등을 가지고 다니는데 자동차 문틈이나 혹은 사람의 손이 잘 닿는 곳에 놓으면 매우 편리하다. 공원에 갈 때는 일반적으로 약간의 진상스티커를 가져 간다. 비교적 나를 잘 이해하는 동료나 이웃에게 『사부님 은혜』를 주어 대법과 제자들에 대해 이해하도록 했다. 『구평』은 매우 소중해서 나는 늘 만나는 사람마다 주려고 한다.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서 『구평』을 주면 받는 사람이 매우 기뻐한다.
한번은 진상용 소모품을 살 때 케이블을 파는 사람에게 『구평』을 주었더니 그는 감격했고 다음날 보니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나는 여러 차례 진상을 기초로 하여 동료와 가족들을 방문해 전가족을 “삼퇴”시켰으며 내가 원래 있었던 과(科)와 실(室)의 동료들을 전부 다 돌아 다녔다. 나는 직장의 단체활동을 통해 겨냥성 있는 자료를 만들었다. 어느 처장은 아들이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의 기술자여서 늘 아들이 있는 곳에 갔는데 나는 그에게 “신운”과 『9평』 CD를 주었다. 행정 간부를 겸한 한 교수는 2003년 일찍이 내게 신의 존재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의 가까운 대학 동창이 계급이 매우 높은 군인이었는데 당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서 늙은 부부가 아직도 감옥에 불법으로 갇혀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곧 그녀에게 진상을 말해주면서 진상 소책자를 주었고 박해로 사망한 한 파룬궁 수련생의 영전에 나타난 신기한 현상을 이야기했으며 중공의 부패와 “삼퇴” 조류를 말해주었고 『9평』, “신운” CD를 주었다.
원(院)의 한 조직부장은 평소 나를 “자매”라고 부르는데 간부처에서 그녀에게 생일을 축하할 때 나는 『9평』, “사부님은혜”와 정교하게 제작한 호신부를 주었다. 간부처장, 보위처장은 나와 접촉이 매우 많았는데 그들은 파룬궁에 대해 기본적 진상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4.25”상방, 가짜 “분신자살”, 약을 먹는 문제, 병치료 문제와 소위 정치를 한다는 등이었다. 나는 나의 이해를 근거로 진지하게 해답해 주었고 나중에 일부 관련 자료를 주었다.
기회를 잡을 수 없을 때면 나는 아주 후회스러웠다. 한번은 간부들의 휴가를 조직하는데 원래 맑스-레닌 계열의 주임과 내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자리가 나와 멀어 나는 사부님께 그가 내 옆에 가까이 앉게 해달라고 요청드렸다. 아울러 “신운” CD와 “윤회전생” 소책자를 준비했다. 마지막에 그녀가 정말 내 옆에 앉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차례 기회를 낭비했고 그 자리에서 주저했다. 어떻게 사부님의 얼굴을 대할것인가? 뿌리를 깊이 파 보았다. 다른 사람이 체면을 세워주지 못하면 자존심을 상할까 두려워한 것이 아닌가? 그 체면이나 자존심은 사람의 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반드시 수련해 버려야 할 것이다.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사실 중생은 모두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7월 경 나의 시누이가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고향에 돌아가 시누이 남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는 거의 모두 진상자료를 받아보았고 대부분 대법제자가 직접 진상을 알린 것을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모두 서로 감추었는데 지금은 이미 대놓고 논의하며 두 부부도 모두 삼퇴에 동의했고 아울러 몰래 대법제자를 돕겠다고 했다.
부친은 퇴직한 당간부인데 『전법륜』을 보았고 사부님에 대해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9평』을 본 후 아버님은 말씀하시길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부친은 80세 때 뇌혈전을 앓았고 암에도 걸렸는데 지금 거의 90세가 되셨어도 정신이 분명하고 신체도 매우 좋으며 부부가 모두 탈당했다.
그러나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은 아직 탈당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연공하는 것을 지지하며 누구라도 나를 찾아와 번거롭게 하면 혼자 감당했다. 만일 직장 서기가, “당신은 어째서 아내를 단속하지 않는가?”라고 하면 그는 “내가 무엇을 상관하겠습니까? 그녀는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잡아 세뇌반에 보내려 하면 그는 “우리 집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안팎에서 모두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며칠 후 돌아올 때 현재 상태로 돌아올지 누가 보증하겠소?”라고 거절했다. 그는 매달 내게 자료를 만들라고 돈을 주는데 그는 대법이 좋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박해를 제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대법자료를 보지 않으며 하루 종일 신문과 TV만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마치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처럼 가족에게 아주 진지하고도 진지하게, 자세하게 말해야 한다.”(『각 지역 설법』 『미국국제법회설법』)
“남편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나?” 나는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 그가 구도받게 하고자 했다.
2005년 연말(구체적인 시간은 기억나지 않음) 사구(社區) 부주임과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정중하게 그들을 청해 자리에 앉게 했다. 경찰은 높은 자세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이 아닌가?” “아! 죄를 물으러 오셨군요.” 하면서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지금도 연마하고 있소?” “그렇습니다, 왜 연마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백성이 신체를 건강하게 할 권리나 사상경지를 제고하고 좋은 사람이 될 권리도 없단 말입니까?” 나는 또 말했다. “경찰도 이것을 법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명백히 자기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있지 않나요. 눈 앞의 밥그릇만 고려해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미래가 있을 것을 먼저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떠날 때 그는 매우 정중히 말했다. “나는 새로 온 지역 경찰인데 앞으로는 함부로 와서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2006년 음력 설날 전에 또 사람이 찾아왔다. 사구(社區) 주임과 부주임이 찾아왔는데 새해 선물을 가지고 왔다. 주임은 “우리가 온 이유는 우선 서로 잘 아는 사이에 얼굴을 보고자 함이며 둘째는 지난번에 왔던 경찰이 무례를 범해 사과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말했다. “파룬궁은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한 것은 여러 차례 권력을 보호하는 운동과 마찬가지로 위에서 정죄하려 하자 아래에서 “가짜증거”를 날조해 군중을 속이고 선동하며 중공이 위협적이라고 보는 사람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그것의 지휘를 따르지 않으면 바로 타도 대상이 되며 희생양이 됩니다. 우리 백성들은 늘 그것을 상대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압니다. 속담에 당신이 천 가지 오묘한 계략이 있으면 나는 한 가지 규율이 있다고 했듯이 위에서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도 대책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고 또 일부 불만을 터트렸다.
신의 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이 정진하지 못해 오성이 낮다고 스스로 비하한 적이 있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잘하지 못하여 자책한 적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대법이 조성한 생명임을 아는 것이며 내 생명 중의 일체는 모두 대법 수련 중에서 바로잡힌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비하신 사존께서 보호하고 계시고 나를 점오해주시니 나는 매우 행복하다.
(제 4회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서면교류대회 교류원고)
(명혜망에서 전재)
발표시간 : 2007년 11월 4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11/4/491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