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법회]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고 정법수련 중에서 정진하다
[정견망]
글/ 해외 대법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 2009년 우연한 기회에 나는 수련에 들어섰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파룬궁을 들은 적이 있고 친척 중에도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 기회가 있어도 대법을 스쳐지나갔다. 2003년에 미국에 온 후 사당(邪黨) 선전의 영향을 받아 파룬궁이 정치를 한다고 오해했고 몇 번이나 사이트에 있는 연공장 연락처에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전화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늘 무언가가 나와 대법 사이를 가로막는 것을 느꼈다. 2009년 하반기 어느 날 몇몇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건강에 대한 일을 말했고 나 또한 어디에서 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자네 누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아는가, 나도 파룬궁을 연마하고 싶어”라는 한마디 말을 했다.
그 당시 한 사람이 아는 사람이 있다고 바로 말했고 그녀 친구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부터 병이 모두 나아졌다고 했다. 이후에 이 제자는 나에게 메일을 보냈고 우리는 만났는데 마치 가족을 만난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법공부하게 하고 연공을 가르쳐주었으며 그후부터 나는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전법륜”을 통독하고 사부님의 모든 신경문을 읽었다. 진상자료를 보고 “밍후이왕”에 접속했다. 나는 연공을 한지 얼마 안 되어 파룬이 아랫배에서 끊임없이 도는 것을 느꼈다. 또 파룬이 나를 향해 나는 듯이 회전하며 오는 것을 보았는데 수련을 끝까지 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2. 수련하겠다고 결심하자 요통이 사라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요통이 있었다. 심할 때는 허리를 굽힐 수 없었고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통증으로 허리를 펴지 못했으며 늘 엎드려서 잠을 자는데 많은 돈을 써가며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바로 2009년 내가 수련을 결심한 어느 날 아침 깨어났을 때 허리부위에 무거운 물건이 매우 묵직하게 내리 눌러서 움직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고 내가 무슨 영문인지를 알려고 할 때 갑자기 사부님께서 먼 곳에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이 날 아침부터 내 요통은 신기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한번은 나는 반시간 정도 제2장 공법을 연마하고 어깨 통증이 나아졌다.
3. 션윈을 보고 복통이 사라지다
예전에 나는 집에서 션윈공연 전단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코스트코에서 제자가 션윈티켓을 판매하는 것을 보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수련에 들어선 후 동수는 나보고 반드시 션윈을 봐야 한다고 했고 나는 동수에게 부탁해서 티켓을 구매했다. 그러나 션윈 공연 몇 주 전에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여 나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다시 돌아오려 했지만 비행기가 만석이라 며칠을 기다려도 자리가 없었다. 나는 공연을 볼 기회를 곧 잃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기 몇 시간 전에 항공사에서 나에게 빈 좌석 하나가 남았다고 알려주었다.
덕분에 비록 나는 첫 번째 공연을 놓쳤지만 나는 또 바로 다음 공연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션윈을 보았고 그때 파룬이 나의 윗배에서 끊임없이 도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소장과 위가 좋지 않았다. 대학 졸업한 후 혈변이 생겨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 귀국해서 어머니를 돌보면서 바삐 보내느라고 복통이 일주일간 지속됐고 이 기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션윈을 본 후 지금까지 위장이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미혹됐고 하마터면 이 만고의 기연을 잃을 뻔 했다. 사부님의 고도(苦度)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한번 또 한번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게 하셨다.
4. 따지웬 광고마케팅에 참가해 정법 중에서 수련
과거에 나는 따지웬신문을 거의 보지 않았다. 가끔 다른 신문을 받지 못하면 우연히 한번 보는 식이었고 나중에 언제부터인지 따지웬이 갈수록 두터워졌고 문장도 재밌었으며 광고도 갈수록 많아졌다. 인쇄도 점점 아름다워졌는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떠한 사람들이 따지웬신문을 만들까? 그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견지하면서 무에서 유로, 작은 데서 큰데로, 정말로 매우 대단하다!
