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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깨달음: 방향, 인과, 감사

작자: 해외대법제자

【정견망 2007년 11월 24일】

1. 방향

한 상점을 가려면 퇴근하여 귀가하는 길 부근에 있었다. 차가 출발한 후에야 지도를 가져오는 것을 잊었음을 발견했다. 내 기억에 대략 어느 거리 부근이라 그냥 출발했다.

고속도로 출구에서 나온 후 처음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나중에 길이 종횡으로 교차하여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로 들어섰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려 했고 길이 복잡하여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느낌에 따라 운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우연히 그 상점을 찾았다. 그런데 물건을 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차를 타고 여전히 감각에 의존했다. 운전하다 보니 큰 도로에 도착했는데 이전에 가 본 적이 있는 길이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안정되었고 잠시 후 집에 도착했다.

지나간 후에 생각해보니 운전할 때 속도도 물론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방향이었다.

최근 한 단락 시간 일이 매우 바빴다. 그리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거의 쉰 적이 없었다. 정신도 좀 멍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도 몰랐고 생각처럼 뜻대로 되지도 않았다.

얼마 안가 또 깨달았는데 아마 내 수련의 길도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런 복잡한 환경 하에서 각종 방면을 모두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에 봉착할 때 자기가 하는 기점이나 취한 방식, 얻은 효과가 모두 수련인의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을 올바로 할 수 있고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2. 인과

직장에선 늘 누가 어느 동료와 잘 지내지 못하거나 어느 부문에서 일을 질질 지연시킨다는 원망을 하는 소리를 듣는다. 때로는 나도 불만이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어렵고 다른 사람이 잘 돕지 않는다는 등의 느낌이다.

어느 날 법공부를 마친 후 다시 이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태도가 좋고 어떤 사람은 자신에 대한 태도가 좋지 않다고 하여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는데 일과의 관련이나 역사적인 연원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 하에서 만약 당신이 나를 원망하면 나도 당신을 원망하거나 혹은 오늘 당신이 나를 잘 대해주지 않으면 다음에 나도 똑같이 대한다면 이렇게 순환 왕복하여 응어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며 서로 간에 쌓인 원망이 갈수록 커질 텐데 어떻게 해탈할 수 있겠는가?

대법 수련자로서는 이 일체를 초월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층층의 생명이 모두 불순해졌고 최후의 그 생명까지도 다 불순해졌다. 나를 도와주는 동시에 그것들은 그것들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심(私心)을 숨겨두었으며,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려 하면서도 자신은 개변하려고 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움직이려 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을 최대한도로 보전(保全)하려고 한다.”(『북미순회설법』)

만약 우리가 일을 대함에 있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동기에서 나온다면 표현이 어떻든 간에 은혜와 원한의 충돌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실질상 아직 속인이기 때문이다. 진정하게 그 생명을 위하고 그 생명을 위해 책임지며 그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대해야만 비로소 그(그녀)의 마음속에 맺힌 것을 풀 수 있으며 동시에 법의 아름다움을 보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불만이 있을 때 속인처럼 그것이 제멋대로 지나가게 하거나 질질 끌게 할 수는수 없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서 자신에게 제고할 것이 있는지 없는지 깨달을 수 있지 않는가? 만약 대법이 육성한 한 생명이 이 일에 부딪친다면 가장 좋은 대처 방식과 효과는 어떻겠는가?

3. 은혜에 감사

법공부할 때면 늘 법 속에 있는 깊은 내포를 느끼는데, 많은 일과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법에서 모두 말했다. 단지 자신이 법을 공부할 때 충분히 마음을 쓰지 못하거나, 일에 봉착했을 때 사심이나 속인의 관념 때문에 법에서 가르친 방식대로 하지 않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수천 년의 문화적인 기초로부터 우리가 능히 법을 이해할 수 있고 법을 인식할 수 있게 했으며 완전히 자신이 진정하게 마음을 써서 배우고 깨닫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 세상을 보자면 무수한 창생(蒼生)과 만상(萬象)이 우리가 법으로 대하는지 보고 있다. 우리가 법에서 승화해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자신과 중생을 구할 수 있다.

자신의 무엇을 위하거나 개체 생명의 일시적 표현을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하게 그 생명을 위해 책임져야 하고 대법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순정하게 하는 동시에 중생 구도의 장애가 되는 굴레를 풀어야 한다.

마음속에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감사 외에 이미 다른 것이 없다.

발표시간 : 2007년 11월 24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11/24/495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