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전자시계 이야기
작자: 길림시 대법제자 정비(正非)
【정견망】
세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2003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차례로 세 개의 전자시계를 샀다. 이 시계들은 같은 규격에 글자판도 같지만 바늘이 돌아가는 표현이 달랐는데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2003년 초 정념으로 노교소를 뛰쳐나왔다. 막 노교소를 나왔을 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가지 일 중 하나인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았다. 특히 밤 12시 정각발정념을 하지 않았다. 동수와 교류한 후 동수는 자명종 기능이 있는 시계를 사라고 건의했다. 이 역시 법을 위해 온 것이며 매우 편리하다고 했다.
전자시계를 산 후 매우 편리했는데 특히 밤중에 수탉이 우는 소리를 흉내내는 소리는 너무 진짜 같아 아무리 깊이 잠이 들어도 깨었다. 이때부터 매번 네차례 전세계 통일 발정념 시간은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결점이 있는데 한 시간에 한번씩 소리가 나서 종종 막 잠이 들자마자 깨어야 했다. 스위치를 누르고 키는 것을 늘 잊어버려 발정념 시간을 잘못 알았다.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고 내버려 두었다. “습관이 되면 적응되겠지.”
말하자면 이상한데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전자시계의 소리가 변한 것을 느꼈다. 높은 목소리가 부드러운 어린 처녀 소리처럼 변한 것이다. 전에 귀를 아프게 하던 소리가 듣기 좋게 변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잠자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자명종 소리가 왜 작아졌을까? 건전지의 힘이 떨어진 탓일까? 그러나 전지가 약하다면 시간을 알리는 것은 왜 정확한가? 마침내 대법에서 답을 찾았다. <전법륜>에서는 “사람•동물뿐만 아니라 또한 식물에도 모두 생명이 있는데, 다른 공간에서는 어떤 물질이든 모두 생명으로 체현될 수 있다.”라고 했다.
전자시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갈수록 인성(人性)과 통한다. 이때부터 나는 더욱 그것을 아꼈다. 그러나 사물은 늘 반대방향으로 발전하는데 아낄수록 아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한번은 목욕하려고 옷을 갈아입을 때 시계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작은 시계 껍질이 갈라져 글자가 찌그러져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당시 나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 시계에 대고 몇 번이나 “미안해, 용서해줘” 라고 했다. 시계를 수리점에 가져가서 껍질을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수리점에서는 바꾸어주지 않았으며 십 몇 위안짜리는 버리면 되지 나더러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했다. 나는 나오는 대로 한마디 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모질어요!” 그러자 수리하는 사람은 한동안 나를 멍하니 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수리점에서 고쳐주지는 않고 시간을 보려니 불편했다. 그러니 그저 밤에 자명종 용도로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것을 사서 외출용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새로 산 시계는 시간을 알리는데 또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 아예 잠이 들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그것을 부엌에 두고 옛날 것을 머리맡에 두었다. 그러나 주방에 있어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옛날 것을 쓰고 새것을 사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했다. 잠을 자지 못하니 온갖 허튼 생각이 다 났다. 비록 일체는 법을 위해서 왔지만 무엇 때문에 대법제자가 필요한 대로 따르지 않는가?
내가 전자시계를 만들 수 있다면 반드시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수요에 따라 회로를 만들어 저녁 9시 이후에는 다시 알리지 않고 12시만 알리고 다음날 6시 다시 울려 발정념하면 되게 할 텐데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흘째 밤, 전자시계는 9시에 울리고 나서 10시, 11시가 되어도 울리지 않았다. 12시가 되자 울리고 6시가 되어야 울렸다. 처음에 나는 우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으며 아마 밤에 내가 너무 깊이 잠이 들어 듣지 못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일로 여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이후 날마다 이와 같았다. 감탄했다. 새로 산 시계는 옛날 시계에 비해 더욱 영성이 있구나. 기뻐서 그것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시계야,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법기란다. 너는 반드시 이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조사정법하는 것을 도와줘. 장래 내가 너를 데리고 우주의 아름다운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갈게.”
