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과 가정에 대한 나의 인식
작자:이지(李智)
[정견망]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정욕(情慾)은 반드시 닦아 버려야 할 것이다. 대법수련은 모순을 피하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속인 중에 열어놓았으니 형식을 중시하지 않고 직접 사람마음을 가리킨다. 결혼했거나 독신이거나 정욕의 집착을 지니면 중생구도에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대법제자가 오늘까지 수련하여 우주 중의 신(神)들도 모두 우리를 신으로 간주하는바 신은 사람과 남녀간의 그런 더러운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며 두 신이 함께 있다면 더욱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대할 것인가? 내가 말했다. 우리 이 한 법문은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서, 물질이익에서 당신에게 실제로 무엇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속인의 이런 물질이익 중에서 당신의 心性(씬씽)을 연마(魔煉)하는데, 진정하게 제고되는 것은 바로 당신의 心性(씬씽)이다. 당신이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무엇이든 다 내려놓을 수 있으며, 물질이익에서 당신에게 내려놓으라 하면 당신은 물론 내려놓을 수 있다. 당신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수련의 목적은 그 마음을 닦는 것이다.”
제자들 중에는 속인상태에 부합해 가정을 이룬 이도 있고 또 가정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여겨 독신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여전히 욕망이 있어 결혼을 하는데 이것은 모두 가능하다. 지금 노(老)수련생은 신(新)수련생이나 혹은 속인과는 층차의 차이가 아주 크다. 노수련생이 신수련생이나 혹은 속인과 결혼한다면 3가지 일을 하는데 영향을 끼치는지 여부를 고려해야 하며 자신의 수련환경에 책임져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내 주위의 몇몇 수련생들은 정욕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혼인과 가정을 잘 처리하지 못해 수련에 엄중한 영향을 끼쳤다. 고(高)양과 오(吳)군은 처녀 총각 노수련생인데 남들이 보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양가에서도 결혼에 찬성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준비할 때 여자측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새로운 견해가 생겼다. 혼인을 담담하게 보게 되었고 더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남자 수련생은 아무리 해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다시 분발하지 못했다.
또 다른 2명의 남자 수련생은 속인 아내가 최근 수년간 수련생들이 박해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수련생들의 일부 방면의 부족함이 더해져 끝내 이혼했다. 남자 수련생은 어쩔 수 없이 셋방을 얻어 출근하면서 집안일도 해야 했으니 때로는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전처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기 때문에 다른 수련생들이 여러 번 도와주고 교류도 했지만 지난 2년간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 나는 협조인으로서 아주 조급해졌다. 게다가 수련생이 모 방면에서 장기간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데 사악의 박해가 더해졌기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이 수련생들과 교류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존께서는 “교란을 배제하자”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악독하고 파괴적인 검증 중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나는 사전에 모두 설법 중에서 당신들에게 말해 주었다.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넘기가 아주 어렵다. 이제 여러분들도 내가 왜 당신들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했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
나는 수련생을 효과적으로 도와주자면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고자 했다. 이에 나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한 남자 수련생을 우리 집으로 불러 매일 법공부를 했다. 이렇게 하자 그는 수련의 제고가 아주 빨랐고 과거의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3가지 일속에 뛰어들었다. 내가 자료를 만들면 그도 도와주었고 내가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면 그 역시 흔쾌히 앞장섰다. 내 남편은 99년 720이후 사악의 미친 듯한 박해 속에서 직장, 공안국, 거민위원회 등 각 방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나와 이혼했다. 지난 십여 년간 나는 아이를 데리고 생활하면서 혼인과 가정에 대해 이미 담담해졌다.