나중에 사부님 신경문을 통독할 때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함을 알게 됐고 또 따지웬의 인원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따지웬을 위해 무엇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자 사부님께서 이런 기연을 배치해주셨고 내가 워싱턴DC의 따지웬 영업을 하는 동수를 알고 지내게 해주셨다. 작년 5월부터 나는 정식으로 따지웬 영업부에 들어갔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서 열정 한 가지만 갖고 임했고 신문과 광고 단가표를 갖고 동수와 함께 혹은 자신이 혼자서 광고주를 만났다. 잡념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나는 운전을 하면서 끊임없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를 묵념했다. 어느 한번 우리는 고급 이탈리아 식당에 갔었고 그때 사장은 자리에 없었다. 몇 시간 뒤에 사장이 자발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광고를 하겠다고 했다. 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광고하겠다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나는 매우 기뻤고 우리가 환희심이 나오자 사악에게 틈을 타고 말았다. 사장이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자 집이 도둑이 들었고 그가 정상적으로 출근하지 못해서 우리에게 약속한 광고는 연기됐다. 우리는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청리했고 자신의 환희심을 제거했다. 끊임없이 사장과 연락해 이 광고를 끝내 따냈고 이 또한 우리에게 첫 번째 고급 이탈리아 식당 광고였다. 한 구독자는 DC에서 식당을 찾으려면 따지웬시보를 봐야 한다고 했다.
또 한번은 나와 한 동수가 오후에 한 고객을 만나기로 하고 약속한 후 션윈특간을 배포하러 갔다. 그러나 오전에 갑자기 혈뇨가 나타났고 끊임없이 화장실에 갔다. 예전에 여러 번 도진 적이 있었지만 매번 매우 괴로워 즉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했으며 최소한 일주일간 약을 먹어야 나았다. 이번에는 매우 격하고 심했다. 그 당시 나는 자신을 한 수련자로 보았고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청리해주신다고 생각했으며 병업의 가상에 현혹되지 않았다. 나는 예전처럼 고객을 만나러 나갔고 이후에 션윈 특간을 배포할 때는 혈뇨를 잊어버렸다. 온 오후 바삐 보낸 후 혈뇨는 완전히 사라졌다.
5. 협조를 강화하고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을 제거
금년 초의 한동안 영업부에서는 비교적 소침한 분위기가 나타났고 나도 아무 실적이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매우 조급했고 광고를 빨리 따고 싶었지만 결과가 없었다. 그 당시 무슨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그 당시 생각한 것은 “자신”이 얼마 금액의 광고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새로운 업종을 개척하고 “자신”이 고품질 프로젝트 제안서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은 적지 않게 행하고 전화도 많이 걸었어도 효과가 없었다. 일부는 거의 성사될 것처럼 이야기가 오갔지만 계약을 달성하지 못했다. 나중에 나는 법학습을 통해 일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아야 함을 알았다.
자신에게 매우 깊이 숨어있는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잘하면 남의 칭찬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과시심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러나 광고 계약이 계속 지연될 때는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는 소심한 심리와 초조감이 있었다. 이 또한 다른 한 형식으로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마침 한번은 우리 영업팀이 회의를 열었고 모두들 협조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 후 나는 동수들과 많이 교류했고 서로 간의 간격을 없앴으며 동수들에게서 조언을 구하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자발적으로 동수들과 협조하면서 기꺼이 조연 역할을 맡았다.