그러나 좋은 시간을 길지 않았다. 2009년 초여름 나와 동수가 교동반도에서 돌아다니며 진상을 할 때 어느 여관에서 한밤중에 큰 버스에 올랐는데 급히 떠나느라 시계를 침대 위에 두고 잊어버렸다. 여관 주인이 40대 여자였는데 떠날 때 그녀에게 진상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진상을 안후 전 가족 삼인을 대표해 삼퇴했다. 나는 그녀와 가족들이 좋은 미래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전자시계를 그녀에게 쓰라고 남겨놓았다. 하지만 나는 차를 타서 그녀에게 전화를 하니 그녀는 잘 보관하겠다고 하며 내가 다시 올 때 주겠다고 했다. 나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냥 쓰라고 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잘 아껴달라, 그것은 영성이 있으니 당신에게 좋은 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2010년 4월 초 나는 원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가 잘못해서 껍질이 부서졌던 그 시계는 피로한 줄도 모르고 일초도 틀림없이 시간을 보여주었다. 자명종 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4월 말 어느 날 내가 막 오전 6시 발정념을 마치자 그것은 지지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보니 시계판은 이미 엉망이 되어 모두 까맣게 되어 숫자를 전혀 볼 수 없었다. 어쩐 일일까,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전지가 다 닳았을지도 모른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7년이 지났다. 좋은 전지라야 수명이 3-4년 인데, 이미 7년을 썼으니 이미 보통을 훌쩍 넘었다. 반드시 약이 다 소모되었음을 알고 약간의 에너지가 남았을 때 내게 애절한 고별의 소리를 냈을 것이다. 이같이 생각이 미치자 나는 비할 수 없이 슬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자시계야, 7년간 나를 위해 조사정법 했으니 큰 공로를 세웠다. 나도 너를 버리고 싶지 않다. 보람찬 것은 네가 대법제자의 법기가 될 수 있었으니 그것이 너의 조화이며 인연이 있어 대법에 동화되었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게 되었다. 너는 즐겁게 떠나라.”
연공인은 전자시계를 사용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다. 한번 잃어버리면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나는 즉시 상점에 가서 이전의 두 개와 같은 종류의 것을 샀다. 같은 표면 얼굴을 가진 전자시계였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만일 이 시계도 밤 9시에 이후에 울리지 않고 다음날 6시가 되어 울리면 얼마나 좋을까! 과연 첫날 밤 그것은 바로 이렇게 표현했다. 특히 밤 12시의 울림은 수탉이 바로 앞에서 우는 것처럼 울었는데 음성은 밝고 또 시간이 길었다.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치지 않았다. 나는 기뻐서 스스로 말했다. 정말 나중 것이 더 낫구나, 이전에 두 개보다 더욱 영성이 있군.
여기까지 세 개의 손목시계 이야기는 끝이다. 이로부터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대법제자 매 한사람은 다 능력이 있다. 다만 표면공간에 표현되지 않아 공능이 없다고 여길뿐이다.”
그러나 이 공능의 운용과 신통법력은 사악의 박해를 제지 하는데는 좀 다르다. 사악을 대함에 반드시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하며 심태가 안정되고 집착이 없어야 한다. 완전히 그를 위하는 자비심이어야 비로소 공능이 나올 수 있다. 전자시계에게 대법제자의 필요에 따라 시간을 알리라고 했을 때 무슨 두려운 마음이 없었으며 심태는 안정된 등의 전제 조건이 있었다. 우리는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려는 이러한 출발점만 있으면 된다. 표면상 보기에 나는 자기의 수면에 위”사(私)”위아한 성분에 영향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는데 밤에 휴식을 잘해야만 정력이 있어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결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종래 신통법력을 움직여 전자시계의 기능을 바꾸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정말 세 번째 시계를 샀을 때 방금 사가지고 돌아온 후 나의 생각대로 시간을 울렸을 때 나조차도 나의 공능이 일으킨 작용인줄 알지 못했다. 나는 줄곧 사부님의 법신이 나를 보호해주신 것으로 여겼다.(물론 이런 생각도 틀리지 않다. 왜냐하면 “수재자기 공재사부”이기 때문에) 최근에 내가 동수와 절차했을 때 동수가 나의 공능이 일으킨 작용이라고 했다.
나는 진지하게 사부님의 공능과 유관한 법을 학습했는데 전시시계의 전후 과정을 회상해보고 나서 비로소 동수의 인식을 인정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설명한다. 만일 내가 먼저 신통을 운용하여 전사기계가 내가 원하는 대로 울리게 하자고 생각했을 때 아마 머리가 아프기만 하고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추구하면 할수록 집착이며 집착할수록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신통을 운용할 생각이 없으며 다만 알게 모르게 이렇게 생각한다면 되고 안 되고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고 많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러면 곧 사부님이 말씀하신 “구함이 없이 저절로 얻게 되는” 법리에 부합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우주 중의 어떤 물질이든, 전체 우주 중에 꽉 차있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여 모두 영체(靈體)고, 모두 사상이 있으며, 모두 우주의 법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존재하는 형태다.” 것이다. 첫 번째 시계의 변화과정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이방면에 <명혜주간>에 많은 동수들의 체험이 있다. 이만큼만 말한다.
이상은 개인의 작은 경험인데 동수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타당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지적을 바란다.
발표시간:2010년 6월 11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6/11/666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