최근 나는 남자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 법공부를 한 후의 진보를 보았다. 비록 수련인이지만 독신 남녀가 장기간 접촉하다보니 나는 그리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자료점이고 내가 협조인이기 때문에 우리 집은 법공부장소로는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그 수련생을 쫓아낸다면 그는 마땅히 갈만한 법공부팀이 없었고 분명 원래의 소극적인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나는 한 독신수련생이 생활과 3가지 일을 하면서 대법제자의 형상을 고려하기란 아주 어렵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나는 속으로 그와 형식적인 가정을 이루고 수련에서 서로 제고하며 생활적으로도 서로 돌봐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면 방값이나 수도료, 전기료 등의 지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가 일부 방면에서 수련에 문제가 있지만 나는 이런 방면이 괜찮으니 교란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 역시 이런 의향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해보았다. 그런데 사존의 법신께서는 내게 “단지 동수일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본 후에 나는 그와 결혼하는 것이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고 법신께서 제때 일깨워주신 것에 대해 큰 감사를 드렸다. 그는 자신이 닦아버려야 할 것이 있으며 그를 돕는다고 하여 꼭 혼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제자는 미래인들에게 기초를 다져주고 있으며 미래인들은 대법제자를 따라 배울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는 반드시 바르게 걸어야 한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혼은, 나는 당신들에게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하라고 했는바, 당신들이 오늘 이혼을 하든 결혼을 하든, 나는 모두 뭐라고 하지 않겠는데, 나는 법리로부터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미래에는 이런 일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사회의 현 상황이 조성한 것이다. 나도 당신들을 어떻게 하라고 강박할 수 없다. 그러나 미래의 생명은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법학습을 통해 나는 이혼하거나 혹은 사별한 대법제자는 재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존께서는 “미국법회설법”에서 “제자: 남편의 돈을 쓰는 것은 德(더)를 잃는 것으로 여깁니까? 사부: 부부는 바로 이런 관계로서,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부부란 일종의 특수한 관계임을 깨달았다. 속인 중에서 상대방의 돈을 써도 德(더)를 잃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돈을 쓰거나 아이를 양육하고 양가 어른을 모시는 것을 포함해 모두 두 사람의 소유이며 한쪽이 빚을 지면 다른 쪽도 공동으로 상환해야 한다. 다른 공간에서 보자면 부부 두 사람의 공간장 역시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둘 다 노수련생이고 층차와 경지의 차이가 아주 큰데 잘 처리하지 못하면 역시 3가지 일을 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존께서는 “2010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상관없다고 하며, 보기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당신이 보았다면 들어갔다. 왜냐하면 어떠한 것도 다른 공간에서 그것은 모두 분체(分體)할 수 있기 때문이며, 본 시간이 길수록 들어간 것이 더욱 많다.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를 보는데, 어쨌든 어떤 것이든 당신이 보았다면 바로 들어간 것이다. 사람 머릿속에, 신체 속에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을 많이 담았다면, 당신의 행위는 그것의 통제를 받게 마련이다. 당신이 하는 말, 당신의 사유방식, 당신이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 모두 그것의 영향을 받게 된다. 어떤 환경이 어떤 사람을 만드는, 이것은 절대적이다. 비단 수련계뿐만 아니라, 속인사회의 과거 노인들은 다 안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마난(魔難) 중에서 바르게 걷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 당신이 박해를 받고 안 받고, 당신이 바르게 하고 못하고, 박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걷는 길, 당신의 사상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대법제자로서는 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대법제자 역시 이 말세의 가장 복잡한 환경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하고 수련해 나와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을 구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만이 그처럼 큰 생명으로 성취될 수 있으며 그처럼 높은 층차로 성취될 수 있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가정은 우리 대다수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가장 많은 시간을 머무르는 환경이다.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접촉하는 주위의 환경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많은 어려운 길을 걸어왔으니 인위적으로 자신에게 마난을 더할 필요는 없다. 정법은 이미 최후에 도달했으며 대법제자는 오직 가장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혼인과 가정 등의 문제에서 정확하게 대해야 하며 어떠한 유감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수련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발표시간: 2011년 10월 11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0/11/77851.html