어느 한번 매니저 동수가 우리에게 번화가에 가서 광고를 따라고 건의했고 그녀가 신문을 배송하면서 그곳을 지나갈 때 기회가 있다고 느꼈지만 또 그곳까지 도맡아서 광고를 딸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 가서 광고를 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나의 네비게이션은 늘 나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었다. 그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곳을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 인연 있는 사람이 그곳에서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 외 한 동수는 마침 출근 중이라 전화로 나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나는 끝내 이곳을 찾았다. 그리하여 나는 오후 시간에 가게를 하나하나 찾아 들어갔고 어느 한 웨딩드레스 회사에서 광고에 흥미를 가졌다. 2주가 지난 후 이전에 전화상으로 나를 지휘했던 그 동수와 함께 나는 그 웨딩드레스회사에 가서 계약했다. 그 날 우리 두 사람은 사전에 집합장소에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 그 회사에 들어가기 어렵자 우리는 신문 몇 부를 다른 회사에도 보내기로 결정했다.
한 회사는 매우 규모가 있었다. 지사가 두 군데 있고 실내건축설계를 하는 회사였다. 마침 사장도 자리에 있었고 3개월짜리 전면 칼라광고를 계약했다. 2000달러가 넘는 선불금을 받았다. 이후에 우리 영업부장이 또 그들을 만나서 진상을 알렸고 3개월 광고는 1년으로 연장됐다. 우리가 알기로는 광고 효과가 매우 좋았고 그들은 또 중국인을 고용했다. 우리가 한번 협조를 하고 정념이 족하자 사부님께서는 인연 있는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 주셨다.
6. 영문 따지웬 발행에 참가해 우리 시의 한 송이 작은 꽃이 되다
DC 중문, 영문 따지웬이 합병된 후 영문 발행량을 늘리려고 했지만 인원수가 모자랐다. 영업원들은 자원적으로 영문신문의 발행에 참가했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대륙 대법제자의 자료점이 온 천하에 꽃을 피우고 곳곳에 진상을 알리는 기사를 보고서 매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내가 사는 곳에서도 신문 거점을 만들고 내가 이곳의 작은 꽃 한 송이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마케팅 인원은 슈퍼, 오피스빌딩, 병원, 변호사빌딩, 아파트, 은행, 식당 등에서 신문을 배포했고 매 사람마다 한 지역을 도맡았다. 우리 신문은 온 천하에 꽃을 피웠다.
신문을 배포하는 과정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사부님 설법녹음을 듣고 자신의 일사일념을 법에 놓으려고 했다. 그리고 한번 지나가면서 그곳의 공간마당을 청리했다. 가끔 고생을 두려워하거나 시간을 지체할까 봐 두려워하고 남이 신문을 놓지 못하게 거절할까 봐 두려워하거나 신문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각종 마음이 올라왔지만 법속에서 이 일체는 바로 잡혀졌다. 순정한 마음과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가졌다. 매번 몇십 군데의 신문배포지점을 다니고 모든 사람들과 문안을 하고 인사를 하자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은 내가 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자발적으로 신문을 받았다.
처음에 일부 슈퍼마켓과 식당은 우리 신문을 다른 유료신문과 같이 놓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놓았다. 우리는 사장 혹은 경리를 찾아서 우리 신문을 소개하고 이후에 그들은 우리 신문을 단독으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해 주었다. 심지어 계산대 옆에 놓았다. 일부 가게는 마침 빈 자리가 있었는데 마치 우리 신문을 위해 준비해 둔 것 같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는 모두 신문 배송을 견지했다. 한번은 한 상점의 경리가 이런 말을 했다. “본래 우리 가게는 신문을 놓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이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을 배송하는 것을 보아서 받은 것입니다.” 또 한 식당의 사장은 우리가 션윈을 홍보할 때 자신의 쇼윈도의 산타할아버지 광고를 내리고 우리 션윈 포스터를 붙였다. 한번은 내가 신문을 배송하는 곳에 국방부의 한 공무원이 광고를 보고 40여분 차를 운전해 DC에 가서 “진선인(眞善忍) 미술전”을 보았다.
