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98년 초에 대륙에서 법을 얻은 올해 62세인 중학교 퇴직교사다. 법을 얻기 전에는 심장약이 몸을 떠난 적이 없고 심장병, 고혈압, 위장병, 디스크를 비롯한 질병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13년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니 세 가지 체험이 있다.
1. 신사신법하고 확고하고 착실하게 수련
처음 연공하기 전날부터 사부님은 나의 복부에 파룬을 넣어주셨다. 나는 매일 오전 5~7시에 단체연공에 참가하고 저녁 7:30~9시에 단체법공부에 참가한다. 수련한지 얼마 안 되어 모든 병이 사라지고 동료가 내 얼굴색이 이제는 검은 색이 벗겨지고 윤택해졌다고 했다. 나는 갈수록 젊어지고 생활에 즐거움이 충만하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 나는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매사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한다. 일을 하면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으며,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개인 이익에서 담담히 보며 오늘까지 왔는데 막다른 골목에서도 길이 열린다(柳暗花明又一春)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89년에 중학교 중급직급을 얻어 동갑내기들이 부러워했다. 94년에 중학교 고급직급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러나 나는 돈을 벌 생각으로 시간 나는 대로 장사를 해서 그 해 누가 익명으로 고발장을 보냈다. 98년에 수련을 시작하고 99년에 한 통의 익명 고발장이 더 추가됐는데 바로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고발했다. 나는 웃어넘기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결과 2000년 직급 문제가 해결됐다.
나는 두 딸이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정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순리에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자 두 딸은 연이어 대학 본과까지 졸업했다. 큰 딸은 중국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작은 딸은 미국 한 대기업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직업, 생활, 가정이 다 원만하다. 친구들은 모두 팔자가 좋다고 부러워한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99년 7월 20일 중공 악당이 대법을 모함하고 수련 환경을 파괴했다. 나는 동요하지 않고 출근하는 길에 “논어”와 “홍음”을 외우고 수련생을 만나면 걸어가면서 교류했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나오면 베껴서 다른 수련생에게 보여주고, 진상 자료를 얻으면 친척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한번은 “풍우천지행”과 “위화” CD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난생 처음으로 우유를 꺼내오는데 우유를 담는 상자 안에 CD가 두 장 들어있었다. 나는 이 CD 두 장을 들고 몇 집을 돌아다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늘 사부님께서 옆에 계신다고 느낀다. 사악의 박해로 직장 상사나 파출소 경찰이 찾아오면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3서(역주-수련포기 각서 따위)를 쓰지 않았는데 고험과 관을 넘는 중에서 사부님의 말씀이 자주 귓가에 울렸다.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 사부님의 보호 하에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나는 늘 무사했다.
2.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다그쳐 중생구도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모든 것이 그 속에 있다고 사부님께서 늘 강조하셨다. 2005년 초 미국에 온 나는 처음으로 법회에서 사부님을 뵈었다. 기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잘 듣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국내에는 자료가 부족하고 컴퓨터도 사용할 줄 모른다. 우리 가족은 수련을 하지 않는다. 나는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진상자료 100부, 9평 CD 50장을 가지고 중국으로 갔다.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발정념하며 집에 무사히 도착해, 현지 수련생과 함께 9평을 배포했다. 반년 내에 나는 수십 명을 삼퇴시켰다.
2006년 초 나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외손녀를 보면서 세 가지 일을 했다. 딸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 중국으로 전화하기가 불편해 1년에 몇십 명 밖에 탈퇴시키지 못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나와서 진상을 알리자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2007년 현지 DC교류회에 참가하고 싶은데 딸과 사위가 가지 말라고 했다. 내가 가기만 하면 경찰에 고발할 것이라며 이 집문을 나서면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다.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것은 나의 사명이다. 기타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자아를 돌파하고 처음으로 DC지역 교류회에 참석했다. 나는 정에 대한 집착을 찾아냈다. “당신이 정말로 중생에게 자비(慈悲)할 때, 더는 정이 당신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정에 관련된 가족도 더는 당신이 그들에 대해 무정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더는 감정문제로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제고해야 할 문제이다.”(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
그날 딸은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대법이 나에게 가져다 준 변화와 대법이 전 세계에서 널리 전파된 상황, 대법제자가 국내에서 박해받는 사례, 쑤자툰 장기적출 만행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미국에 온 것은 안일을 추구해서가 아니고, 친척 방문만도 있지만 조사정법도 하기 위해서이며, 중생구도는 나의 사명이기에 주말마다 나가서 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환경이 느슨해져 2007년 3월에 내가 중국으로 전화해 삼퇴시킨 숫자가 전 2년 총수보다 2배는 더 많았다. 매일 몇 사람씩 탈퇴시킬 수 있었다. 하루는 다른 수련생이 거주하는 노인 아파트에 가서 이발하면서 반나절에 20여명을 탈퇴시켰다. 나는 휴대폰을 쓸 줄 몰라서 나중에 딸이 장거리전화비가 89달러나 나왔다고 했다.
“중생을 구도하는 이 일에 있어서 느슨히 할 수 없고, 게다가 더욱 잘해야 하며,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참으로 너무나 관건적이며 참으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현재 이러한 일을 믿지 않고 있는데, 머지않아 천천히 인류는 알게 될 것이며, 일체는 모두 점차 명백해질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세인들은 모두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일에서, 반드시 더욱 잘해야 하고, 더욱 힘있게 해야 한다.”(더 정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