7. 신문을 배송하는 과정 중에서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다
내가 영문따지웬을 배송할 때 중국인이 사장인 회사나 식당을 알게 됐다. 나는 동시에 중문따지웬을 주었다. 내가 중국인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그들과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따지웬 내용을 소개하고 그들의 사업 등등에 대해 문의했다. 그들이 나에 대한 태도는 처음에는 냉담하고 긴장하고 부자연스럽다가 지금은 웃는 얼굴로 변했다.
한번은 중식 식당에 신문을 배포하고 가게 문에 들어서는데 주방장이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모든 사람의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따뜻한 감동이 나왔고 정말로 사존께서 우리에게 배치해주신 정법수련의 길에 감사를 드렸다.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기회를 주셨다. 나는 그들의 사업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
한번은 나와 동수는 지도에 표기된 건축상 지역에 가서 광고를 따기로 논의했다. 결과 그곳에는 건축상이 있지 않았고 우리는 마침 목마르고 배고파서 한 중식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는 먼저 신문을 그들에게 주고 식사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식당 사장은 전에 따지웬을 본 적이 있지만 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신문을 보고 이전에 비해 변화가 매우 크고 전문화된 신문 같다고 했다. 그는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왜 정부가 파룬궁을 X교로 정했는지를 몰랐다. 심지어 그는 파룬궁이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미국 정부가 매시간 5달러를 받는다고 계속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입을 딱 벌렸다. 우리는 그에게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극을 말하고 7.20탄압과 파룬궁수련생의 장기적출 등에 대해 수많은 사실을 밝혀주었다. 그는 삼퇴에 동의하고 또 XX당은 곧 끝장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그들 식당에 신문을 비치해두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들 식당은 대학교 캠퍼스와 가까이에 있어서 중국 학생들이 자주 들린다고 했다.
신문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또 우호적이지 못한 중국인도 만났다. 한번은 한 식당 사람이 따지웬신문을 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신문을 비치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왔기 때문입니다, 고귀한 중국인이여!” 이후에 나는 끝내 이 식당의 중국인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됐다. 그들은 처음에 또 따지웬을 보지 않는다고 말했고 나는 “우리의 신문에는 매우 좋은 광고들이 있는데 당신들이 무엇을 사고 싶으면 우리 신문을 보세요”라고 했다. 그 중 한 남성이 “나는 당신의 기사를 봅니다”고 했고 한 여성은”나는 트랜드를 봅니다”고 했다. 나는 “그럼 당신들은 따지웬을 계속 보는 거네요. 무엇을 좋아하면 무엇을 보면 되고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신문은 없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내용이 있으면 이 신문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에 내가 신문을 배송할 때마다 그들은 온 얼굴에 웃음을 담고 연속 “감사합니다”를 반복한다.
따지웬 신문은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법기다. 사람이 어느 곳에 가면 신문이 어느 곳에 갔고 광고가 어디에 가면 진상이 어디로 갔다! 내가 법을 얻은 경험에서 나는 매우 많은 중국인들이 사당의 거짓말로 인해 대법에 대해 오해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대법을 알려고 갈망하고 있고 신문을 배송하는 과정을 통해 구세력이 만든 간격을 타파했다. 우리 대법제자는 세인이 구도를 받는 유일한 희망이다.
사부님께서는 “따지웬 회의에서의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 세계 대법제자들은 전반 세간을 포용하고 있으며, 매 한 사람마다 한 범위가 있다. 당신이 마주친 것과 접촉한 것은 모두 당신 이 범위 중의 요소이다. 당신이 정념이 족할 수 있고, 당신이 당신의 범위 중에서 높고 클 수 있다면, 당신의 범위 중에서 좋지 못한 그런 것들을 내려 누를 것이다. 매 한 대법제자마다 모두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면 전 세계가 모두 변할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들 매 한 사람마다 이 세계상에서 하나의 아주 큰 범위를 맡았으며, 한 지방의 중생들을 대표했기 때문이다.”
이상의 교류에서 만약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1년 7월 18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7/18/760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